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가 방식'이 답이다

  김학용 주필  
 김학용 주필

인구 150만 명의 대도시에서 단일 노선의 도시철도는 효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도시가 오이처럼 길쭉한 모양이 아니라면 한 두 개 노선은 더 건설하는 게 더 합리적이다. 순환선이나 X자형 노선 체계가 단일 노선보다는 경제적일 가능성이 높다.

150만 도시에선 단선보다 2~3개 노선 더 효율적

150만의 대전은 길쭉한 도시는 아니다. 기본적으론 2호선 건설이 타당하다. 다만 건설비용이 지나치게 많이 든다든지 도시미관의 문제가 심각하다면 노선을 늘리는 게 어려울 수 있다. 건설비용과 미관 문제는 모두 건설 방식과 관련이 있다.

건설 방식은 기본적으로 3가지밖에 없다. 첫째는 대전 1호선처럼 땅속으로 달리는 ‘지하철 방식’, 둘째는 버스처럼 도로 가운데를 자동차와 함께 달리는 ‘노면(路面) 방식’, 그리고 도로 중간에 교각을 세워 공중으로 달리게 하는 ‘고가(高架) 방식’ 등이다. 이 3가지를 복합적으로 적용할 수는 있으나 기본 방식은 그 중 하나다.

많은 사람들은 미관 문제가 없는 ‘지하철’을 원하는 것 같다. 그러나 지하철 방식은 2002년부터 중앙정부 지원이 중단됐다. 돈이 너무 많이 들기 때문이다. 정치력을 동원하거나 정부를 설득하면 가능할 수도 있지 않느냐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지하철’은 정부 지원 끊겨 불가능

염 시장도 그런 생각으로 4년 전, 지하철로 추진해보려 했다. 그러나 현실을 모르는 판단이었다. 대구와 광주 시민들도 지하철 방식을 원했지만 정부를 설득할 수 없었다. 정치적 파워에서 대전은 두 도시를 따라갈 수 없다. 그들이 포기한 방식을 대전이 따낸다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2호선을 추진하고 있는 광주시의 경우 고가로 추진하다가 미관상의 문제점 때문에 ‘저심도 지하철’로 바꿨다. 터널 깊이가 낮은 저심도 방식은 비용이 저렴해서 정부의 예타가 통과가 가능했다. 대전은 지반 구조가 광주와 달라서 저심도 공법은 가능하지 않다는 진단을 받았다.

   
 

도로 가운데 레일 까는 '노면방식(트램)' 단점 많아

대전이 2호선을 추진하려면 고가방식이나 노면방식(트램)밖에 없다. 고가방식은 도시미관에 문제가 많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트램을 대안으로 생각하는 시민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트램은 현실적인 대안은 못 된다. 트램은 단점이 너무 많다.

2호선을 트램으로 한다면 기존 도로 가운데로 레일이 깔리게 된다. 도로의 일부를 도시철도에 내주는 것이기 때문에 차량이 이용하는 도로는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다. 교차로에선 도로교통의 흐름을 끊으면서 혼잡도를 높이게 될 것이다. 사고가 나도 대형 사고로 이어지기 쉽다.

“교차로의 신호주기를 정확하게 맞추면 도로차량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현실적으로 어렵다. 이런 문제점 때문에 트램은 무인운전시스템이 어려워 지하철이나 고가방식보다 운영비가 많이 든다. 운행속도가 고가방식의 절반 정도밖에 안 되고 도시철도의 장점인 정시성(定時性)도 떨어진다.”(대전시 관계자)

트램의 장점은 건설비용이 저렴하다는 점이다. 도로 위에 레일만 깔면 되기 때문에 친환경 교통시설로 평가받고 있고 건설비용도 고가에 비해 훨씬 싸다. 또 시내버스처럼 지상(地上)을 달리기 때문에 타고 내리기가 쉽다. 노약자와 장애인 등 교통 약자들이 이용하기에 가장 편리하다.

그러나 트램은 도로교통의 혼잡도를 높이는 점, 운행 속도가 늦고 정시성이 떨어지는 점 등의 커다란 약점 때문에 도시의 간선 도시철도로는 적합하지 않다. 도로 공간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는 신도시나 도심 외곽의 교통수단으론 좋으나 기존 도심에 새로 도입하기에는 부적합하다.

