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부시장 ‘정치 밥상’ 차리고 있나?

  김학용 주필  
 김학용 주필

노병찬 부시장의 대전시장 출마설은 작년 10월초부터 나왔으니 5개월째다. 노 부시장이 입장을 정리할 때가 되었으나 여전히 애를 먹고 있는 것 같다. 본인은 불출마로 가닥을 잡았지만 주변의 출마 종용이 강해 고민중이란 얘기도 있고, 여지가 아직 남아 있다는 얘기도 있다.

어느 쪽이든 이젠 결심할 시점이다. 더 지연되면 예비 정치인으로서도 이미지에 타격을 받을 수 있다. 정치를 ‘시간의 예술’이라고도 한다. 타이밍을 놓치면 안 된다는 말이다. 적당히 시간을 갖는 것은 신중함의 표시지만 너무 늦어지는 것은 결단력 부족을 뜻할 수 있다.

염홍철 '대타'로 옹립된 노병찬

노 부시장은 자신이 먼저 출마를 저울질했다기보다는 그를 시장으로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에 의해 시장후보가 되었다. 염홍철 시장이 불출마를 선언한 후 그를 따르던 이른바 ‘염맨’들이 노 부시장을 ‘대타’로 옹립한 케이스다. 

노 부시장은 행정고시 출신에다 과거에도 대전시에서 근무한 적이 있고, 중앙정부 근무 경험도 있어 대전시장 후보감으론 손색이 없다. 시장은 경력과 스펙만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중앙과 지방행정을 두루 경험했다는 점은 큰 장점이다.

노 부시장이 시장이 된다면 ‘관료의 길’을 버리고 ‘정치인의 길’을 가게 된다. 유능한 관료가 되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능력있는 정치인이 되는 것은 더 어렵다. 사람들은 자주 정치인들을 욕하지만 따지고 보면 그들만큼 중요한 사람도 없다. 우리 사회가 선택하는 중요한 결정은 사실상 정치인들의 손에서 결정된다.

가령, 도시철도 2호선을 어떻게 할 것이냐 하는 문제도 실질적인 결정권은 시장이 갖고 있다. 그만큼 보람도 크지만 판단을 잘못하면 피해가 50년 100년을 갈 수도 있다. 시장의 임무는 정말 막중하다.

관료와 정치인 '사령장 받는 법' 달라

그런 일을 해낼 능력이 있다고 해도 자리를 얻어야 그 일을 할 수 있다. 공무원 사회에선 본인이 노력하고 윗사람이 인정해주면 영전하고 승진도 한다. 공무원들은 지위가 아무리 높아도 사령장(辭令狀)으로 움직인다. 노 부시장도 대통령의 사령장을 받고 대전시로 왔다.

정치판에선 ‘자리를 얻는 방법’이 전혀 다르다. 이곳에서는 사령장을 주는 사람이 따로 없다. 있다면 국민이다. 자기 스스로 임명장(당선증)을 쟁취해야 한다. 임명장을 대신 받아줄 수 있는 사람도 없다. 임명장을 받기 위한 노력도 본인이 직접 해야 한다.

사령장으로 살아온 관료들에겐 낯선 규칙이다. 더 어려운 것은 상대를 이겨야만 자리를 얻는 철저한 승패의 세계란 점이다. 현실 정치에선 반드시 승자와 패자가 있을 뿐이다. 비록 나중에 승패가 뒤바뀌는 수는 있어도 2등이 없는 세계가 정치다. 노 부시장이 대전시장이 되려면 지금 시장이 되겠다고 나선 사람들을 다 물리쳐야 한다. 새누리당 후보가 되고자 한다면 우선은 새누리 후보군부터 꺾어야 한다.

인간적으론 그 과정도 아름답기는 어렵다. 승리를 위해선 상대를 야비하게 대해야 하고 때론 자신이 비굴해져야 한다. 또 자신의 그런 모습들이 여러 사람에게 노출되고 공개되기도 한다. 관료 사회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있겠지만 정치판과는 차이가 크다. 노 부시장이 시장선거에 나서려면 이런 것들을 감수하겠다는 각오가 있어야 한다.

