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거리]쌍용천(대전시 중구 유천동)

유년시절 가장 먹고 싶은 게 있었다면 자장면과 짬뽕을 꼽을 수 있다. 지금은 집이나 사무실에서 가장 손쉽게 시켜먹는 음식이 되었지만, 먹고 살기가 어려웠던 시절에는 귀한음식으로 졸업식이나 생일날 등 년중행사(?)에나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다. 요즘에는 술 마신 다음날 속 풀이로, 또 마땅한 식사가 없을 때 가장 편하게 찾는 음식으로 어김없이 짬뽕은 그 순위에 들어갈 것이다. 하지만 그런 짬뽕의 개념을 뛰어넘는 맛으로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는 곳이 있다.

▲느끼하지 않으며 얼큰하고 담백한 "쌍용천 짬뽕"

대전시 중구 유천동 4거리에 있는 “쌍용천”(대표:이명석 68).
이집은 중국요리집이지만 ‘짬뽕’하나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집이다. 유천동 사거리 국민은행 앞에 있어 찾기도 쉽다. 오래된 건물이라 외부도 허름하지만 내부역시 오랜 세월의 흔적이 묻어 있어 먼 시골식당을 연상케 한다. 안으로 들어서자 5평정도의 작은 공간에 탁자가 5개 놓여있고 벽면에는 호랑이 그림과 20년은 족히 되어 보이는 벽면가스난로가 눈에 들어온다.

거기다 오랜 세월의 때가 묻어있는 거울 그리고 80년대 대전에서 국회의원을 지낸 분이 증정한 시계가 걸려있는걸 보면 이집의 오래된 역사를 알 수가 있을 것 같다.공간이 비좁기 때문에 손님이 10명만 넘어도 꽉 차 보인다. 그래서 식사시간에는 기다리기가 일쑤다. 그러나 짬뽕 한 그릇 비우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겠는가. 그리 오래 기다리지 않고 바로 먹을 수 있다.
▲내부전경.탁자 5개와 벽면에 오랜세월의 흔적이 묻어있는 허름한 그림과 시계가 보인다.영락없는 시골 식당을 연상케 한다.

이집 짬뽕은 해산물과 야채가 풍부하다.그리고 얼큰하면서 느끼하지 않고 먹고난 후에 개운한 뒷맛이 특징이다. 짬뽕의 맛이라면 역시 해물에서 우러나오는 얼큰하고 시원한 국물 맛인데 면을 다 건져먹고 진한 국물을 쭉 들이켜면 깔끔하게 속이 확 풀린다.짬뽕 한 그릇이 양이 차지 않으면 그 국물에 밥 한 공기 뚝딱 말아 먹으면 세상 부러울 게 없을 것 같다.
굴, 홍합,오징어와 호박,시금치.당근.붉은고추 등이 어우러진 맛과 50년 경력 주방장의 손맛이 합해져 만들어내는 짬뽕 맛은 먹다보면 어느새 얼굴에 땀방울을 맺히게도 하지만, 연신 후루룩 후루룩 소리를 내며 젓가락을 입안으로 당기게 한다. 이집만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맛이기에 기존 짬뽕의 맛을 생각하면 안 될 것 같다.

이집은 부부가 함께 운영하는 집으로도 유명하다. 남편 이명석씨는 주방에서 음식을 만들어내고 부인 김순옥씨(65)는 주방보조와 서빙을 담당한다. 한마디로 둘이 북치고 장구치고 다한다.그러다보니 중국집에서 흔한 배달도 이집에는 없다. 가끔 일손이 달린 점심때는 하나밖에 없는 며느리가 나와서 일을 도와주기도 한다. 평소에는 노부부가 둘이서만 운영하지만 항상 손님들이 많은데도 주문한 음식은 무지 빨리 나온다.아마도 50년간 한솥밥을 먹으면서 손발을 맞혀온 노하우 일 것이다.

▲주인이자 남편인 이명석 대표.
사진찍기를 거부해 어쩔수 없이 전화거는 모습을 몰래 찍어야했다.
▲부인 김순옥씨.손사래를 칠 정도로 사진찍기를 거부해 부득히 이 모습을 내보내는 것을 양해바란다.

요리경력 50년을 넘긴 쌍용천 이명석 대표는 지금은 없어졌지만 1950년대 당시 대전에서 중화요리집으로 가장 유명했던 은행동 덕화루에서 주방장을 지낸 관록의 인물이다. 그후 서울에서 중국음식점을 경영하기도 했지만 대전에 정착하여 지금의 유천동에서 40년을 지켜오고 있는 터줏대감이다. 50년을 한가지 일에 매진했다면 그 또한 장인이라 불러도 될 것 같다.가게 앞에 있는 지금의 도로가 복개되기 전부터 포장마차를 시작했는데 하천 둑방에 돗자리 10개를 펴도 모자랄 정도로 손님이 장사진을 이뤘다고 한다. 지금 가게에서도 17년이 흘렀다.

