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쟁(政爭)밥상 오른 '신 행정수도 충청권 건설'


세상만사, 아무리 고상한 일이라도 정치권에서 일단 쟁점을 삼고자 하면 뭐든 순식간에 걸레가 되어버리는 이 한심한 이치는 언제 좀 달라질 것인가. 시쳇말로 '까마귀고기를 먹고 치매에 걸리지 않은' 보통사람이라면 기억도 뚜렷한 몇 달 전 대통령선거에서 '행정수도 이전'공약에 대한 치열했던 찬반논쟁이 아직 선연한데, 지금 정치권에서 뒤집혀 일어나고 있는 또 다른 공방은 그저 희한하기만 하다. 이 문제에 대해 민주당은 신중한 입장이고, 한나라당은 들고일어나 빨리 하자고 보채는 모습이 되어버렸다.

선거 때 '반드시 해내겠다'는 장담으로 충청권에서 재미를 본 민주당은 이상할 정도로 느긋하다. 반면에 '국민적 사기 극', '수도권 황폐화'를 외치며 반대하던 한나라당은 당내 추진협의회를 구성하고 후보지 선정 날짜까지 2004년 2월 24일(대통령 취임 1주년)로 못 박아가며 벼르고 있다. 보이는 대로라면 충청권 사람들은 한나라당의 '대 변심'을 한없이 감사해야 할 판이다. 대통령선거에서 진 한나라당이 정말 깨끗하게 승복하고, 당선된 대통령의 공약까지도 적극적으로 챙기는구나 하고 감읍하여 마땅할 일이다.

그러나, 세상의 아무리 순순한 이슈도 정치권 쟁점 떡시루에 들어가 정치적 속셈이라는 고약한 김을 한 번 쐬고 나면 알쏭달쏭 요상한 떡으로 변해버리고 만다. 문제의 발단은 우선 이렇다. 선거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취임 후 1년 이내에 충청권 후보지 선정작업을 마무리짓겠다고 공약했다. 그리고,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내년 상반기 중 끝내겠다고 했고, 얼마 전 정부는 내년 하반기 중에 예정 부지를 지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 씩 일정이 늘어지고 있는 모습이다.

내년 총선 의식, 각 정당들 득실 계산 분주

이에 대해서 야당의 해석은 이런 요지로 흐른다. 민주당이 당초에 생각지 못했던 내년 총선을 곰곰 헤아려보는 가운데, 선거일 전후에다가 이 문제를 쟁점으로 두어서는 덕될 것이 없다는 뒤늦은 판단을 했으리라는 것이다. 목전에 다다른 행정수도 이전문제가 수도권 민심을 자극하는 것은 물론이고, 충청권에서마저 부지선정에 대한 대전·충남·충북의 이해가 엇갈려 표심을 찢어발길 것이라는 우려가 생겼다는 것이다. 결국 내년 총선 안팎은 피해야겠다는 것이 민주당의 꿍꿍이 아니겠느냐는 샛눈 뜨기인 셈이다.

정치적 계산이란 원래 오묘하다. 이 나라의 온갖 머리 좋은 사람들이 다 모여서 만들어내는 산술이니 오죽하겠는가. 솔직히 말해서 한나라당이 말하는 대로 민주당이 그랬을 가능성은 높다. 민주주의를 하는 나라에서 총선이란 정당의 존재이유가 가려지는 가장 중요한 갈림길 행사다. 그러다 보니, 선거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정치권의 쟁패 그 이면의 아귀다툼은 상상을 초월한다. 정도(正道)도 없고, 왕도(王道)도 없다. 법이라는 올가미 앞에 가려야 할 부분이 많긴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드러날 경우에 한정한다.

그렇다하더라도, 한나라당의 처지 또한 그리 녹녹치 않다. '신 행정수도 충청권 건설'은 아직 당론이 아니다. 수도권 보궐선거에 나선 야당 후보들이 여전히 '행정수도 이전반대' 공약을 내거는 모습만 보아도 그렇다. 그런 가운데, 당내에 꾸려진 '행정수도 충청권 이전 추진협의회'는 또 무엇인가. 이전을 바라는 지역여론에 대한 입지를 살리면서 노 대통령의 공약이행을 압박하여 충청 민심을 흔들 수 있는 양수겸장(兩手兼掌)의 묘책인가. 기어이, 충청 한나라당 의원들의 피난처만 되다가 말 것인가 궁금하기 짝이 없다.

정치권 물어뜯어 만신창이 만들어서는 안 돼

이미 상식이 되다시피 했지만, '신 행정수도 충청권 건설' 문제는 충청만의 문제가 아니다. 분권의 실현, 수도권 과밀문제의 해소, 국토의 균형발전.... 등등 헤아리기조차 힘든 많은 의미가 담긴 국가적 과제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이 이 문제를 놓고 정당의 이해득실, 특히 내년 총선에서의 유·불리를 착안점으로 놓고 정쟁의 화두로 묶어 천덕꾸러기를 만들어 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 문제야말로 당리당략의 재물로 전락해도 될 그런 허드레 문제가 아닌 것이다.

정치권은 이 문제에다가 당리당략의 시커먼 유독가스를 덮어씌우지 말라. 부지 선정을 위해서는 시간이 많이 걸려서 일정을 늘려야 되겠네 어쩌네 구차하게 변명하지 말라. '오얏나무 밑에서 갓끈 고치지 말라'는 옛말이 있지 않던가. 이 문제를 불쏘시개 삼아 수도권 민심을 자극하고, 충청권 민심에 불지르고 어쩌고 할 엉큼한 속셈을 품지 말라. 공주 유세장에서 민주당 정대철 대표가 한 '공주가 행정수도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발언에 자극 받아 충북 쪽이 정 대표의 사과와 해명을 대놓고 요구하고 나선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불순한 의도가 되가져 올 국민들의 처절한 불신과 절망을 정치권이 이제는 진정 두려워해야 한다. 무엇이든 걸리는 대로 정쟁의 밥상 위에 올려놓고 어금니 송곳니 닥치는 대로 이빨 들이대고 물어뜯어 만신창이를 만들어버리는 정치권의 속성을 지금 뜻 있는 국민들은 몹시도 걱정스러워 하고 있다. 이건 절대로 그래서는 안 된다. '신 행정수도 충청권 건설' 문제는 이제 담백한 논리와 발 빠른 접근으로 합심하여 달려가야 할 대한민국의 가장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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