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목민학] 청와대 독대

심대평 선진당 대표가 이명박 대통령과 ‘독대’했다가 혼쭐이 나고 있다. 그렇지만 따지고 보면 온전한 독대는 아니었다. 이쪽에선 심대표 혼자였지만 저쪽에선 대통령이 그의 수하인 정무수석을 대동한 만남이었다. 대통령과 야당대표가 둘만의 비밀을 나눌 만한 자리는 아니었다. 청와대 설명대로 ‘비공식 오찬’이었고, ‘비공식 만남’이었다.

‘비공식 만남’은 ‘독대’와는 다르다. 정치에서 독대는 대개 목적이 분명하고, 주제 또한 긴요한 편이다. 그러나 ‘비공식 만남’은 반드시 주제가 있는 것도 아니고 문제 해결을 목적으로 하는 것도 아니다. 심 대표는 독대 후 FTA 문제 등을 논의했다고 해명했지만 문제 해결이 목적인 만남은 아니었다.

MB-심대평의 독대는 비공식 만남에 가까웠다. MB는 새로 선출된 ‘제2 야당 대표 심대평’을 만났다기보다 선진당 대표로 선출된 ‘전 충남도지사’를 만난 것으로 보인다. MB가 서울시장을 하고, 심 대표가 충남도지사를 할 때 두 사람은 시도지사 모임 등에서 자주 만나면서 ‘잘 통하는’ 사이가 됐다고 한다.

-‘독대’와 ‘비공식 만남’의 차이-

한때 격의없이 지내던 사람이 당대표가 되었으니 축하오찬 정도 하는 게 그리 문제 될 것은 없다. 심대표가 선진당의 새 대표가 되자 이 대통령은 해외방문 중인 데도 전화를 걸어 축하했다고 한다. 그 뒤 한 행사장에서 조우했을 때 대통령은 심 대표에게 “우리 밥 한번 먹자”고 했고, 약속을 지키기 위해 청와대로 불렀다.

심대표가 과거 시도지사로서 함께 지낸 사이가 아니라면 당대표가 되었다고 해서 청와대로 불러 밥 먹는 일은 아마 없었을 것이다. 대통령이 과거 인연으로 불렀고 그래서 간 것뿐이다. 독대 아닌 독대는 그렇게 이뤄졌다.

문제는 심대표의 현재 신분이 야당대표라는 점이다. 야당 대표는 대통령을 사적(私的)으로 만나기 어려운 자리다. 대통령과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면 형식이 어떻든 일정한 절차와 과정이 필요하다. 당대표로서 대통령을 만나려면 당에 그 사실을 미리 알리고 회동의 성과를 위한 전략도 마련해야 한다.

선진당 의원들도 바로 이점을 지적하지만 진짜 우려하는 것은 따로 있다. 인기가 떨어져 그 측근들까지 도망가려는, 임기말 대통령과 자기 당이 친하게 지내는 것처럼 보일까봐 걱정이다. 내년 총선에서 금배지를 날려버리면 어쩌나 하는 우려 때문이다. 더구나 심 대표가 총리후보로 거론 돼온 터라 이번 독대에서 또다시 총리 얘기가 거론되면 선진당 의원들이 받는 정치적 타격은 적지 않을 것이다.

이번 독대는 대통령의 선의였다 해도 오히려 상대를 해코지한 셈이 됐다. 만약 심대표가 제1야당대표였다면 그런 형식의 만남은 없었을 것이다. 두 사람이 함께 시도지사를 지낸 막역한 사이라 해도 대통령이 그런 식으로 초대하지는 않았을 것이고, 심 대표도 체면도 없이 달려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번 독대는 이 대통령은 선진당을 어엿한 야당으로 여기지 않고 있음을 보여줬다.

- 선진당 야당으로 안 여기는 대통령?-

심 대표는 야당 대표로서의 입장을 먼저 생각했어야 했다. 아직도 총리 자리에 연연하고 있다면 빨리 그 자리를 내놓아야 한다. 이 부분에 대해 심 대표 쪽은 “속마음을 열어 보일 수가 없어 답답하다”며 강하게 부인하고 있지만 그대로 믿을 사람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

한고조가 죽은 뒤 권력을 찬탈한 왕후 여씨 일가를 몰아낸 공신 주발(周勃)이 자신들이 옹립한 한문제에게 좌우를 물려달라며 독대를 청했다. 한문제는 “공적인 일이면 지금 여기서 공적으로 말하고 사적인 일이면 왕자(王者)에겐 사(私)가 없는 법”이라며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주발이 그냥 물러났다.

대통령에게도 사(私)는 없는 법이다. 개인적으로 좋아하고 밥 한번 먹고 싶어도 명색 야당대표를 그런 식으로 만나선 안된다. 심 대표도 대통령이 부른다고 허겁지겁 달려가선 안 되는 일이었다. ‘독대 사건’은 두 사람이 그 점에선 아직도 서울시장과 충남지사에 머물러 있어서 생긴 해프닝이다.

선진당 의원으로 두 사람의 비상식적인 만남을 비판하는 것은 이해하지만 당대변인직까지 내놓는 것은 비상식적이다.

저작권자 © 디트NEWS24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