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과 언론권력 세습문제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달 29일 청와대 비서실 워크숍에서 행한 언론에 관한 발언을 놓고 뒷말이 무성하다. '일부 언론의 시샘과 박해' '검증되지 않는 언론 권력은 대단히 위험' '권력을 세습까지 하므로 공정하기 매우 어렵다'는 등의 발언은 언론에 대한 대통령의 인식이 어떤지를 거푸 확인할 수 있게 해준다. 굳이 '긴장관계 유지'라는 표현을 동원하지 않더라도, 대통령은 개인적으로 이미 오래 전부터 언론과 팽팽한 긴장관계를 유지해오지 않았던가.

언론개혁의 필요성을 인식해온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대통령의 발언은 표현방식에 대한 사소한 시비는 있을 수 있어도, 대의는 구구절절이 옳다. 아는 사람은 다 안다. 군사 독재정권 시절 나팔수 노릇으로 배를 채운 못된 중독증상의 여파였던지, 민주화세력 집권 이후 정권에 대한 보수언론들의 티 뜯기는 극심했다는 것을..... . 검증장치를 갖지 못한 채 이미 제4부 권력의 꿀맛에 취해버린 재벌언론, 언론재벌들의 행태는 진작에 사회악으로 불리고 있는 판 아닌가.

대통령의 언론관련 발언을 놓고, 거대신문들이 악어처럼 이를 딱딱 부딪치며 을러대고, 주변에서 논리를 떠받쳐주는 학자님들도 비판을 한 마디 씩 보태고 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것은, 언론개혁의 핵심 중의 핵심에 직결되는 소유구조와 관련된 일갈에 대해서는 꿩 구어 먹은 소식으로 조용하다. 입을 맞춘 듯이, 세습언론에 대한 문제제기와 관련해서는 슬슬 겉돌기만 할 뿐, 뚜렷한 언급이 없다. 감히 말 꺼내기조차 힘든 성역의 논쟁거리이기 때문일까.

이 시대 어떤 형태든 권력세습은 악덕

언론이 대단한 권력이라는 것은 상식이 된 지 오래다. 모르면 모르는 대로, 알면 아는 대로, 사람들은 언론을 무서워한다.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이라고, 가까이 해도 안 좋고, 멀리해도 안 좋은 존재라고도 부른다. 여러 신흥 건설업자들이 기를 쓰고 작은 신문사라도 하나 차리려고 발 싸심하고 나서는 것은 결코 언론발전을 위한 헌신의 의도가 아니다. 신문이 대단한 권력이라는 것을 진작에 알았기 때문에 부나비처럼 달려들어 출혈을 감수하는 것이다.

솔직히 말해보자. 이 시대에 권력세습은 이미 말이 안 되는 악덕이다. 왕권 군주국가시절 왕의 자리가 세습되어 온 역사가 있었지만, 민주화과정을 거치면서 그런 세습구조는 거의 타파되었다. 설혹 상징적인 존재로 남아있는 왕이라 하더라도 실권을 갖지는 않는다. 권력세습이 나쁘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그리고 언론이 권력이라는데 이의가 없다면, 언론권력이 세습되는 현상은 당연히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라는 논리에 대해서 이의를 걸 수는 없을 것이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의 사유재산 대물림이라는 합법성 하나로, 언론이라는 중대 권력이 세습되는 것을 합리화해야 할 것인가. 그 동안 언론운동을 해온 많은 분들은 '언론의 문제' 그 핵심은 결국 '언론자본의 문제'라는 것을 깨우쳐왔다. 언론에 대한 개인의 소유지분을 법으로 제한하는 적극적인 방법이 논의되기도 했고, 언론사의 자본주가 편집권에 일절 관여치 못하게 하는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는 기술적 접근법이 제안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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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언론개혁을 위해 언론자본의 문제를 어찌해보려는 발상에 대해, 기득권을 가진 언론재벌들은 사상논쟁까지 불사하면서 엄청난 거부감을 표시한다. 그들은 북한 권력세습체제를 비난하는 똑같은 입으로 언론권력세습을 옹호한다. 그들 아류의 지식인들도 외국의 사례를 들먹이며 반대의 뜻을 밝힌다. 뉴욕타임스, 워싱턴 포스트, 가디언의 존재를 들어서, 사적 소유권이 세습된 언론이라고 해서 언론의 임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는 논리다.

대통령의 언론발언 감정표출에 그쳐서는 안 돼

그러나, 언론재벌, 재벌언론이 독재정권과 짝짜꿍으로 손발 맞춰가며 거대자본으로 커온 우리의 역사를 아무것도 없었던 양 무시한 채 외국의 성공적인 사례를 끌어다 붙이는 것은 무리다. 그런 뼈아픈 역사를 거름 삼아 모범적인 독립언론의 틀을 우리가 만드는 일에 대해서는 왜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가. 대한민국이 지구상에서 가장 잘된 언론환경을 갖고, 가장 공정하고 유익한 언론을 추구하는 일에 대해서 굳이 소극적이어야 할 이유는 또 무엇인가.

'밤의 대통령'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횡포와 자만심에 가득 찬 언론, '자전거일보'라는 비아냥을 들으면서도 자본의 힘을 동원하여 막무가내로 시장질서를 어지럽히는 신문사가 여전히 판을 치는 한, 불합리한 소유구조가 일으키는 언론문제를 개혁하기 위한 노력은 계속되어야 한다. 그 중에도 단지 자본주의의 논리와 관행을 앞세워 막강한 언론권력이 세습되는 일은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된다. 아무리 어려워도 우리 스스로 풀어내야 할 숙명의 숙제인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의중에, 보수세력들이 지칭하는 언론을 장악할 의도가 있다는 당장의 증거는 없다. 그럼에도, 대통령의 언론에 대한 언급이 너무 감정적으로만 비쳐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현 정권이 언론과 어떤 관계를 맺느냐가 결코 관건이 아니다. 향후 이 나라의 언론이 어떤 존재로 남아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가 문제의 본질이다. 언론권력의 세습을 제도적으로 개선하는 일, 그것은 우리가 서둘러 찾아야 할 국민적 합의의 중요한 테마이다. 그것은 어쩌면 수십 년 달려온 민주화 투쟁의 마지막 과제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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