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 왜곡해 파렴치한 만들어…'들을 귀'는 어디에?

  10일 오전 국회 본청에서 열린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회의장으로 향하고 있는 양승조 최고위원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10일 오전 국회 본청에서 열린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회의장으로 향하고 있는 양승조 최고위원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양승조 민주당 최고위원(천안갑)의 발언에 대한 언론의 보도와 새누리당 및 청와대의 대응을 보면서 한 인간을 순식간에 인면수심의 파렴치한으로 만드는 게 얼마나 쉬운 일인지를 새삼 깨닫게 된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 올무에 걸리자마자 낚아채는 그 무엇의 힘이 이토록 거센지를 생각하면 한편으론 두려움이 엄습해온다. 그 발언의 진의와 상관없이 양 최고위원은 이미 박근혜 대통령을 향한 테러를 부추기는 정신 나간 정치인으로 낙인찍혀 버렸다.

3선 의원인 그가 그동안 보여준 정치적 소신과 삶의 철학과는 상관없이 말이다.

앞 뒤 발언을 잘라, 마치 양 최고위원이 ‘박근혜 대통령 역시 저격을 받아 숨질 수 있다’고 말한 것처럼 만든 언론의 왜곡과 과장은 놀라울 따름이다.

양 최고위원의 발언 중 “국민의 경고”에서 ‘국민’을 쏙 뺀 채 보도하는 일부 보수언론의 왜곡은 절묘하기까지 하다.

양 최고위원의 발언을 다시 한 번 살펴보자. 부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이 중앙정보부를 통해 공안통치와 유신통치를 자행하다 암살당하는 비극적인 결과를 맞았는데, 박근혜 대통령은 이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오만과 독선, 불통을 던져버리고 국민 곁으로 다가오라는 주문이었다.

이는 <광해, 왕이 된 남자>에서 광해(이병헌)의 처남 유정호가 역모 혐의로 문초를 당하며 “(군사를 모은 게 아니라) 그저 백성의 목소리를 들으시라고 소리쳤습니다!”라고 말하는 장면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새누리당과 언론은 “박정희 대통령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대목을 왜곡하고 부풀려서 발언의 본질을 완전히 뒤틀어놓았다.

청와대 이정현 홍보수석의 대응 역시 맥을 같이 하는데, 오전 브리핑에서 기자의 질문에 “그건 망언 이상”이라고 역정을 낸 뒤 오후 6시가 다 돼서야 20여 분간 양 최고위원을 향한 격정적인 브리핑을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한 발언이 ‘언어 살인’이었다.

지난 6일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이명박 대통령 시절 세종시 수정안에 대해 그토록 강직하고 열정적으로 사자후를 토해냈던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은 정작 본인의 말을 어디까지 믿고 있는지 인간적으로 묻고 싶다”고 말한 양 최고위원에 대한 일종의 역공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새누리당과 청와대가 민주당 청년 비례대표인 장하나 의원의 ‘박근혜 대통령 사퇴’ 성명에 대한 대응에 나서기가 석연치 않다가 때마침 나온 양 최고위원의 발언을 빌미로 불리한 정국을 전환시키려는 의지가 강하다보니 이런 무리수가 나오고 있다고 본다. 양 최고위원을 희생양삼아 국정원개혁특위를 뒤흔들겠다는 의지도 엿보인다.

하지만 이건 아니다. 야당 의원이 대통령에게 이 정도의 쓴 소리도 못한다면 그건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다. 왜 이런 발언이 나왔는지 곱씹어보면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도움이 되면 됐지 손해가 될 리 없다.

사족을 달면, 이 글을 쓰게 된 이유 중 하나는 기자 주변인들의 권유 때문이다. “최소한 양 최고위원이 그럴 사람은 아니지 않나요?”라는 물음에 답하기 위한 차원이기도 하다.

새누리당과 청와대에 갈수록 ‘들을 귀’ 가진 사람이 줄어드는 것 같아 걱정이다. 이런 식의 ‘양승조 죽이기’라면 역풍을 맞아도 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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