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휘(편집위원·前 한국기자협회장) 칼럼

16대 대통령선거에서, 호남에서 민주당 후보가 받은 득표율을 놓고 영남지역에서 비판이 호된 모양이다. 특히 95%가 넘는 노무현 지지율을 기록한 광주에서의 투표결과에 대해서 "공산당 선거보다도 더 심하다"는 비난이 난무한단다. 호남에서의 특정후보에 대한 압도적인 지지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지율만 놓고 보면 정말 그렇다. 민주적 방식에 의한 선거에서 이 같은 지독한 표 쏠림 현상은 분명 흔한 일은 아닐 것이다.

왜 그럴까? 영남에서 한나라당 후보의 지지율은 대구에서의 77.75%가 최고다. 호남에서 특정후보에 대한 몰표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지지율이 아닌, 득표수를 계산해봐야 그 해답을 유추할 수 있다. 16대 대선 영남에서의 한나라당 후보 득표수 4백72만4천여표는 호남에서 민주당 후보가 득표한 2백75만1천여표보다 무려 2백만표 가까이 더 많다. 득표율의 의미가 완전히 무색해지는 대목이다. 오랜 세월 집권세력의 텃밭으로 살아온 영남과, 지역감정의 발원지로 호도되면서도 '몰표 던지기'를 계속해온 호남정서의 비밀이 여기에 있다. 호남 출신 후보가 거푸 떨어진 지난 세월 어느 날 호남사람들은 "우리에게는 빨리 자손을 많이 낳는 길밖에 없다!"며 장탄식을 했다던가.

몹쓸 지역주의는 필연적으로 지역당 정치를 낳았다. 물론 충청도도 예외는 아니었다. 영호남 지역 당끼리의 맞대결에 자극 받은 민심을 용케도 거머쥐고 온존해온 정당이 충청도의 자민련이다. 자민련은 충청도 이외 지역의 정치인이 충청도에 관해서 뭐라고 삐딱한 소리를 한 마디만 했다하면, 거두절미하고 그 말을 부풀려 지역정서를 자극하는 방법으로 한동안 지역당 기반을 다져왔다. '충청도 핫바지' 발언에 대한 무차별 확대재생산이 그 대표적인 예다.

대선통해 국민들의 개혁의지 확인

21세기 첫 대통령선거를 통해 확인된 국민들의 의지는 '개혁'이었다. 그것을 일러 '세대간의 갈등'이니, '보수와 혁신의 대결구도'니 하는 험한 제목의 해석들은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온당한 분석이 아니다. 문제는 지역감정의 질곡이 여전히 민심의 발목을 옥죄고 있다는 것이다. 지역감정을 해소할 방법을 찾아내지 않고는 '개혁'은 그 물꼬를 찾기가 힘든다. 유권자들이 '한나라당'도 '민주당'도 아닌 오직 '노무현'이라는 후보를 지지했다는 분석에 별반 이의를 걸지 않는 오늘날의 민심에 그런 뜻이 담겨 있다. 정치를 더 이상 이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선거에 담긴 국민정서의 요체다.

국민들을 걱정하는 정치에서 국민이 걱정하는 정치로 추락해버린 우리 정치의 위상은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 정치가 달라지지 않고는 아무 것도 바꿀 수 없다는 말은 참으로 옳은 말이다. 대선 과정에서 제기되어, 수면 아래에서 서서히 논의되고 있는 중·대선거구제 문제는 새해 정가를 뜨겁게 달굴 중요한 주제다. 그런데, 기실 선거구제 문제가 수월하게 논의되리라고 보는 사람은 별로 없다. 지역당의 품에 안겨서 편안하게 정치무대를 누벼온 밭떼기 정치꾼들이 장악하고 있는 정치권의 형편이 결코 그런 논의를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나라의 장래를 엄청나게 걱정하는 척 하지만, 정치인들의 가장 큰 관심은 '다음 선거에서의 당선가능성'이다. 다음 선거에서 유리할 수만 있다면 정치적 신념이나 의리 따위는 헌 신짝처럼 팽개치고, 떠나가고 말 갈아타고 길 바꿔버리는 구역질나는 희한한 정치풍토를 우리는 오랜 세월 지켜보았다. 그런 정치판에서 '지역감정의 해소'니 '지역통합'이니 하는 이야기는 행사장 축사에나 등장하는 한낱 미사여구에 머물 뿐 도무지 씨가 먹힐 화두가 아니다. 하물며 나라의 장래를 위하여 기득권을 희생하라는 요구를 했다가는 칼부림이라도 날 판이다.

중·대선거구제 도입문제가 안고 있는 난관은 이렇다. 큰 밭을 가진 배추밭 주인에게 작은 무밭 주인과 배추와 무를 서로 섞어서 심도록 하는 계약을 체결하자하면, 큰 배추밭 주인이 그 말을 들을 턱이 없다. 영남 밭떼기 정치꾼들이 호남 밭떼기 정치꾼들이나, 충청 밭떼기 정치꾼들과 손해날 게 뻔한 교차농사계약에 응할 까닭이 없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밭떼기 정치꾼들이 여전히 밭떼기 정치의식에 젖어있는 어쩔 수 없는 현실을 딛고 어떻게 해야 지역주의를 완전히 깨부술 수 있는 바람직한 제도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인가.

정책정당 구도의 정계개편 필요

결국에는 정계개편 밖에 없다. 썩고 낡고 병든 정치의 밭을 완전히 갈아엎어서 배추밭에는 배추만 심고, 무밭에는 무만 나는 풍토를 개혁해내지 않고는 정치개혁은 그저 공염불에 불과하다. '지역할거당'구도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도록 정치판의 가로 세로 망을 철저히 짜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얘기다. 운동회의 청백전도 아니고, 이 땅에 영남과 호남만 있는 것도 아닌데, 왜 번번이 두 패가 나뉘어 싸우고, 충청도가 나서서 "우리는 뭐냐?"하고 또 다른 패가름의 노예가 되어야 하는가. 더 이상 이렇게 가서는 절대로 안 된다.

철저하게, 지역이 아닌 이념과 정책을 기준으로 구분되는 정당구도를 가져야 한다. 그것이 꼭 둘이어야 할 이유가 없듯이, 여러 개가 되어서는 딱히 안 되는 것도 아니다. 이념과 정책에 의한 분화야말로 정치개혁의 출발점이다. 그리고 난 다음에 접근 가능한 것이 중·대선거구제의 도입이다. 중·대선거구제의 도입은 지역당의 폐해를 막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차점자를 밀어준 유권자들의 정치적 선택을 사장시키지 않고 흡수함으로써 배타적 민심이반을 줄이고, 정치안정을 꾀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여전히 현역 정치인들의 의식에 있다. 총칼을 들고 패가름을 지휘하던 시대의 정치판도 아니고, 대통령이 '헤쳐 모여!'를 외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오늘날 정치권을 개혁하기 위해서 가장 유효한 힘은 국민들의 마음이고, 그 마음을 천심으로 알고 두려워할 줄 아는 정치인들의 양식이다. 최근 들어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개혁파 의원들을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는 개혁 움직임을 주목한다. 그들의 작은 움직임이 태풍으로 번져가서, 21세기 대한민국의 초석을 다지기 위한 정치개혁이라는 커다란 과제를 풀어낼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본다. 그리하여, 이 시대를 만연해온 밭떼기 정치꾼들의 존재와, 끝간데 없이 지역갈등을 빚어내던 부끄러운 역사가 한낱 옛날 이야기로 사라져가게 되기를 소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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