육중한 콘크리트 구조물 연상되는 고가방식

2호선을 해야 한다면 고가 방식밖에 없다. 문제는 도시미관인데, 어느 정도 감내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고가방식이 도시미관을 크게 망가뜨리거나, 지역 주민과 상인들이 극구 반대할 정도로 심각하다면 역시 불가하다.

고가방식의 미관문제가 제기된 후 많은 사람들이 청계천 고가차로의 육중한 콘크리트 구조물을 떠올리면서 “고가는 절대 안돼!”하고 외치는 것 같다. 대전시는 그렇지는 않다고 말한다. 시는 미관문제를 걱정하는 시민들에게 대구 3호선을 가보라고 권했다.

필자도 얼마 전 대전시의 안내로 기자들과 함께 대구를 가봤다. 대구시 공무원은 “토목기술의 발달로 교각과 구조물을 최대한 가늘게 처리하고 있다”고 했다. 교각 기둥은 지역주민들이 참여하여 디자인하는 방법으로 미관 문제를 최소화하는 방법을 찾고 있었다. 필자는 고가방식이 좋아보이진 않았으나 심각한 문제구나 하는 생각까진 들지 않았다.

   
 

‘고가의 대구 3호선’ 주변 상가 주택 값 올라

현지 대구시민들의 반응은 어떠한지 대구시 공무원에게 물어봤다. “처음에는 미관 문제 때문에 지하철로 하자며 고가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젠 3호선 주변의 건물값이 올랐다”고 했다. 대구의 한 지방신문 기자에게도 물어봤더니 “3호선 역세권 주변의 상가 값이 올라가고 공실률도 줄었다”고 했다.

대구의 경우로 볼 때 대전 시민 중에도 아파트 값이 올라가고 상권이 활성화되길 바라면서 2호선 추진을 찬성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 같다. 도시 미관에 문제가 있다고 해도 이런 기대감이 미관 문제를 어느 정도 상계시킬 수 있을 것이다.

도시미관이 심각하게 망가질 정도라면 주변 상가도 집값도 떨어져야 맞다. 대구 3호선에서 나타나는 현상은 고가 방식이 도시미관을 심각하게 망친다고 보지는 않는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2호선 한다면 현실적으로 고가 방식밖에

내 생각에, 2호선은 추진하는 게 맞다. 건설 방식은 현실적으로 고가밖에 없다. 노선 문제는 몰라도 건설 방식에 있어선 사실상 선택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2호선 건설은 장점이 훨씬 많다.

현재 대전시 등록차량은 60만대다. 시민 1인당 0.4대 꼴인데 1년에 1만~1만2000대씩 늘어나고 있다. 대전시 관계자는 “선진국 도시 1인당 0.7~0.8대에 이르는 점을 감안하면 대전시의 등록차량은 지금보다 훨씬 많아질 것”이라고 했다. 교통 혼잡의 해결을 위해선 2, 3호선 건설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2호선 자체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도시철도가 아니라 BRT 버스 등 도로교통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반박하고 있다. 도시철도 건설에는 최대 2조원 정도의 비용이 들지만 BRT 등으론 1200억원만 있으면 된다는 것이다. “도시철도를 확충해도 대중교통 분담률이 증가한다는 보장도 없다"고 주장한다. 대부산은 2, 3호선을 만들면서 대중교통 분담률이 오히려 더 떨어졌다는 점을 근거로 든다. 

그러나 대전시는 “도시철도 노선을 늘려도 대중교통 분담률이 더 떨어지는 것은 승용차의 증가속도가 높기 때문”이라며 “도시철도를 건설하지 않는다면 대중교통 분담률은 더 떨어질 것”이라고 반박한다. 반대론자들은 굳이 노선을 늘리려면 경부선과 호남선을 이용한 광역철도망(3호선)부터 하자는 주장인데 이 부분은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2호선 사업, 지역 건설경기 활성화도 기대

도시철도 추진을 가장 원하는 곳은 건설업체들이다. 이들은 하루라도 빨리 하길 바란다. 2호선 사업이 시작되면 1조4000억원의 돈이 대전에서 풀리게 된다. 지역 건설업체들이 가장 큰 수혜자일 수밖에 없다. 누구든 시장(市長)이 되면 큰 건설 사업을 하고싶어 하는 가장 ‘현실적인’ 이유일지 모른다. 염 시장이 2호선 방식을 결정했을 때 가장 환호한 곳은 지역 건설업체들일 것이다. 지역 건설 경기가 살아나면 지역경제도 좋아질 테니 시민들도 나쁠 건 없다.

