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길을 갈 것인가?

대전의 송좌빈 선생(87)과 충북의 이용희 국회의원(81)은 모두 충청의 원로 정치인으로, ‘DJ(김대중 전 대통령) 맨’이었다. 송 선생은 대전을, 이 의원은 충북을 대표하는 ‘DJ 동지’였다. 그들은 오랜 기간 독재정권의 가시밭길을 함께 걸어온 민주 동지였다.

DJ가 정치적으로 어려운 시기를 보낼 때 가장 안전한 곳이라며 방문하던 곳이 대청호 주변의 송선생 자택이었다. 이 의원도 DJ가 고난의 시기를 보낼 때 헌신적으로 그를 도왔던 ‘DJ의 오른팔’이었다. 두 사람 다 DJ와 정치적 고락을 함께한 진정한 동지였다. DJ가 이룩했던 정치적 업적에 이들 공이 적지 않다.

그러나 두 사람이 현실 정치에서 이룬 개인적 업적은 꽤 다르다. 한 사람은 평생 정치인으로 살면서도 한번도 국회의원이 되어보지 못했고, 한 사람은 국회부의장이란 자리까지 올랐었다. 송좌빈 선생은 국회의원에 3번 도전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전국구를 권하는 DJ의 제안도 지역에 교두보를 놓겠다며 사양했다. 결국 그는 정치인생 50 성상을 보내면서도 ‘무관(無官)의 정치인’으로 남았다.

같은 길을 왔던 송좌빈과 이용희

이용희 의원은 제법 ‘소득’이 있었다. 국회부의장까지 지냈으니 ‘개인 영달’에서도 성공한 삶이었다. 지금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국회의원을 지내고 있다. 현재 최고령 국회의원이다.

그러나 금배지를 달고 못 달고는 두 사람을 구분짓는 요건은 아니었다. 그들은 한 시대가 요구한 정치인으로서의 길을 걸어간 사람들이다. 그 점에서 5선에 국회의장까지 오른 이 의원의 관록은 별 자랑거리가 아니었고, 끝내 ‘무관의 정치인’으로 남게 된 송 선생의 삶도 부끄러운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오랜 동안 비슷한 길을 걷는 것처럼 보였던 두 노정객의 ‘인생 종착역’은 아주 달라져 있다. 얼마 전 이 의원은 민주당에 복귀하겠다며 자유선진당을 탈당했다. 그는 본래 민주당 쪽 출신이니 정치적으로 보면 단순한 귀향이고 복귀다.

탈당 복당을 밥먹듯이 하는 정치인들이 수두룩하고, 이를 피하기도 힘든 게 정치현실이다. 어차피 오락가락하는 인간들이 많은 세상이니 그의 행보에 특별히 주목할 이유는 없다. 이용희 의원이 보이고 있는 행보는 또 한명의 그저 그런 정치인의 행태에 불과하다.

그러나 팔순을 넘긴 인생 말년에 자신이 평생 쌓아온 ‘인생의 재산’을 다 까먹는 모습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그는 지난 총선에선 선진당에 입당해 당선됨으로써 선수(選數)는 쌓았지만 도리어 정치적으로 쌓아온 재산은 다 날리고 있다. 누군가는 그에게 “그건 의원님에게 큰 손해입니다!”라고 말해주는 게 옳지만 여든이 넘는 노정객에게 누가 그런 말을 전할 수 있단 말인가?

자유선진당은 이번 그의 탈당을 비난했지만 어쩌면 그는 위로 받아야 할 사람이다. 멀쩡한 사람이 죄지은 것도 아닌데 평생 쌓아온 재산을 다 날리고 있다면 비난이 아니라 위로를 건네야 한다. 그런데도 자신은 그 같은 선택이 ‘재산’을 늘리고 연장하는 방법이라고 여기고 있으니 더욱 딱한 일이다.

그는 이제 자신의 아들에게 국회의원 자리를 대물림 해주려 한다. 한때 민주화 운동에 앞장섰던 정치인이 정치적 이념도 다른 정당을 왕복하면서 국회의원 배지를 유지하고 이젠 아들에게 그 배지를 전수해주겠다는 ‘지독한 현실 정치인’이 되어 있다.

금배지 과욕에 ‘인생 재산’ 날리는 이용희

이용희 의원이 금배지에 눈이 어두워 과거에 쌓았던 ‘인생의 재산’을 탕진하고 있다면, 현실정치에서 이 의원과는 다른 길을 걸었던 송좌빈 선생은 말년에 ‘재산’을 더 늘리고 있다. 송 선생은 금배지는 못 달았지만 ‘정치인의 사표’가 되었다.

“금배지 못단 게 무슨 자랑이냐”며 이를 비웃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아니 많을 것이다. 내년 선거에도 ‘인생의 재산’을 다 써서라도 제발 금배지 좀 달아봤으면 좋겠다는 정치신인들이 줄지어 나올 것이다. 이미 금배지를 달아본 정치인들 중에도 ‘이용희 의원’이 부럽다며 ‘인생의 재산’과 얼마든지 바꿀 준비가 된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정치인에게는 ‘송 선생’의 길과 ‘이 의원’의 길이 있다. 송 선생은 의원이라 불리진 못했지만 ‘선생’이라 불릴 자격이 있다. ‘김대중 선생’이라고 할 때도 그 ‘선생’이다. 이 의원은 금배지는 달았어도 그런 ‘선생’ 소리는 못들을 것이다. 당신이라면 어느 길을 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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