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혹만 남기고 다시 묻는 꼴

여름이 되면 '여행'이 생각난다. 이곳 저곳을 구경하고 돌아와 뒷이야기를 나누며 추억에 잠기는 것은 보통 사람들이 꿈꾸는 소박한 소망일 것이다. 대학생들이 국토대장정을 떠나는 것도, 배낭을 둘러메고 유럽행 비행기에 오르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공무원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대전시도 공무원들의 견문을 넓힌다는 차원에서 몇 해 전부터 직원대상 해외배낭연수를 실시하고 있다. 이들은 여행 경비 가운데 70%를 예산으로 지원받고 나머지 30%만을 부담한다. 여기서 예산지원의 의미는 해외에 나가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돌아와 시민을 위한 행정에 보탬이 되게 하라는 뜻이 담겨 있다.

올 여름 대전시의 해외배낭연수도 인기를 끌었다. 40명으로 계획된 선발 인원 모집에 무려 90명이 지원했다. 이 가운데 외국어 듣기 평가 성적과 경력, 직급 등을 따져 41명(당초 계획은 40명)이 선발되고 나머지 49명에게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이같이 소위 '피 튀기는' 해외배낭연수 명단에 대전시 고위 간부 공무원의 며느리가 포함돼 말썽이 됐다. 직원들은 수근거렸고 해괴한 의혹도 나돌았다. 선발과정에 고위 공무원의 '부탁'이 있었다는 믿기 어려운 얘기도 나왔다. 대전시청의 분위기는 한동안 뒤숭숭했다.

급기야 대전시 공무원직장협의회가 나섰다. 회의가 열렸고, 의혹에 대한 진상규명과 함께 재발을 방지해야 한다고 결의를 다졌다. 해외배낭여행 선발을 맡았던 담당과장을 만나 선발과정에서의 심사 및 평가에 대한 자료 공개를 공식적으로 요청했다. 공직협 홈페이지에 관련 글이 올랐다가 삭제된 것에 대해서도 추적조사를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내부에서 불신 받는 행정 시민들에게 신뢰 얻어낼 수 없어

그러나 며칠이 지나자 '없었던 일로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대전시 공직협은 회원들에게 보낸 알림글에서 ' 관련자 2명이 배낭여행을 자진 포기하고 차순위자를 대상자로 결정키로 했다'고 밝혔다. 대전시도 '정보공개 대상'이 아니라면서 공개를 않기로 결정했다.

자료공개를 요구했던 공직협은 "대전시의 결정을 받아들였다"면서 '공직협 회원들의 불이익이 해결된 것으로 의혹 규명 부분은 정리하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선발과정에서의 투명성 규정은 공직협 몫이 아닌 만큼 이 정도에서 마무리하기로 했다'는 게 공직협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쯤에서 의문이 남는다. '며느리 괴담'은 뭐였는가. 논란의 중심이었던 당사자만 억울하게 희생시키고 만 것인가.

애초 공직협이 요구한 선발과정의 자료공개에 대해 '공개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를 대기보다는 차라리 선발과정을 철저히 조사하고 과오가 드러날 경우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면 어떤가. 그리고 앞으로 이같은 행정처리 과정에서 보다 투명한 모습을 보여준다면 어떨까.

공무원 내부에서조차 불신을 받는 행정은 시민들에게 결코 신뢰를 얻어낼 수 없다. 염홍철 대전시장이 취임하면서 주창한 '변화와 개혁' 도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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