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또 다른 전쟁 불러

대한민국이 시끄럽습니다. 시끄러운 만큼 제 머릿속도 지난 월요일부터 뒤죽박죽 어지럽습니다. 김선일님의 죽음에 안타까워하는 마음은 대한민국인 4천 5백만 모두 한가지입니다.

하지만 이라크 추가 파병에 대한 의견은 극단으로 갈리고 있습니다. 당장 사단이라도 날 것처럼 각종 인터넷 게시판에서는 욕설까지 오가며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김선일님의 죽음을 응징하기 위해 공수부대를 파견해야 한다는 얘기도 나옵니다. 충분히 이해가 가는 부분입니다.

대학 친구 중에 전경으로 군 생활을 한 녀석이 있었습니다. 욕 한마디도 제대로 할줄 모르는 착하디 착한 친구였죠. 연세대학교 사태로 인해 대학가가 시끄럽던 시절 술자리에서 만난 친구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난 데모 진압가면 아무도 안 때리려고 했어. 다 친구들이고 후배들이고 선배들이니까 그냥 때리면 맞고 잡혀도 보내주려고 했지. 근데 그게 아니더라. 옆에 서 있던 후임 병이 머리가 깨지고 허리가 접히는 모습을 보니까 눈이 뒤집히더라...”

소주 몇 잔에 친구가 털어놓은 군 생활의 어려움이었습니다. 이라크 저항세력에 대한 ‘응징론’은 이렇게 인간의 감정으로 당연한 주장일지 모르겠습니다. 내 가족, 내 친구, 내 이웃이 생판 모르는 사람들에게 처참한 꼴을 당했다면 분노하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겁니다. 눈이 뒤집히지 않는 사람이 없겠죠.

하지만 추가 파병으로 인해 사지에서 떨어야 할 우리 청년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메어집니다. 지금도 총성을 뒤로 하고 현지 봉사 활동을 펼치고 있는 서희, 제마부대원들의 불안감은 어떨까요. 그들을 걱정하고 있는 부모들의 마음은 또 어떻고요. 남의 나라 일로만 알았던 일이 김선일 님의 죽음으로 나와 우리 이웃의 일이 됐죠.

자이툰 부대원으로 아들,딸들을 포염 속의 이라크에 보내야만 하는 부모들의 마음은 무엇으로 달래야 하나요.

전쟁은 또 다른 전쟁을 부를 것입니다. 제2의 9. 11 사태가 대한민국에서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파병으로 인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이익이 도대체 얼마나 될까요? 우방으로서 미국과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논리 역시 김선일님의 피랍 시점 은폐 의혹을 받고 있는 정부의 입이라면 도저히 납득되지 않네요.

김선일님의 피랍과 정부의 사후 조치...꼬리에 꼬리는 무는 의문이 우리 국민들에게는 김선일님의 죽음보다 더 큰 부분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게 오늘의 현실이네요. AP 통신으로부터 외교부 누가 전화를 받았는지가 가장 큰 관심사고 되고 있는 상황에서 김선일님에 대한 애도도 마음 놓고 할 수 없는게 오늘의 현실인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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