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뜨거운 총선전야, 괜찮은가?


17대 총선이 채 석 달도 남지 않았다. 이런저런 파열음을 욱대기며 흘러가는 시간의 틈바구니에서, 지금 대한민국은 '도가니'를 막 달구기 시작한 가마다. 세월을 침착하게 반추할 겨를도 없이 날이 새면 빅 뉴스가 터지고, 삿대질이 계속된다. 서로 눈 부라리며 가만히 두지 않겠다, 법적 책임을 묻겠다 을러대는 사이에 국민들은 그저 삶이 고달플 따름이다. 기득권을 상징하는 우상들이 철저히 부숴 내리는 서슬에 쇠고랑을 차고 망신스런 표정, 억울한 낯빛으로 잡혀가는 군상은 줄곧 이어진다.

2003년을 내내 시끄럽던 정치권은 새해를 맞고서도 여전히 소요가 깊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조금씩, 4월 총선에 목숨 걸고 부나비처럼 돌진하는 삶으로 정치판을 분칠해 간다. 두 팔 걷어붙인 정치인들의 진정한 속내는 무엇일까. 마주 보고 달리는 열차는 어느 한 편이 멈춘다고 충돌의 위험이 아주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가속이 너무 붙었다면 이미 충돌은 피하기 어려울 것이고, 잘해야 망측한 피해를 조금 줄여보는 방도 이외에 묘책이 없으리라. 지금 정치판은 미상불 마주 달리는 열차의 꼴이다.

4월 총선에 목숨걸고 부나비처럼 돌진하는 정치권

17대 총선의 의미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관점의 차이에서부터 분위기는 꼬인다. 한 쪽은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중간평가'라고 정의하고싶어 한다. 그렇게 첨예하게 만들어놓고 젓 먹던 힘까지 다 써서 망신살을 뻗치게 해주겠다는 심사다. 다른 한 쪽은 겉으로는 중간평가가 아니라고 손사래를 치면서도 '올인'이라나 뭐라나, 내심 총선에다가 모든 것을 걸어놓은 낌새다. 총선 판을 달구어내는 여러 가지 장치들이 하나 둘 늘어나고 있다. 권력의 쟁투가 늘상 그래왔듯이 대포도 보이고, 딱총도 보인다.

그런데, 다가오는 4월 총선 한 판 승부를 가름할 많은 요소들이 과열을 여실히 예고한다. 우선 이태 전 대통령선거에서 패배한 한나라당의 분루가 있다. 이를 갈고 성을 내며 달려온 지난 1년여의 벼름은 그러나 오늘날 '차떼기 정당'이라는 오명의 그늘에서 옴쭉 못할 족쇄나 얻어 차고 있는 몰골이다. 그 참담한 상황 속에서 이번 총선을 목숨 걸고 이겨야 할 이유는 또 얼마나 충분할 것인가. 한나라당으로서야 이번 선거에서 패배하면 필경 명줄이 오락가락하리라는 절박감을 떨치기 어려울 참이 분명하다.

각 정당들 총선 이겨야 할 절박감 갈수록 증폭

한나라당의 분기(憤氣)가 불러 온 열린우리당의 강박관념은 또 어떤가.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치고싶지 않아 하는 패자의 옹졸한 비명이 자존심에 얼마나 상처를 입혀왔던가.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막말까지 들으면서, 국회 과반수의 저력으로 위협해온, 야속한 다수결 민주주의의 대의 속에서 시퍼렇게 멍들어온 승자의 오기 또한 깊고도 깊다. 이 또한 이번 선거를 반드시 이겨야 할 불가피한 사유를 용출한다. '올인'전략으로 불리는 총출동의 이면에 바로 그런 정서가 있다.

그런 열린우리당의 한쪽 끝에 '속곳 내주고 뺨 맞은' 심사의 새천년민주당이 서슬 퍼렇게 존재한다. 노무현 후보가 당선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해 정권재창출의 기적을 일궈냈다는 자부심을 짓밟힌 한이 가로세로 얼룩진 참괴한 모습으로 '배신자에 대한 심판'을 기치로 박 터지게 싸워야 할 명분을 곧추 세운다. 청출어람(靑出於藍)의 이치를 내보이며 소망을 엇나가고 있는 민심의 변이가 민주당의 전의(戰意)를 열렬히 탱천한다. 수중전 공중전 육박전을 불사할 충분한 이유가 가쁘게 살아 숨쉰다.

친 노무현 단체들의 '국민참여0415' 쟁점 떠올라

'표적공천' '맞짱공천'이라는 살벌한 단어들이 생겨났다. 내가 꼭 당선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당선은 부상(副賞)으로 두고 누군가를 반드시 떨어뜨려야 할 목표로 정해 일전을 불사한단다. 이 또한 정치판을 과도히 달구어낼 가능성이 높은 필연적 불쏘시개다. 친 노무현 단체들의 발심도 수상쩍다. 대통령선거에서 노무현 당선을 일궈 낸 '노사모'가 중심이 된 '국민참여0415'가 겉으로는 시민운동이고, 내적으로는 열린우리당 선거운동이 될 당선운동을 펼칠 예정이란다. 하마부터 야당의 일갈이 예사롭지 않다.

뿐만이 아니다. 시민단체의 낙천-낙선운동이 예고됐다. '2004총선시민연대'가 떠서 지난 16대 총선에 이어 이번에도 떨어져야 할 못된 새들을 가려 총을 겨눈단다. 자정의 힘을 완전히 잃어버린 정치권의 미진한 능력을 보완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 국민이 나서서 비뚤어진 정치를 바로 잡는 일이 왜 저어될 것이냐. 그렇다마는, 과열이 충분히 예고된 작금 정치판의 사정이 워낙 험악해, 17대 총선에서 아주 잘해야 될 것이라는 노파심이 깊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정말 잘 해야 한다.

심각한 정치환멸 속 '정치권 극한대결' 문제 커

이래저래 걱정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날로 뜨거워지는 총선기류 속에서, 대통령은 이미 '홍위병 동원의 배후'로 지목 받고있고, '불법 사전선거 운동'시비가 한없이 불거지고 있다. 총선까지만 살고 그 이후에는 그만 살 작심이 아닌 바에, 무한 소용돌이의 여파가 어떤 양상으로 뻗칠 것인지 심려가 자꾸만 커 가는 것을 어쩌랴. 이대로 가도 괜찮을 것인가. 민생의 시름이 갈수록 깊어지고, 끝간데 없이 악화되고 있는 실업으로 빈털터리 젊은이들이 거리에 넘쳐나고 있는 터에 정말 괜찮을 것인가.

총선 분위기가 뜨뜨 미지근하게 흘러가는 것은 좋지 않다. 얼마쯤은 쟁점이 살아나고, 국민들의 관심도 높아져야 한다. 그런데, 국민들의 정치에 대한 환멸이 이리도 깊어지는 한복판에서 정치권이 극악한 대립으로 살벌해져 가는 것은 문제다. 혹여라도 판이 무참히 깨어지면 어쩔 것인가. 그 피해를 고스란히 입게 될 국민들을 진심으로 생각해야 한다. 좀더 슬기롭게 가야한다. 분명 뭔가 잘못돼가고 있다. '개혁'이 '혁명'보다 어려운 그 이유를 다시 한번 곰곰 생각해야 할 때가 바로 지금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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