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성 음독으로 잘못됐다면

  김학용 주필  
 김학용 주필

기자가 의혹 사건을 파헤칠 때는 ‘양심에 거슬리는’ 생각도 갖게 된다. 가령 어떤 고위 공직자의 비리 제보를 접수하고 취재에 나섰다면 그 비리가 사실이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그래야 기사를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취재 대상이 중요한 사람일수록 그런 바람은 더 커진다.

사건을 수사하는 경찰도 기자와 비슷한 입장이다. 비리가 확인돼야 실적으로 올리기 때문이다. 때론 큰 사건을 수사해서 특진도 하게 된다. 하지만 수사든 취재든 잊지 말아야 할 게 있다. 자기 욕심 때문에 멀쩡한 사람을 악의 구렁텅이에 몰아넣어선 안 된다는 것이다.

‘김종성 교육감 사건’ 재판의 핵심은 김 교육감이 장학사 시험 비리를 주도하면서 돈을 받았느냐 아니면 그 아래 사람인 김 모 장학사가 비리를 저질러 놓고 김 교육감에게 뒤집어 씌웠느냐는 것이었다. 항소심재판부는 김 교육감이 비리를 주도하지 않았고 뇌물도 받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다만 김 교육감이 장학사 시험 비리를 사실상 묵인한 것으로 보면서 최고 책임자로서의 관리 책임을 무겁게 물었다. 1심에서 받았던 2억원 벌금과 추징금 2억8천만 원을 모두 없애주고 징역도 8년에서 3년으로 낮춰주었다.

검경, 사실상 실패한 김 교육감 수사

이 판결은 ‘일부 무죄’의 모양새지만 사건을 수사한 경찰과 검찰에겐 사실상 완패(完敗)다. 가장 중요한 ‘교육감의 뇌물 수수 부분’을 인정받지 못함으로써 경찰 수사팀은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다. 수사팀은 김 교육감에게 뇌물죄까지 뒤집어씌워 파렴치범으로 몬 결과가 되었다.

2심 재판이 ‘완전한 판결’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대법의 3심이 남아있고, 3심의 결과조차 사건의 진실을 100%로 드러내기는 어렵다. 그러나 나는 이번 2심 판결이 보다 사실에 근접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유가 있다. 김 교육감이 음독자살을 기도한 뒤인 작년 5월께 김 교육감을 가까이서 보좌하는 측근을 만났었다.

‘김 교육감이 뇌물을 받았다’는 경찰의 수사 발표에 대해 교육감 측으로부터 해명이든 변명이든 들어보면 사건에 대한 진실 판단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이었다. 그에게 “사실대로 말해 달라”고 신신 당부한 뒤 2시간 이상 ‘사건’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물론 피의자인 김 교육감 쪽에서 보는 사건의 진상이었다.

“처음부터 김 교육감 뒤집어씌우기로 끌고갔다”

측근 얘기를 들어보니, 경찰은 이 사건의 핵심인 김 모 장학사와 함께 ‘김 교육감이 선거자금을 모으기 위해 장학사 비리를 주도한 사건’으로 꾸미고 있었다. 측근 주장의 요지는 이랬다. ‘장학사 시험’을 관장하는 김 모씨 등 장학사 4명이 시험문제를 유출하고 돈을 받아 챙겼다. 교육감은 이런 사실을 잘 몰랐다. 그러나 경찰 수사가 시작되자 김 장학사가 선처를 부탁하며 경찰 수사에 협조했다. 경찰의 타킷은 교육감이었고 그래서 장학사 비리는 ‘김 교육감이 선거자금 마련을 위해 주도한 사건’으로 끌고 간다는 것이었다.

경찰이 증거도 없이 김 장학사 등의 진술만으로 사건을 몰아가고 있다는 게 측근의 주장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수사가 수상하게 진행된다는 점을 보여주는 몇 가지 사례를 말해주었다.

-1. 사건의 핵심 인물인 김 장학사의 첫 경찰 출두가 2013년 2월2일로 돼 있으나 그 전에 이미 경찰과 2~3번 사전협의가 있었다. 경찰은 이를 숨기고 있다.

-2. 김 장학사가 출두한 지 이틀 만에 도교육청(문화동) 정문앞 CCTV에 찍힌 ‘8000만원 쇼핑백 전달 장면’ 파일을 가져간 것도 수상하다. 김 모 장학사가 출두한 지 이틀 만에 경찰에 스스로 불었다는 것도 의심스럽고, 그 자리에 있는 CCTV에 쇼핑백 영상이 찍혔는지 어떻게 금방 알 수 있나? 이 파일은 수사가 한창 진행중인 한 달 전에 찍힌 것이다. 이 파일엔 김 모씨가 김 교육감으로부터 ‘사건 해결용 현금’을 넘겨받는 장면이 담겨 있다. 김 장학사가 만든 ‘증거용 작품’이라고 보아야 한다.

