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중 기자의 뉴스리뷰<41> | ‘말기 암’ 아버지 살해한 남매, 왜?

   
 

말기 암으로 고통 받고 있는 50대 아버지를 살해한 남매에게 징역 5∼7년이 선고됐다. 뉴스가 보도된 후 여러 가지 반응이 흘러나왔다. ‘아무리 말기 암이라지만, 어떻게 친아버지를 살해할 수 있느냐’는 비난에서부터 ‘오죽했으면 그런 극단적 선택을 했겠느냐’는 동정론까지.    

법과 감정의 차이는 재판과정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지난 3일 열린 국민참여재판에서 의정부지법 형사합의12부는 “설사 내일 죽는 사람, 사형수라 할지라도 오늘 죽이면 살인”이라며 “고인이 ‘죽여 달라’는 말을 했다고 하더라도 병상에서 혼란된 상태에서 한 말은 진지한 뜻으로 보기 어렵다”는 판결을 내렸다.

남매가 던진 화두‘안락사’

양형의 수위를 보면 재판부와 배심원단, 즉 직업 법조인과 국민감정 사이에 일정한 차이가 존재함을 확인할 수 있다. 9명의 배심원단들 모두 피고인들이 ‘유죄’라는 판단을 내렸지만 다수인 8명은 양형의 수위를 징역 3년 6개월로 판단했다.

살인의 죄는 분명하지만, 형량을 고려함에 있어 참작할 만한 사유가 있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재판부의 판단은 배심원보다 훨씬 더 엄격했다. 아버지를 살해한 아들(28)에게는 징역 7년, 딸(32)에게는 징역 5년을 선고했다.

당초 ‘병사’처리 됐던 아버지가 살해된 것으로 알려진 계기는 아들이 죄의식을 견디지 못해 친척에게 사실을 고백하고 자살을 시도하려다 미수에 그쳤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건은 한국사회에 중요한 화두를 던지고 있다. 처음엔 ‘법과 국민감정의 괴리’를 어떻게 극복할 것이냐의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지만, 점차 ‘삶과 죽음’의 문제 쪽으로 논란의 범위와 깊이가 확장됐다.

‘한국에서 안락사가 허용됐다면 이 같은 비극이 발생했을까’란 의문이 꼬리를 물기 시작했다. 50대 아버지가 안락사를 선택할 수 있었다면 자식들에게 자신을 죽여 달라고 요구했을까. 자식들 또한 평생 씻지 못할 죄의식을 감수하며 아버지의 고통을 덜어주려 법과 천륜을 저버렸을까. 어차피 가정에 불과하지만, 숱한 의문이 많은 사람들의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고 있는 게 사실이다.

‘존엄사 판결’ 5년,  논란은 여전

물론 이번에 처음 ‘안락사 논란’이 불거진 것은 아니다.

지난 2009년 5월 대법원이 소극적 안락사 개념인 존엄사를 허용하는 판결을 내리자, 존엄사 논란이 크게 불 붙었던 적이 있다. 당시 식물인간 상태였던 김모(76) 할머니의 가족이 세브란스병원을 상대로 낸 ‘무의미한 연명치료 장치 제거 등 청구소송’에서 법원이 원고승소 판결을 내려 세상이 시끌벅적했다. 법원이 존엄사를 인정한 첫 판결이었기 때문이다.

존엄사는 회생 불가능한 환자에게 약물을 투여해 편하게 죽음에 이르게 하는 적극적 의미의 안락사와 구별된다. 존엄사 찬성론자들은 뇌사 등으로 죽음이 임박했으며 회복이 불가능하다는 의학적 소견이 있을 때 산소호흡기 등으로 무의미하게 생명을 연장하며 고통받고 싶지 않다는 ‘죽음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종교계 등은 ‘신의 영역’에 속한 죽음의 문제를 인간이 인위적으로 다룰 경우, 생명 경시 등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음을 들어 반대하고 있다. 특히 취약계층에게 경제적 이유로 죽음을 선택하는 길을 열어줄 것이란 우려도 만만치 않다.

복지 없는 존엄사 논란은 무의미

일각에서는 ‘생로병사’ 중 ‘생로병’에 대한 복지만 존재할 뿐, ‘사’(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국가가 책임지지 않는 이상 존엄사 논란은 무의미하다고 주장한다.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이 가족이 짊어져야 할 물질적 고통까지 걱정하는 사회라면 인간 존엄의 한 방편인 존엄사를 논의하기 위한 성숙단계에 이르렀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생애 의료비에서 65세 이후의 비용이 차지하는 비중은 남성이 48.6%, 여성이 52.5%에 이른다. 그 중에서도 사망 전에 의료비가 급격하게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평생 사용하는 의료비의 절반을 ‘죽음’에 투자한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교적 의료복지가 잘 돼 있다는 유럽 선진국에서 안락사 논의가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는 점도 눈 여겨 볼 대목이다. 복지의 범주를 죽음에까지 확장시키는 사회 구성원의 합의 없이 안락사, 혹은 존엄사 논의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네덜란드는 지난 2001년 세계 최초로 안락사를 법으로 허용한 데 이어 2002년 벨기에, 2009년 룩셈부르크까지 안락사가 합법화됐다. 네덜란드에 이어 벨기에는 최근 진통과 논란 끝에 미성년자의 안락사를 허용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스위스, 스웨덴, 영국, 덴마크, 이탈리아, 크로아티아에서도 매우 까다롭기는 하지만 수동적 의미의 안락사를 허용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프랑스에서는 80대 노부부가 안락사를 금하고 있는 현행법을 강하게 비판하는 유서를 남기고 동반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해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90% 이상의 국민이 안락사에 찬성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법 개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흐름이 과연 한국사회와 무관한 먼 나라 이야기에 불과할까. 이제 죽음에 대한 복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다.

김재중 기자 jjkim@sj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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