2호선을 하면 전체 사업비 가운데 60%인 8500억원의 국비가 대전으로 내려오게 된다. 대구는 3호선, 광주는 2호선을 하는데 대전만 안 하면 그 돈을 손해보는 셈이다. 이 또한 추진의 명분이라면 명분이다.

2호선은 교통문제일 뿐 아니라, 지역경제, 환경(도시미관), 지방재정 등의 문제와도 밀접한 사안이다. 모든 면에서 다 긍정적일 수는 없다. 미관만 생각하면 안 하는 게 옳을 수도 있다. 그러나 교통문제나 지역경제 등의 측면에선 추진돼야 한다.

자문기구 민관정위 무시한 염 시장의 결정 등은 아쉬워

대전은 웬만한 곳이면 20~30분이면 출퇴근이 가능한, 어찌 보면 교통문제가 없는 도시다. 그런데도 굳이 2호선을 또 건설해야 하느냐는 반문이 가능하다. 그러나 도시철도를 이용해 10분이라도 더 빨리 더 편하게 직장 학교에 가는 것이 나쁠 리 없다.

2호선은 보다 많은 사람들이 더 편하게 더 빨리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시설임엔 분명하다. 미관 문제가 도시를 망칠 정도가 아니라면 2호선은 건설돼야 한다.

염홍철 시장은 지난주 ‘고가-자기부상열차’ 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일부에선 여전히 반발하고 있다. 시민단체에서 ‘최악의 행정’ ‘막장행정’이라며 비난하고 있다. 반대론자들을 설득하지 못했다는 의미다.

임기 두 달 정도를 남겨놓은 시장이 중요한 정책을 결정한 것도 좋은 모양새는 아니었다. 후임 시장에게 넘겨주는 게 예의이고 정도다. 염 시장이 2호선 문제를 10년 넘게 추진해온 게 정말 아쉬웠다면 다음과 같이 했어도 무방했을 것이다. “2호선 사업을 오래 동안 고민해온 결과 고가 방식으로 하는 게 좋겠다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이 점을 참고하여 최종 결정은 다음 시장님이 해주셨으면 합니다.”

'오락가락 행정'이 2호선 혼선과 지연 원인

염 시장이 2호선의 자문기구였던 도시철도 민관정위원회 의견을 무시한 점도 안타깝다. 그날 회견은 민관정위의 최종 회의가 끝나는 시간에 시작됐다. 민관정위를 노골적으로 무시한 회견이었다. 460명을 태운 배가 침몰하고 있다는 소식에 모든 국민들이 숨을 죽이며 사고 현장을 지켜보는 순간에 굳이 기자회견을 했던 이유로 보인다. 보다 많은 시민들에게 전해져야 할 가장 중요한 시정 뉴스가 대형 비보에 묻혀버리고 말았다. 대전시로선 ‘최악의 홍보’였고, 염 시장으로선 ‘최악의 회견’이었다.

그날의 회견 과정에는 이 문제가 왜 4년 넘게, 길게는 10년 이상을 끌어왔는지가 다 담겨 있었다. 2호선은 그 자체보다는 대전시의 미숙한 행정의 수준에서 비롯된 측면이 많다. 시장이 바뀌면 노선과 방식이 바뀌면서 오락가락한 게 지체의 큰 원인이었다.

대전시장 후보자들도 염 시장 결정 받아들이길

결정 과정이나 물러나는 시장의 결정이라는 점에서 아쉬운 점이 있지만 2호선 논란은 끝낼 때가 되었다. 이젠 ‘고가 방식’으로 결론 내고 문제점을 보완하는 데 노력을 기울였으면 한다. 대전시장 후보들도 염 시장의 결정을 받아들였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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