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과 대통령의 '잡초정치인 퇴출' 발언

얼마 전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유시민의원이 국회에서 평상복 차림으로 국회의원선서를 하려고 시도했다가 야당의원들이 퇴장해버리는 소동이 일어난 적이 있었다. 매체를 통해서 흘러나오는 그 뉴스를 접하는 사람들의 반응은 사뭇 달랐다. 그를 지지하는 개혁성향의 사람들은 통쾌하다는 반응이었고, 반대의 입장에 선 사람들은 인기영합적 발상과 행동이라며 힐난했다. 국회의 권위를 땅에 떨어뜨린 무뢰한 행동으로 폄하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국회의사당에서 벌어진 '유시민 퍼포먼스'가 갖는 의미는 결코 단순치가 않아 보였다. 재야에서 이런 저런 활동을 통해 유명세를 얻은 끝에 개혁정당을 이끌어온 그가 국회의원에 당선된 후 첫 등원하는 자리에서 벌인 행동은 '시위'보다도 더 적나라한 '해프닝'으로 비쳐졌다. 걸핏하면 싸움질이나 벌이는 비생산적인 국회에 대해서 철저히 계산된 행동으로 접근한 유시민이, 발언대 옆에서 머쓱한 얼굴로 벙글거리던 모습은 '신나는 야유' 그 자체였다.

유시민·대통령 편지 과민대응 정치권 흥미로워

그런 기억이 선연한데,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7일 인터넷 메일을 통해서 직설적으로 '잡초정치인 제거론'을 펼쳐 정치권이 또 한 차례 드글드글 시끄럽다. 노 대통령은 '잡초를 제거하는 농심'을 비유로 들면서 잡초정치인 제거가 곧 정치개혁임을 강조했다. 이 편지에서 잡초로 지목된 정치인의 유형은 사리사욕·집단이기주의에 빠진 정치인, 반 개혁적 인사, 지역감정을 악용하는 사람, 전쟁이야 나든 말든 국가안보를 정략적으로 이용하는 사람 등이었다.

표현된 그대로의 뜻을 살리자면 한 마디도 그르다 할 것이 없어 보인다. 거꾸로 이야기해보면 더욱 선명하다. 사리사욕이나 집단이기주의에 빠진 자가 어찌 바른 정치를 할 수 있을 것이며, 사사건건 개혁을 발목 잡는 위인이 정치권에서 행세하는 것을 두고볼 수 있을 것인가. 지역감정과 안보를 악용하여 국회의원이 되고 긴 세월 권세를 유지한 파렴치한 사람이라면 분명 정치권에 더 있어서는 안될 터. 국민을 직접 상대하여 정치를 하겠다는 뜻이 담긴 대통령의 편지 속에 담긴, 말인즉슨 구구절절이 맞는 말 아니던가.

정치란 것이 얼마나 복잡한 것인지는 몰라도, 유시민의 엉뚱한 행동을 놓고 의미·해석 갖가지로 붙여가며 갑론을박하던 논리 꼭 그대로, 노 대통령의 '잡초제거' 일갈에 대해서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사실, 유시민의 평상복 등장보다도, 노 대통령의 잡초정치인 제거론 보다도 더 재미있는 것은 그를 바라보고 대응하는 정당·정치인들의 반응이다. 두 가지 사례를 바라보는 시각이 어쩌면 여야가 그렇게 극명하게 다를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권위 추락 국회 모습, 철저한 자업자득

대통령의 편지글 몇 대목을 놓고 민주당의 반응은 그저 그랬다. 그러나 한나라당 이규택 원내총무는 '신당창당에 방해되는 정치인을 솎아내고, 내년 총선에서 어용시민단체들의 낙선운동을 주도·향도하겠다는 속셈'으로 해석했다. 자민련 유운영 대변인도 '대통령으로서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은 몰이성적인 처사'라며 '대통령이 아니라, 시민단체의 수장으로 착각하는 것 아닌가'고 몰아쳤다. 대통령의 글 몇 줄 속에 정말 그런 오묘한 뜻이 들었다는 말인가.