“나이가 있기 때문에 이제 가게를 하면 얼마를 더 하겠습니까.하지만 우리 집을 찾아주는 단골손님들에게 보답하는 의미에서도 건강이 허락하는 한 일을 할 겁니다.아마 일 안하고 쉬면 난 병이 날겁니다” 부인 김순옥씨가 40년간 찾아준 단골들에게 웃으면서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그렇다면 짬뽕은 어디서 탄생한걸까? 짬뽕의 유래는 분명하지 않다.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짬뽕은 1899년 일본 규슈 나가사키의 진헤이준(陣平順)이라는 중국인에게서 유래됐다고 한다.당시 사해루(四海樓)라는 식당을 운영하던 그는 열악한 경제상황에 동포 고학생들이 배곯는 현실을 안타까워한 끝에 이들을 위해 값싸고 푸짐한 음식을 만들었다.다듬다 남은 파자락 등 음식재료를 섞어 ‘지나우동’(중국우동)이라고 만든 것이 화교는 물론 부두 노동자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는데 이것이 ‘짬뽕’의 원조라고 한다.

▲이곳 역시 시골 장터 식당을 연상케 하는 카운터 자리. ▲지금은 보기 힘들정도로 60-70년대 중국집에서나 볼 수있었던 메뉴판. 이 메뉴판을 보고 옛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지금은 증손자가 그 자리에서 ‘시카이로’라는 중식당을 운영하고 있는데 ‘나가사키 짬뽕’의 탄생지라는 이름 덕분에 관광객이 많이 찾는다.또 2층에 짬뽕박물관이 있을 정도로 이곳에서 짬뽕의 위력은 대단하다. 원래 진헤이준이 개발한 짬뽕은 뽀얗고 하얗다.고춧가루가 들어가지 않아 맵지 않고 시원하지만 새빨갛게 매운 짬뽕은 한국에서 탄생했다.‘웃기는 짬뽕’ 같은 아이러니는 이처럼 한국에서 대표적 중국음식으로 사랑받는 짬뽕이 정작 중국에는 없다는 사실이다. 매운 짬뽕은 한국이 원조이기 때문이다.

짬뽕이라는 이름은 ‘밥 먹었냐’는 중국말 ‘츠판’(吃飯)이 일본에서 ‘찬폰’(ちゃんぽん)으로 변했고, 한국으로 전해지면서 ‘짬뽕’으로 굳었다는 게 통설이다. 비속어로 알고 있기도 하지만, ‘뒤 섞는다’는 의미로도 사용되는 엄연한 표준어다.일본 최남단의 섬 오키나와에 ‘찬푸르’라는 전통 음식이 있는데 이를 현지인들은 ‘짬뽕’이라고 한다. 한.중.일 삼국의 음식이 모두 녹아들었다는 말이다. 아마도 ‘찬푸르’도 ‘츠판’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유천동사거리 국민은행 앞에 있는 쌍용천.

지난해 혼혈에 대한 편견의 문제를 일깨우고 떠난 미국 슈퍼볼 MVP 하인스 워드는 그를 통해 새로 조명된게 혼혈만은 아니었다. 그는 처음 찾은 한국에서 어머니와 함께 ‘짬뽕’을 먹고 싶다고 말했다. 짬뽕은 그에게 각인된 한국의 맛이었던 것이다.그를 계기로 한국 짬뽕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중국요리집에 가서 메뉴판을 보고 짬뽕이냐, 아니면 자장면이냐.’ 이보다 더 힘든 결정이 세상에 또 있을까. 그만큼 짬뽕은 자장면과 함께 한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중국음식이다. 봄이라고 하지만 아직은 조석으로 차가운 바람이 옷깃을 파고드는 요즘에는 뜨끈하고 칼칼한 짬뽕국물이 특히 간절하다는 사람들이 많다. 오죽했으면 황신혜밴드는 자신들의 히트곡 ‘짬뽕’에서 “바람 불어 외로운 날 우리 함께 짬뽕을 먹자”고 노래를 했을까.오늘도 봄바람은 여지없이 불어온다, 이런 날 우리도 한국이 원조인 ‘대전 쌍용천 짬뽕’을 먹어보자. 후회는 안할 것 같다.

-상호: 쌍용천(雙龍川)
-연락처:042-585-8417.
-영업시간: 오전10~오후8시
-휴일: 연중무휴(명절 때만 쉰다)
-배달: 없음
-주소: 대전광역시 중구 유천동 212-4
-차림표: 짬뽕4,000원, 자짱면2,500원. 탕수육 10,000원 등 중화요리 일체(사진참조)
-찾아오시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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