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벨트 ‘총대’ 못 메겠다는 세 사람

  김학용 편집국장  
김학용 편집국장

지역의 최대 현안인 과학벨트 사업의 전망이 불투명해졌는 데도 앞장서서 몸을 던지겠다는 사람이 없다. 대전시장도 지역의 여야 국회의원들도 “당신이 나서라”며 서로 떠밀고 있다.

‘과학벨트 민관정협의체’는 민주당의 이상민 의원이 제안했다. 이 의원은 지난 2월 과학비즈니스벨트 등 충청권 공통 현안을 위해 여야 국회의원, 시?도당 위원장, 광역단체장이 참여하는 충청권민관정협의체를 만들자고 했다.

지역 현안에 대해 지역민의 힘을 결집하는 좋은 방법일 수 있다. 행정도시 사수도 이런 기구를 만들어 대응한 것이 효과를 봤다고 본다. 과학벨트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민관정협의체는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과학벨트 민관정협의체에 앞장서지 못하겠다는 사람들

누가 이런 모임을 만들고 이끌어갈 것인가? 이상민 의원은 아이디어를 내놓았으나 본인이 앞장선다는 말은 안 하고 있다. 그는 “새누리당이 주도를 해도 된다”고 했다.(뉴시스) 양보가 아니라 새누리당에 떠미는 뉘앙스다.

공을 넘겨받은 새누리당의 박성효 의원은 염홍철 시장에게 떠밀었다. 박 의원은 “민관정협의체는 대전시가 행정의 책임을 지고 있으니 시장이 나서야 한다”고 했다. 그는 “시가 주도권을 잡고 협력시스템을 갖춰야 하며 시의 현안이면 시장이 주관이 되어 협의체도 만들고 정부와 담판하는 등 해결하는 노력을 보여야 한다”고 핑계를 댔다.

염홍철 시장도 못하겠다는 입장이다. 염 시장은 9일 기자회견에서 “민관정협의체를 제기하고 논의하고 시도한 곳이 정치권이니 정치권이 그대로 하면 되지 않느냐”고 했다. 그는 “(충청권에) 4개 시도지사가 있는데 내가 주도할 수 없다”며 “만일 행정기관이 주도하게 된다면 대전시장이 주도하는 게 아니라 4개 시도지사가 협의하고 충청권행정협의회 같은 곳에서 주도해야 하는데 대전시장이 이를 주도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했다.

이상민 박성효 염홍철 민관정협의체 맡는 데 문제없어

세 사람 모두 민관정협의체를 만들고 이끌어 가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야당의 3선의원인 이상민 의원이 맡아도 되고, 시장을 지내고 여당 최고위원까지 지낸 박성효 의원이 맡아도 된다. 국회의원은 말 그대로 ‘국가의 의원’이지만 민관정협의체를 이끌게 되면 지역 문제에 대해 더 적극적으로 나설 명분을 확보할 수 있다.

염홍철 시장도 못 맡을 이유가 없다. 지역 여론을 결집하는 협의체를 이끄는 데 현직 시장이어서 문제가 될 일은 없다. 시장도 엄연히 정치인이다. 정치 활동이 가능한 사람이다. 염 시장은 지난 대선 때는 “시민의 이익을 위해 특정후보를 지지할 수도 있다”고까지 했었다. 사실 그건 현실적으론 어려운 일이었지만, 과학벨트 민관정협의체를 이끄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다.

민관정협의체가 충청권 전체를 대상으로 제안된 것이라고 해도, 최대 현안인 과학벨트의 사업지가 대전인 만큼 대전시장이 먼저 나서야 된다. 충남지사 충북지사는 과학벨트 문제에 힘을 합치고 거들 사람들이고 가장 앞장설 사람은 대전시장이다. 그런데도 염 시장은 충청권행정협의회 운운하면서 “4개 시도지사가 있는데 내가 나설 수 없다”고 말한다.

중앙 정부에 ‘총대’ 메기는 것 두려운 사람들

이유는 알 만하다. 나서는 게 ‘총대’를 메는 일이기 때문이다. 중앙정부와 그 넘어 대통령과 맞서야 하는 부담이 적지 않을 것이다. 국회계수조정위의 한 새누리당 의원이 며칠 전 “과학벨트 문제는 대통령이 결정할 사안”이라고 했듯이 이 문제는 박근혜 대통령의 결단 사항으로 보인다.

민관정협의체를 이끄는 사람은 다른 정파들까지 한데 어우르면서 이러한 권부와 맞서서 투쟁해야 한다. 둘 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현직 대통령을 상대로 ‘총대’를 메는 것은 더욱 부담스러운 일이다. 박성효 의원과 염홍철 시장의 경우 민관정협의체를 민주당 쪽에서 제안한 것이라는 점도 마뜩찮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민관정협의체가 과학벨트를 해결하는 방법의 하나라면 누군가는 총대를 메야 한다. 정치적 경쟁상대가 제안한 아이디어여서 거부하고, 중앙 권력과 맞선다는 두려움 때문에 도망가는 사람이라면 지역에서도 지도자가 될 자격이 없다.

과학벨트 문제 외면하면서 대전시장 선거 나오겠나?

물론 그릇이 안 되는 사람들에게 억지로 지역의 중대사를 떠맡길 수는 없다. 국회의원 세비나 타먹고 시장 월급이나 받아먹으면서 그 권한을 행세하고 대우받는 자리만 좇는 사람들에게 골치아픈 민관정협의체는 관심의 대상이 아닐 것이다.

이유가 무엇이든 과학벨트 문제에 총대 메기를 거부하는 대전시장과 국회의원들은 “나는 그런 막중한 임무는 감당할 수 없다”고 시민들에게 공표한 거나 마찬가지다. 이들은 내년 대전시장 선거에는(뜻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나) 나오지 않는다고 봐야 한다. 대전과 대전시민에게 가장 중대한 문제가 발생했는 데도 “나는 빼달라”며 도망치는 사람이 무슨 명분으로 지방선거에 나와 자신을 대전시장으로 뽑아달라고 할 수 있겠는가?

과학벨트 민관정협의체가 성사되든 안 되든, 이 문제에 대해 지역의 최고 지도자라는 사람들이 요즘 보여주고 있는 모습은 대전시민들을 슬프게 한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과학벨트가 이런 꼴로 가고 있는 것은 저 위의 중앙정부와 정치권보다 이런 사람들과, 이런 사람을 대전의 대표로 뽑은 시민들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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