-3. 경찰은 김 장학사가 관리했다는 이 모씨 명의의 통장은 조사하지 않고 있다. 김 장학사는 그 통장이 김 교육감 돈을 관리하는 통장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통장에서 돈이 다 빠져 나갔다고 한다. 그 돈을 누가 왜 썼는지를 조사하면 통장의 진짜 주인을 알 수 있는 데도 일부러 수사하지 않는다.

김 교육감 음독으로 뇌물 파렴치범 됐을 수도

필자는 이 사건을 깊이 취재한 상태는 아니었으나 측근의 주장에 신빙성이 있어 보였다. 교육감 측근의 주장이라고 해도 사실 확인이 가능한 부분이 꽤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경찰 쪽 해명도 들어봐야 했기 때문에 기사화하는 것은 보류해 놓고 있었다. 우선은 피의자가 교육감이란 지위 때문에 억울한 일을 겪어선 안 된다는 요지의 기사만 올렸다. 고법 판결을 보면서 더 적극적으로 취재하고 보도했어야 했구나 하는 자책감이 든다. 

경찰과 검찰은 정말 사건의 실체를 파헤치고자 했나? 교육감 수사를 ‘골인’(구속)시키는 데만 열중하여 교육감에게 억울한 수사로 몰아간 건 아닌가? 고법 판결과 김교육감 측근의 말을 종합하면 뒤집어씌우고 몰아간 수사라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경찰은, 그 측근이 김 교육감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도 그에겐 어떤 조사하지도 않았다고 한다. 몰아가기 수사에 방해가 된다고 여긴 때문 아닌가?

김 교육감은 수사도중 음독자살까지 시도했다. 목숨을 잃었다면 장학사 승진 시험지를 빼돌려서 뇌물을 먹고도 부하 직원들에게 뒤집어씌우려 한 파렴치범으로 삶을 끝내고 말았을 것이다. 만일 자신이 그 같은 입장에 처했을 경우를 상상해본다면 그런 수사는 할 수 없다.

뒤집어씌워 몰아가기는 수사 아닌 범죄행위

비리 혐의가 있는 피의자를 최대한 추궁하는 건 수사관의 기본 자세고 소임이다. 경찰이 수사를 대충대충 하거나 봐주기식으로 하면 세상은 도둑과 강도로 우글거리게 될 것이다. 경찰이 하는 일을 생각해보면 경찰에 대해 고맙지 않은 국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경찰이 피의자를 고의적으로 사지의 구렁텅이에 밀어넣는 것은 수사가 아니라 수사를 가장한 범죄다. 인권을 파탄내고 사람의 생명줄까지 끊을 수 있는 심각한 범죄 행위다. 

경찰은 소문으로만 돌던 ‘장학사 승진 비리’를 밝혀내는 공을 세웠다. 경찰 수사가 아니었다면 비리는 계속되었을 것이다. 충남의 교육행정은 어둠 속에서 더 썩어갔을 것이다. 그 피해가 고스란히 학생들에게 돌아간다는 점에서 경찰 수사의 공은 작지 않다.

고법 판결에 따르면 김 교육감은 장학사 비리를 막기는커녕 여기에 관여하거나 묵인하고 방조했다. 고법이 뇌물 부분엔 무죄를 인정하면서도 징역 3년에 처한 이유다. 도 교육행정을 엉망으로 만든 죄값은 어쩌면 그보다도 클 것이다. 하지만 교육감에게 이런 죄가 있다고 해서 있지도 않은 뇌물죄까지 뒤집어씌우는 수사는 안 될 일이다.

검경 수사의 문제점도 일깨워준 김 교육감 수사

정약용의 형법서 『흠흠신서』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사건의 판결이란 천하의 저울이다. 죄수를 죽이는 길을 찾아도 형평이 아니고 죄수를 살려 주는 길을 찾아도 형평이 아니다. 그러나 (판단이 어렵다면 차라리) 살려줄 길을 찾지, 죽일 길을 찾지 않는 것은 한번 죽은 자는 다시 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김 교육감이 죄는 지었으나 자칫 파렴치범으로 몰려 억울하게 죽을 뻔했다. 수사든 재판이든 양심으로 해야 한다. 수사 대상이 고관이든 말직이든, ?부자든 가난뱅이든 ‘양심의 저울’로 해야 된다. 지역을 떠들썩하게 했던 김종성 교육감 수사는 그 대상자가 고관이어서 뇌물죄까지 뒤집어씌워 몰아간 수사 아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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