얼마 전 대전에서는 큰 별을 잃었다. 다름 아닌 고 서붕 박병배(瑞鵬 朴炳培)선생의 부고다. 향년 84세이니 ˝살만큼 살았다˝고 할 수 있을진대 그의 삶을 가까이 지켜본 사람이라면 대부분 그의 사망을 아쉬워했다.

난 그를 딱 한번 봤다. 그것도 먼발치에서. 96년 충남지방경찰청장이었던 이완구씨가 15대 총선에 출마하기 위해 청장직을 떠날 때 이임식에 참석했던 그 모습이 기억난다. 안면 골격은 투박하고 머리는 아무렇게나 풀어 헤친 모습으로 난 기억한다. 그의 소식을 다시 들은 것은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나서. 그의 장손과 호형호제하는 사이가 된 뒤부터 그가 병석에 누워있다는 사실, 그리고 대전예고와 서대전여고의 설립자이자 대전시교육청에 200억원 상당의 땅을 기증했다는 사실이 머리 한 쪽에 더욱 깊게 자리 잡았다.

서울시경국장, 국방부정무차관, 4·5·7·8·9대 국회의원, 민주통일당 총재대행 등 세상에서 누릴 것 다 누려본 사람으로만 여겼던 그를 난 존경하게 됐다. 그것도 그의 부고를 듣고 난 뒤에나 존경하게 됐으니 웃겨도 한참 웃길 일이다.

존경하게 된 이유는 더 우습다. 그의 가훈이자 좌우명 ´窮狗莫追 勿鞭死屍´.
´굶주린 개 쫓지 말고 죽은 시체에 매질하지 말라´는 그 문구가 나를 미혹하게 만든 것이다. 난 그 문구에 미수를 앞둔 한 인간이 평생 느끼고 깨달은 진리가 배어 있다고 믿는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지켜야 할 도리가 담겨 있고 도덕과 양심, 그리고 포용과 용서, 질서가 물씬 배어있는 표현이라 여긴다.

어쩌면 권력을 향유해 본 사람, 힘있고 돈있는 사람이 그렇지 못한 ´아랫것들´을 다루는 비법쯤으로 비춰질지 모른다. 항상 굶주린 개(狗) 신세이거나 수명을 다한 개 신세였다면 이 같은 말을 할 수 없는 법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좌우명이 새롭게 와 닿는 것은 최근 항간의 일 때문이다. 싸울 줄만 알고 또 대립하기만을 좋아하고 또 상대방을 깔아 뭉기는 세태다.

최근 여당의 한 여성의원은 표독스러운 모습으로 족벌과 재벌양태를 띤 언론과 언론사에 독설을 퍼부었다. 숨길 것도 없다. ˝x같은 조선일보˝라고 거침없이 품어낸 뒤 적어도 내가 양심있는 기자라고 믿었던 후배에게 ˝너도 기자냐˝라는 모독을 퍼부었다. 그리고 뒷날에는 개꼬리 감추듯 사과했다. 야당의원들에게 ˝언론과 언론사를 헷갈리지 말라˝라고 해놓고 그는 언론(기자)을 언론사 보듯 무지를 드러냈다. 조속 재배된 푸성귀처럼.

국세청은 지방 언론사도 올해 안으로 세무조사를 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를 걱정한다면 그야말로 자질구레한 걱정에 그칠 것으로 난 믿는다. 걱정이 오종종하게 보일 수 있으니 맘을 놓아도 될 것 같다는 얘기다. ˝언론이 어디 중앙뿐이냐. 언론개혁이 궁극적 목표라면 왜 지방은 예외냐˝라는 예봉을 피하기 위한 애드립(ad-lib)에 불과하다고 믿으니까.

정권은 언론에 매질을 가하고 있다. 역사에 전세 사는 정권이 잠시 빌린 국세청과 공정거래위 검찰이라는 연장을 갖고 세상을 魔界로 몰아넣고 있다고 난 믿고 있다. 도 아니면 모로 가는 형국인데 통합은 무엇이고 조절은 무엇이고 완충은 어디 있으랴.

14일 자정께 서붕선생의 빈소가 마련된 삼성의료원에서 몇 잔을 마시다 동아일보 김병관회장 부인의 사망소식을 듣고 성북동 고대 안암병원으로 달렸다. 물바다가 된 광화문 한 복판에서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빗속을 가르며 내가 떠올린 생각.
´窮狗莫追 勿鞭死屍´.
언론을 굶주린 개로, 생명을 다 한 개로 빗댈 순 없지만 지금 형국은 그렇다.

쫄병기자의 예감은 이런 것이다. 굶주린 개, 쫓기는 고양이도 이제 물어버릴 때가 됐다고. 자기를 성찰할 수 있는 단 한번의 기회도 주지 않고 도망갈 곳 없다고 쫓는다면, 곳곳에 홍위병을 배치해놓고 뼈까지 발라대겠다고 으르렁거린다면 할 수 있겠나 물어야지.
세상에는 보이지 않는 질서가 있으니 인간답게 살라는 서붕선생의 글귀가 새삼 떠오른다. 작취미성(昨醉未醒)에서 떠 든 소리니 그냥 넘겨도 좋다.

< 동아일보 이기진 기자 · doyoce@dong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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