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에 빠진 ‘충남호’

  김학용 주필  
 김학용 주필

얼마 전 안희정 지사를 인터뷰했다. 약속 시간을 기다리며 비서실에 잠깐 앉아 있을 때 여느 비서실에선 보기 어려운 사람을 볼 수 있었다. 그는 충남도의 '사관(史官)'이었다. 직원 한 명은 "도지사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기록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나중에 들으니 그는 기획실의 '기록원'이었다. 노무현 정부에서 하던 방식을 본뜬 것이라고 한다.

도지사실에 ‘사관(史官)’까지 두고 투명 행정 노력

충남도가 사관까지 둔 것은 도정(道政)을 진실하게 사실대로 기록해 남기면서 행정의 투명성도 높이자는 게 목적일 것이다. 도지사와 공무원들의 소통 강화 목적도 있다고 했다. 행정혁신을 통한 '투명 행정'은 3농혁신과 더불어 안 지사의 가장 중요한 시책이다. 도정을 투명하게 공개함으로써 도를 일 잘하는 효율적인 조직으로 만들겠다는 게 행정혁신의 목표였다.

그러나 임기 종반으로 치닫는 지금 충남도에서 나타나고 있는 일련의 사건들은 행정혁신의 성과에 대해 의문을 던져주고 있다. 충남도 기술직 공무원들이 작년 12월 제주도에서 워크숍을 열면서 업자한테 골프접대를 받았다가 총리실 암행감찰반에 적발됐다. 최근에는 인사 부서 공무원이 자기 자녀를 부정하게 취업시킨 사실이 드러나 안정행정부로부터 중징계 요구를 받았다.

잇단 비리 사건들과 청렴도 꼴찌의 충남도

작년 말 국민권익위원회가 발표한 기관별 청렴도 평가를 보면 이런 사건들은 우연이라고 보기 어렵다. 2013년 청렴도 평가에서 충남도는 17개 시도 가운데 최하위였다. 청렴도라는 게 해마다 오르내릴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도, 최근 몇 년치 추이를 보면 충남도는 변병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도표 1>

  <도표 1>국민권익위원회의 청렴도 평가  
 <도표 1>국민권익위원회의 청렴도 평가



안 지사의 행정혁신 노력이 먹혀들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노력을 하면 조금이라도 나아져야 될 텐데 오히려 추락하고 있다. 원인이 도대체 무엇인가? 충남도는 청렴도 부진의 중요 원인 중 하나로 도 공무원들의 내부 불만에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근무 환경이 열악한 내포 신도시로 이전하면서 겪는 주거 불편과 비용 부담에 대한 불만이 청렴도 평가로 표출됐다는 것이다.

"안 지사 들어와서 도 공무원들 너무 편해졌다"

그러나 도청 밖의 진단은 좀 다르다. 밖에서는 "안 지사가 들어오고 나서 충남도 공무원들이 편해졌다"는 말이 나돈 지 오래다. 4년 전 안 지사가 도에 입성할 때 공무원들은 젊은 도지사의 '개혁 폭풍'을 예상하면서 크게 긴장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공무원들은 기우였음을 알게 되었고, 이젠 직원들의 긴장감이 너무 풀어져서 문제라는 지적까지 나온다.

도 내부에서는 직원들이 너무 불편을 겪고 있는 게 문제라는 얘기고, 도 밖에서는 직원들이 너무 편해서 탈이라는 얘기지만 상충되는 말은 아니다. 도청 밖에서는 주거 교통 등의 문제로 불편을 겪고 있지만, 도청 안에서 업무적으로는 어떤 도지사 시절보다 편하다는 뜻 아닌가?

지역의 한 여당 국회의원은 얼마 전 안 지사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 "공무원(직원)한테 70%의 지지를 받는 도지사는 잘못하고 있는 것이다. 자치단체장은 공무원들한테 30~40% 정도의 지지를 받으면서 (목표를 위해) 밀어붙여야 한다. 공무원은 괴롭겠지만 그래야 주민들이 편안해진다."

"직원 70% 지지받는 것은 도지사의 잘못"

표현은 거칠었지만 자치단체장이 너무 인기를 의식해선 안 된다는 취지였다. 안 지사는 인기를 의식해서 도 공무원들조차 너무 풀어주고 있다는 것이었다. 야당 도지사에 대한 여당 정치인의 '정치적인 평가'라고 해도 안 지사가 새겨들어야 할 부분이 있다. 적어도 공무원 조직이 제대로 관리되고 있는가 하는 점은 안 지사가 짚어봐야 한다.

충남도에 대한 도청 밖의 쑥덕공론이나 여당 의원의 혹평은 근래 도에서 나타나고 있는 좋지 않은 징후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청렴도 꼴찌와 최근의 비리 사건들은 조직관리의 문제점이 노정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한 마디로 조직이 너무 풀어졌다는 얘기다.

곳곳에서 나타나는 충남도의 조직 이완 징후

충남도의 이완(弛緩)을 말해주는 지표는 또 있다. 정부합동평가에서 충남도가 얻은 성적이다. 정부합동평가는 각 지방자치단체의 행정 수준을 말해주는 가장 믿을 만한 종합성적표다. 충남도는 3년째 바닥권을 맴돌고 있다. 안 지사가 취임한 첫해 성적이라 할 수 있는 2011년 10위로 떨어진 이후 2012년 공동 14위(최하위), 2013년 13위를 기록했다. <도표 2>

  <도표2> 정부종합평가  
 <도표2> 정부종합평가에서 충남도의 년도별 순위 

충남도 공무원들이 다른 시도에 비해 일을 열심히 하지 않고 있음을 말해주는 지표다. 이완된 조직에서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은 드물다. 그런 조직에선 열심히 일을 해도 성과를 인정받기 어렵다. 안 지사가 3농혁신 등 일부 분야에만 행정력을 집중하면서 여타 부서 공무원들의 사기가 많이 떨어져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물론 충남도가 스스로 내놓을 만한 성과들도 있다. 외자유치 금액이 30% 증가하고(2009년~2012년), 농가 소득이 14% 늘면서 농가부채는 27% 줄었다. 그러나 이것을 안 지사 자신의 성적표로 보기는 어렵다. 공무원들은 정부종합 평가가 각 지방자치단체의 행정 수준을 가장 잘 반영하는 지표라고 말한다.

안 지사 조직 다잡고 도지사 '본업'에 충실해야

청렴도에서도 종합평가에서도 충남은 최하위권이다. 안희정 지사가 이끄는 '충남호'가 위험에 처해 있다는 신호다. 청렴도 꼴찌에다 잇따르는 비리는 도 조직의 해이를 말해준다. 바닥권의 종합평가는 공무원들이 일손을 놓고 있거나 적어도 열심히 하지는 않는다는 증거다. 안 지사는 이를 가볍게 보면 안 된다.

안 지사는 조직을 다잡고, 도지사 '본업'에 충실할 필요가 있다. 특강을 다니고 책을 내는 일은 본업이 아니다. 다른 데 눈을 팔면 본래 업무에 펑크가 나게 돼 있다. 도지사 선거가 임박해오고 있지만 도지사 본연의 업무에 더 충실한 게 정도고 표도 더 얻는 방법이다. 

안 지사가 대권(大權)의 꿈을 꾸고 있다면 먼저 충남도를 잘 이끌었다는 평가부터 받아야 한다. 거창한 명분과 선심을 사는 이미지 정치만으로는 대권을 잡기 어렵다. 요행히 그 고지에 오른다 해도 성공한 지도자가 되기는 어렵다. 안 지사는 자신과 도정을 재점검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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