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급증·두려움 떨치고 차분히 임하길

◈보문고 김영호 교사.
일기예보로는 금년엔 수능 한파가 없을 거라고 하더구나. 다행스럽게도 수능이 있는 날부터 날씨가 풀릴 거라는데, 그래도 긴장으로 얼어붙은 마음이 어찌 떨리지 않겠니?

하긴 단 하루만에 치러지는 시험으로 앞으로의 인생이 좌우된다니 어찌 두렵지 않을까. 그리고 평생을 가름할 시험대에 오르는 자식이 오직 좋은 결과를 얻기를 간절히 기원하는 부모의 마음 또한 어찌 졸아들지 않을까. 더구나 너처럼 딸 부잣집 외아들에다 아버지가 병들어 누워 계신 경우, 부모의 애타는 심정은 훨씬 애절할 것이다.

나도 작년에는 대입 수험생을 둔 학부모이자 수험생을 지도하는 교사의 이중적인 위치에 있었기에 수험생 부모의 애틋함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특히 수험생 어머니의 자식에 대한 간절한 기원은 자못 거룩하기까지 하다.

작년에 내 아내도 여느 수험생 어머니와 똑같이 고사 시간표를 적어들고 자식의 시험 시작과 끝 시각에 맞추어 성심으로 기도하고 쉬는 시간에 맞추어 쉬는 걸 옆에서 지켜보며 비장한 감동을 느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구나.

굳게 닫힌 고사장 철문 앞에서 추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두 손을 모아 간절히 기원하는 어머니의 모습이 내가 30년 전에 예비고사를 치르던 시절과 조금도 달라진 게 없는 걸 보면, 자식의 앞날을 위해 헌신하는 부모의 모습은 변함이 없나 보다.

자식에게 꿈 이루려는 부모 한풀이 없어야

그런데 그 비장한 기원의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과연 어떨까. 마냥 감동적이기만 할까. 어쩌면 내 자식이 좋은 결과를 얻어 떵떵거리고 살게 해 달라는 지극히 이기적인 갈망이나, 부모가 이루지 못한 갖은 소망을 자식에게서 풀어보려는 한풀이는 없을까.

그야말로 내 자식이 노력한 만큼의 결실을 얻고,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면서 평범하지만 행복하게 살았으면 하는 바람은 얼마쯤 차지할까. 부모의 욕망을 충족시켜 주는 성실한 대리인이 아니라, 자식이 원하는 인생을 스스로 만들어 가도록 곁에서 돕고자 하는 소박한 부모의 소망은 끼여들 틈이나 있을까.

얼마 전에 네가 써 온 수시모집 원서 중 자기소개서를 검토하면서 확인하게 된 너의 소박하면서도 아름다운 소망이 기억나는구나. 중풍으로 쓰러져 중증 장애인이 되신 아버지가 비장애인과 함께 생활하는 데 불편이 없도록 각종 기능이 개량된 휠체어를 만드는 '인간적인 기계공학도'가 되고 싶다는 꿈 말이야. 정말 소중한 꿈이라 생각되고, 그 꿈을 이루길 진심으로 빈다.

그 동안 네가 집안이 어렵기 때문에 학교 생활에서 겪었던 직·간접의 불이익과 열패감을 꼭 보상받고 싶은 심정이 가슴 한 편에 남아있음을 안다. 하지만 그 고통을 보다 긍정적인 에너지로 승화시키길 진심으로 바란다.

오히려 네가 겪은 아픔이 되풀이되지 않는 사회적 기초를 다지는 벽돌 하나가 되고자 할 때, 우리 사회는 분명 변화되지 않을까. 네가 이런 열린 마음으로 이번 수능을 치를 때, 조급증과 두려움을 이겨내고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이제 내가 존경하는 학자 촘스키의 말로 끝을 맺자. "성실하고 자유롭게 그리고 독립적으로 사고하는 인간, 세상을 개선하고 승화시키는 데 관심 있는 인간, 인간의 삶을 좀더 의미 있고 가치 있게 만드는 일에 참여하는 인간을 가르치는 것이 내 인생의 최대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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