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는 장사' 못하는 바보정치 현상들


사람은 다급하면 사리분별이 흐려진다. 칼자루를 쥔 쪽의 참뜻 살피랴, 우선 살기 위해 버둥질치랴, 요즘 야당 한나라당·민주당의 황망한 모습은 보기에 딱할 정도에 이르고 있다. '맞은 놈 보다 때린 놈이 발 못 뻗고 잔다'는 속담도 있듯이 여당을 자처하는 열린우리당도 왠지 안정해 보이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정치에 대한 불신의 골이 너무너무 깊어서, 정치에 대한 뜨거운 열정 바라기는 언감생심 꼴이 났을지라도 민초들은 아주 마음을 비우지는 않았다. 바라보지 않는 듯 은연히 째려보고 있다.

한화갑 전 대표의 구속영장 집행파동으로 독이 바짝 오른 민주당이 전국순회 규탄대회를 연다고 기세를 올렸다. 부랴사랴 시작한 장외투쟁은 3일 광주에서 시작종을 울렸다. 그런데, '하필이면 왜 그 시발점이 광주냐?' 민주당의 행세를 바라보는 시선이 한껏 싸늘해지자 언 발 거둬들이고 추가행사를 중단하기에 이르렀다. 민주당의 이런 행보는 김대중 대통령 시절 뻑 하면 대구에서 집회를 꾀하던 한나라당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밖에 나가놀다가 싸대기 한 대 맞고 '엄마!'부르며 집으로 달려 들어오는 철부지처럼.

민주당 장외집회 '광주' 시작, 고개 가로젓게 만들어

그렇다. 민주당의 광주집회는 지역감정을 깨트리기 위해 대구출마를 결정하고, 비장한 표정으로 카메라 앞에 서던 조순형 대표의 모습과 자꾸만 오버랩 되면서 고개를 가로젓게 만들었다. 그게 한화갑 전대표의 구속영장 발부로 흥분한 민주당이 앞 뒤 잴 겨를도 없이 막 나간 정치적 판단이라면 실망이다. 최근 들어 민주당의 위기감은 극을 치닫고 있는 낌새다. 믿건 못 믿건 민주당의 지지도가 한자리수로 떨어졌다는 몇 몇 여론조사가 가뜩이나 갈길 바쁜 민주당을 초조의 늪으로 밀어 넣고 있는 것 같다.

또 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10일부터 열기로 한 법사위 청문회다. 대검찰청, 금감원, 국세청 3개 기관과 93명에 이르는 중인이 채택됐으나, 주요 청문대상인 검찰내부의 묵시적 반발과 청와대와 열린우리당의 맹비난·보이콧 으름장으로 증인이 조절되는 등 하마부터 좌충우돌이다. 그러나 결정적인 하자는 달리 있다. 수사중인 검찰간부를 증인으로 마구 집어넣은 데다가, '차떼기'라는 이름으로 국민들의 공분을 사고 있는 한나라당의 주역들은 다 빼고 하자는 청문회라는 점이다.

공평성 결여한 한나라·민주 청문회 결과 낙관 못해

필경 충분한 이해득실 저울질이 있었을 것이다. 야당끼리의 야합이라는 험구, 총선용 청문회라는 비난도 비용으로 계산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문회를 강행하기로 한 것은 수지가 맞는 장사가 될 것이라는 나름대로의 셈 법이 있었으리라. 그런데, 아무리 짚어보아도 이번 청문회는 승률이 의심스러운 수상한 도박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 냉철하기 이를 데 없는 민심이 형평을 결여한 청문회의 진정성을 납득할 것인가. 그 결과들을 녹녹히 용허할 것인가, 믿음이 아주 서지 않는 것이다.

칼자루를 쥔 쪽의 가혹함을 한껏 피부로 느끼고 있을 야당으로서야, 잔 매 맞아가며 카운터 펀치를 노리는 '한 방 전략'으로 승부를 걸어볼 수는 있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민심 기우는 모습을 간과하고, 뻔히 보이는 역풍을 무시하고 밀어붙이는 전략이 이 나라 민주주의를 위해 얼마나 덕될 것인지는 더 따져볼 필요가 있다. 문제는 명분이고 대의다. 불법 정치자금에 관한 청문회를 한다면서 '반쪽만 까뒤집자'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같은 입으로 '검찰의 편파성'이라는 딴 말을 어찌 거듭할 것인가 그 말이다.

'노 대통령·정 의장 수사 찬성 83.9%' 무서운 민심 드러내

지난 2일에 했다는 한겨레신문의 여론조사는 우리 국민들의 무서운 민심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응답자의 76.7%가‘민주당 한 전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는 검찰수사 결과에 따른 법 집행’이라는 데 동의한다고 밝혔다. 민주당이 이를 놓고 아무리 '민주당과 호남 죽이기'라고 버텨도, 민심은 뜻을 같이 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런데, 정말 주목해볼 대목이 또 있다.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의 경선자금도 수사해야 하느냐'는 물음에는 무려 전국의 응답자 중 83.9%가 그렇다고 답했다.

민주당 한화갑 전 대표의 구속결정이 부득이한 수사진행이었다는 검찰의 말이 미덥거나 안 미덥거나 하는 그 판단의 문제는 논외다. 국민들은 '노 대통령과 정 의장의 경선자금도 똑같은 잣대로 수사하라'는 민주당의 또 다른 주장에도 손을 번쩍 들어준 셈이 된다. 생각해볼수록 소름 끼칠 정도로 냉엄한 여론의 현주소 아닌가. 지금 정치판에서 민심의 준엄한 판단력을 믿지 않고 뒷방 모사(謀事)로 어찌어찌 넘어가 보려는 정치꾼들의 불순한 생각이 여전 있다면 그건 백날 헛수고다. 정중동(靜中動). 지금 민심은 늦겨울 한풍 속에서 소리 없이 시퍼렇게 곤두선 의로운 칼이다.

저작권자 © 디트NEWS24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