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용의 신목민학] 시도지사의 해외방문

얼마 전 유성구의원 3명이 해외연수라는 이름으로 해외여행을 다녀 와 비난을 샀다. 지방의원들은 욕을 먹으면서도 해외연수를 간다. 연수가 아니라 여행이기 때문이다. 내 돈이 아니라 남의 돈으로 할 수 있는 공짜, 그것도 외국 여행이라면 포기하기 어렵다.

과거엔 국회의원들의 해외여행이 자주 도마에 올랐다. 언제부턴가는 대전평생교육진흥원 같은 공공기관이나 공기업 임직원의 ‘해외연수’도 관광을 일컫는 말이 됐다. 지방의원 국회의원 공무원 모두 국민 세금으로 여행하는 사람들이라는 게 공통점이다.

같은 국민 세금으로 해외에 나가지만 이런 저런 눈치를 안 보는 사람들이 있다. 시도지사 같은 지방자치단체장들이다. 대통령의 해외방문은 외교적 성과에 대한 책임이 있지만 시도지사들의 해외방문은 그런 부담도 없다.

시도지사 해외방문은 실적 무관

시도지사는 해외방문 동안 일정에 따라 몇 군데 행사만 소화하면 그것으로 방문의 목적을 이루게 된다. 자매결연은 양쪽 도시에서 서로 오가면서 잘 지내자는 약속이니 성과에 맘 졸일 게 없다. 외자 유치도 법적 효력이 없는 MOU 한 장 만들어 사진 찍고 신문에 나면 그것으로 임무 끝이다.

시도지사의 해외방문엔 위험성도 없고, 실패도 없다. 해외방문은 자치단체장 업무 가운데 가장 쉬운 일이며 즐기면서 할 수 있는 일이다. 고소공포증이 있어 비행기를 못타는 사람이 아니면 해외방문을 싫어할 이유가 없다. 자치단체장에게 해외방문은 대개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해외여행’에 다름 아니다.

시도지사들은 지방의원처럼 심사를 거쳐 허가를 받아야 하는 것도 아니고 여건만 되면 언제라도 나갈 수 있다. 시도의장과 지방의원 몇 명쯤 데려가면서 선심도 쓸 수 있다. 또 외국에서 찍어 보내는 그럴듯한 MOU 체결 사진은 시도지사 자신의 치적-가짜인 경우가 많지만-을 홍보하는 좋은 수단이다. 해외방문이지만 해외보다 내부 홍보가 목적인 셈이다. 시도지사들이 너도 나도 자주 바깥에 나가는 또 다른 이유다.

시도지사의 외국방문 자체를 백안시할 필요는 없다. 바야흐로 지방외교 시대다. 세계화 시대엔 지방도 바깥으로 나가 외국의 지방들과 협력하고 경쟁해야 한다. 경제적?문화적 교류의 범위를 세계로 넓혀야 한다. 90년대 중반 염홍철 시장이 관선 대전직할시장 시절 남경시와 맺었던 자매결연은 두 도시간 교육 문화교류를 확대하는 계기가 되었고 이후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해외 아닌 내부 홍보용 많아

그러나 각 시도가 자매결연이나 외자유치를 위해 방문했던 도시 가운데 상당수는 그 뒤 교류가 끊기다시피하면서 시도지사의 ‘해외 여행지’로만 남았다. 자매결연과 문화교류로 포장하지만 단체장의 외유(外遊)에 다름 아닌 경우가 허다하다. 유명 관광지를 찾는 것만 여행인가? 이리 저리 여러 나라를 다니며 구경하는 것도 좋은 여행이다. 세금 써가며 하는 일이 단체장의 여행에 그쳐선 안 된다. 지금 시도지사들의 해외방문엔 그런 요소가 적지 않다.

지방의원보다 몇 배 많은 예산을 써가면서 이뤄지는 시도지사의 해외방문도 이젠 허와 실을 제대로 따져 낭비를 막아야 한다. 1년에 200만원 미만으로 이뤄지는 지방의원들의 해외연수에 대한 감시에 비하면 수천만원씩 쓰면서도 효용성이 입증되지 않는 자치단체장의 해외방문에는 너무 너그러운 편이다.

나도 시장이라면 해외방문을 핑계로 세금 펑펑 써 가면서 일본으로 아프리카로 몽골로 아시아로 놀러 다니고 싶다. 그곳에 가선 자매도시 시장과 러브샷을 즐기고 내가 초청해선 폭탄주를 권하면서 말이다. 현재 아시아를 순방중인 안희정 지사와 모레 몽골로 나가는 염홍철 시장은 앞으로는 해외방문의 내용 성과 비용 등을 상세히 밝혀 이런 의문이 들지 않게 해야 한다.

한비자는 군주가 유람(遊覽)을 너무 좋아하는 것을 망국의 징조 10가지 가운데 하나로 들었다. “나라를 떠나 멀리 유람하기를 좋아하거나 사냥을 즐기면서 바른말 하는 선비를 무시하면 자기를 위태롭게 하는 것이다.” 제왕의 과도한 유람에 대한 위험성을 말한 것이나 시도지사들도 해외여행을 너무 즐기다가 주민들의 눈 밖에 나면 ‘다음’을 기약하기 어려울 것이니 유념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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