염홍철 시장이 말한 ‘밥상’ 차리고 있나?

염홍철 시장이 한 특강에서 말했다는 ‘밥상론’은 적절한 비유다. “정치는 밥상 차려놓고 초대하는 사람 아무도 없다. 하고 싶은 사람은 자기가 밥상을 차려야 한다. 그러니 자존심 강하고 잘난척하는 사람은 정치 못한다.” 차려놓은 밥상에 초대받는 경우도 간혹 있지만 이벤트거나 일회용일 뿐 현실정치에선 밥상론이 맞는 말이다.

노 부시장이 ‘시장’을 원한다면 직접 밥상을 차려야 한다. 가장 중요한 메뉴인 ‘정당 공천카드’를 누군가 갖다 주길 기다리고 있다면 아마 밥상은 차리기 어려울 것이다. 노 부시장은 지금 밥상을 차리고 있는 중인가? 아니라면 밥상을 차리겠다는 마음이라도 굳게 먹고 있는 것인가?

선거자금을 대주고 선거운동도 해주겠다며 밥상을 차려줄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이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밥상을 차려줄 수 없다. 그들 대부분은 시장 밥상에 자기 숟가락을 얹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정치인의 밥상’에 필요한 2가지

‘밥상론’으로 결론을 내려면 노 부시장은 밥상에 대한 신념부터 재확인해야 할 것이다. 밥상은 내 혼자, 내 편만 먹으려고 차리는 게 아니다. 시장 밥상이라면 시민을 위해 차리는 밥상이다. 자신이 좋은 음식을 만들어 시민들에게 대접할 수 있는 요리 솜씨도 있어야 한다. 솜씨도 없는 사람이 밥상을 차리는 건 손님을 실망시킬 뿐이다.

‘정치인의 밥상’에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 자신이 직접 밥상을 차려 사람들을 불러 모으겠다는 겸손한자세와 손님들이 즐길 수 있도록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솜씨(능력)다. 한쪽이 없어도 좋은 정치인이 되기는 어렵다.

노 부시장이 아직 결정을 미룬 상태라면 이 점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고시 출신 중에는 대체로 ‘음식’ 문제보다는 ‘밥상’을 차리는 일 자체가 어색하고 서툰 사람들이 적지 않다. 혹시 노 부시장의 경우도 솜씨는 있는데 사람을 불러 모으는 일을 안 해봐서 어색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노병찬 사례 행시 출신들의 딜레마 상징

작금 노 부시장의 입장은 행정고시 출신 관료들이 평생 한번은 겪는 딜레마를 말해주기도 한다. 대다수의 고시 출신들은 ‘보통 공무원’처럼 정년을 보장받지는 못하는 편이다. 부시장 부지사급 이상의 고위직에 오르면 관료의 옷을 벗어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린다.

이들 중 상당수는 정치인으로 변신한다. 국회의원이나 자치단체장으로 가곤 한다. 우리 지역에도 박성효 이명수 김동완 의원처럼 변신에 성공한 관료들이 꽤 있다. 따지고 보면 심대평 이완구 전 충남지사도 고시 출신 관료에서 정치인으로 갈아탄 케이스다.

이들은 중앙과 지방행정을 오가며 많은 경험을 쌓은 중요한 인적 자원이다. 이들이 관료의 옷을 벗고 정치권으로 진입하는 데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가능하면 지역사회에서도 그들의 ‘변신’을 도와줘야 한다. 물론 그들이 꼭 정치인 옷으로만 갈아입어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관료 출신 중에 걸출한 정치인이 많은 것도 아니다.

노병찬 부시장의 사례는 고시 출신 관료들의 ‘변신 문제’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고시 출신들의 변신은 그들 자신은 물론 인사 적체가 심한 조직 내부에 활력을 주기도 한다. 그렇다고 일부러 옷을 벗으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들의 ‘변신’을 도와 사회적 생산성을 높일 방법은 없는지 고민해 볼 필요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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