'유시민 퍼포먼스' 그 자체보다도 그의 행동에 항의하여 퇴장하는 야당의원들의 뒷모습이 더 꼴불견이었다는 일부의 비아냥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대통령의 편지글 몇 줄을 놓고 공세의 논리를 한껏 펼치고 있는 야당의 신경질적인 반응은 또 무엇을 뜻하는가. 한 마디로 '자존심을 상한 모습'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상상을 뛰어 넘는 시대의 변화와 권위주의를 인정치 않으려는 새로운 문화의 발돋움에 내심 크게 당황하고 있음을 반증하는 현상이다.

솔직하게 말해서, 국민들의 심중에서 국회는 권위를 잃은 지 오래다. 포장마차 대폿집 안주로나 등장하는 것이 국회이야기이고, 강아지 이름 부르듯 불러가며 동네북 삼는 것이 국회의원이다. 왜 이렇게 되었던가? 고금동서를 막론하고 참다운 '권위'를 지켜주는 것은 사사로운 '권위주의'가 아니었다. 허장성세로 억누르고, 헛기침으로 점잖을 가장한대서 저절로 생겨나는 '권위'가 아니다. 오늘날 국회가 이 모양이 되고, 정치인들이 이 꼴 난 것은 철저히 자업자득이었다.

도도한 개혁의 강물, 손으로 퍼낼 참인가?

국회의원 선서를 하러 가는 유시민이 구겨진 바지에다가 노타이차림으로 나타났다. 행정부의 대통령이 대놓고 '농부가 김을 매듯 잡초정치인을 솎아내자'고 편지를 썼다. 그런데도 정말 많은 국민들은 박수를 친다. 노타이차림의 유시민을, 정치인을 잡초에 비유한 대통령을 무조건 나무랄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쩌면 결코 용납될 수 없을 그런 일탈이 단순히 용납의 차원이 아니라, 적극적인 지지의 박수까지 받는 세상이 되었다는 것이다.

국민들이 정말 무지해서 그런 것이 아닌 바에는 정치가 얼마나 잘못 되었는지 치열하게 반성해야 할 시점이 아닐까. 시대가 바뀌고 있다. 끊임없이 새 물결을 원하고 있는 이 시대에 구태의연한 가치기준과, 케케묵은 권위주의에 사로잡혀서 밀려드는 도도한 개혁의 강물을 손으로 퍼낼 참인가. 개혁은 모든 과거를 부정하고 뒤엎으려는 파괴적 행위와 다르다. 스스로 깨닫고 부단히 변화해 가는 모습을 보일 때 누구나 개혁의 주인이 될 수 있다.

대통령의 언행이 자주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기성 정치권이 '패러다임의 변화'라는 시대적 변천에 적응하지 못한 때문이라고도 한다. 패러다임의 변화. 과거 우리가 가지고 있던 어떠한 고정관념도 인정치 않고, 시대를 따라 형성되어 가는 새로운 가치관이 그 중심에 서 있다. '노무현'이라는 인물이 중심 축이 되어 만들어내는 여러 가지 일들은 아직 우리 일반인들이 받아들이기에 쉽지 않은 구석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매사 음모적 시각 해석 바람직하지 않아

그렇다 하더라도, 새 대통령이 만들어내는 메시지를 놓고 무작정 음모적 시각으로 해석하고, 경계의 목소리만을 높이는 것은 온당치 못한 것 같다. 쉽게 이야기해서, 자신에게 스스로 '잡초 정치인'이 아니라는 신념이 투철하다면, 대통령이 특정인을 거론하지 않는 한 '잡초정치인을 솎아내야 한다'고 백 번 말한 들 노여워할 무슨 이유가 있을까보냐, 그 말이다. 그러기에, '잡초정치인 퇴출'발언을 놓고 '너는 약초냐?'면서 악악거리는 측들을 '도둑놈 제 발 저린 짓'으로 치고 나오는 청와대의 응대도 마냥 우습지만은 않다.

유시민의 평상복 등원을 꾸짖다 못해 의사당 의자를 박차고 나오는 그 심사를 속속들이 이해할 수 없듯이, 정치권의 잡초들을 솎아내야 한다는 지극히 원론적인 이야기에 '스스로는 절대로 잡초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많은 의원님들이 필요 이상으로 발끈 하는 모습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대통령에게 정말 그렇게 깊은 꿍꿍이가 있는지 어떤지는 아직 쉽게 알아볼 일이 아니다. '말이 많아서 탈'이라는 지적을 숱이 받고 있는 노 대통령이 집권 초기에 일으키고 있는, 크고 작은 정치적 파동에 대한 해석은 일단 논외로 치고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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