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벌백계보다 원칙 세워야

  김학용 주필  
 김학용 주필

세월호 사고는 생때 같은 학생들 260여 명을 눈앞에서 수장(水葬)시킨 거나 마찬가지다. 이런 비극이 없다. 대한민국의 부모들은 구조 책임을 회피한 선장에게 아무리 큰 죄를 물어도 화가 풀리지 않을 것이다. 기념촬영을 하다 목이 달아난 공무원을 동정할 사람도 없다.

모두 일벌백계(一罰百戒)를 요구하고, 박근혜 대통령도 경악 분노 퇴출 등의 단어들을 쏟아내면서 일벌백계를 다짐했다. 대통령은 승객구조를 방기하고 홀로 탈출한 선장과 일부 선원들에 대해 “살인과도 같은 행위”라며 일벌백계를 주문했다. 돈 많은 세월호의 주인에 대한 공분은 더 크다.

큰 사건 사고가 터질 때마다 일벌백계가 잇따르곤 한다. 정말 ‘일벌(一罰)’로 ‘백계(百戒)’가 가능한 것일까? 나는 회의적이다. 물론 그것이 효과적일 때도 있다. 사기(史記)의 고사처럼 손자(孫子)가 궁녀 2명을 희생시켜 단번에 조직의 기강을 잡는 데는 좋은 수단이다.

사람 목숨 담보로 돈버는 악덕업자들 일벌백계 효과 있을까?

그러나 그런 방법이 ‘제2의 세월호 사건’을 막는 데도 효과적일지는 의문이다. ‘일벌백계’라는 말 속에는 세월호의 주인공들이 좋아할 만한 논리가 숨어 있다. ‘일벌백계’는 본보기의 엄벌로서 여러 사람들이 법을 지키도록 한다는 뜻이지만 ‘요행주의자’와 악덕업자들에겐 자신이 본보기로 걸리지만 않으면 된다는 인식을 주기 쉽다. 악덕업자들은 앞으로도 누군가는 제2의 세월호 주인처럼 되겠지만 그게 자신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설사 자신이 그의 주인공이 된다 하더라도 차라리 감수하겠다는 생각일 뿐 ‘일벌’의 교훈을 마음에 새길 인간들이 아니다.

자격 미달의 선장만 아니었어도, 과적(過積)만 일삼지 않았어도, 안전교육만 제대로 시켰어도, 배를 함부로 뜯어 고치지만 않았어도 세월호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다. 사고가 나도 희생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그 어느 것에도 신경쓰지 않았던 세월호의 주인은 그런 사고는 자신에겐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했거나 그런 사고가 나더라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는 자기 배를 그처럼 위험천만하게 운행하진 않았을 것이다. 사고가 나지 않는 게 이상할 만큼 엉터리로 운행하면서 수백 명씩 태우고 다녔으니 대통령의 말처럼 살인과도 같은 행위이고 ‘미필적 고의의 살인’이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우리 사회에는 세월호 주인처럼 돈을 버는 악덕업자들이 적지 않다. 사고가 한 번 터지면 수만~수십만에게 인명 피해를 줄 수 있는 원자력발전소에 불량품을 납품하는 업자, 철근을 빼먹으며 부실 아파트를 짓는 건설회사, 발암물질을 사용하는 불량식품 회사 등은 세월호의 주인과 다를 바 없는 부류들이다.

악덕업자의 친구들, 전현직 공무원 정치인 전관예우 변호사

악덕업자들은 사람의 생명과 건강을 담보로 돈을 번다. 무고한 사람의 생명을 담보로 한다는 점에서 청부살인과 다를 바 없다. 청부살인도 청부업자로선 그게 돈벌이 일뿐이다. 청부살인은 사람을 반드시 희생시켜 돈을 챙기고, 악덕업자들은 ‘무고한 여러 생명이 희생되어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일 뿐 사람 목숨을 가지고 돈을 버는 일은 같다. 희생자는 악덕업자가 훨씬 많기 때문에 사회적 해악은 오히려 심할 수도 있다.

이런 인간들을 뒤에서 도와주는 족속들도 있다. 자기 소임을 제대로 했다면 세월호 사고가 나지 않도록 했을 수도 있는 자리에 앉아서 월급을 받고 있는 사람들도 그들이다. 세월호의 불법과 편법을 눈감아준 해양수산부 공무원, 한국선급에 낙하산으로 내려간 해수부의 전직 공무원 다수가 악덕기업의 친구들이다. 악덕업자로부터 뇌물을 받는 정치인, 거금의 변호비용을 받는 전관예우 변호사, 그리고 그들과 얽히고설킨 판검사들도 같은 부류다.

이런 인간들은 사고의 위험성 때문에 법을 지킬 사람들이 아니다. 일벌백계로는 이들을 척결할 수 없다. 이들의 숫자를 조금이라도 줄이려면 기본과 원칙이 작동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수밖에 없다. 누구라도 세월호처럼 하다간 상응하는 대가를 치른다는 원칙이 통하도록 해야 한다. 

 ‘기본과 원칙’에 반대되는 일벌백계

일벌백계는 ‘기본과 원칙’과는 반대되는 방식이다. 법치주의에도 어긋난다. 일벌백계는 본보기만 엄벌하고 아무도 경계시키지 못하는 결과로 끝나기 쉽다. 우리는 큰 사건이 터질 때마다 일벌백계를 외쳐왔으나 ‘일벌’로만 끝나고 ‘백계’는 없었던 셈이다. 그러니 이런 사고가 자꾸 나는 것 아닌가?

일벌백계는 그 취지와는 달리 좋은 방법은 아니다. 민심 수습용인 경우도 많다. 대개는 성난 민심을 달래는 정치일 뿐이다. 세월호 사고의 책임자들을 철저하게 추적하여 끝까지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러나 그게 일벌백계 차원이면 ‘백계’의 효과는 없이 종당에는 흐지부지 되고 말 것이다. 그동안 일벌백계는 거의가 그랬다. 

원칙 따라 궁녀의 목을 벤 손자(孫子).. 박근혜는?

일벌백계를 당장 외면할 수 없다면 방법이라도 바꿔야 한다. 손자는 무조건 궁녀의 목을 벤 게 아니다. 처음엔 손자가 명령을 내려도 궁녀들은 웃기만 할 뿐 따르지 않았다. 그러자 군령을 분명하게 하지 않은 주장(主將) 즉 자신의 책임이라며 어떻게 따라 해야 하는지를 다섯 번이나 설명해주었다. 그리고 다시 명령을 내렸으나 궁녀들은 또 웃기만 했다. 이에 손자는 ‘명령이 전달되었는 데도 따르지 않는 것은 대장(隊將)의 책임’이라며 오왕(합려)의 총애를 받던 대장 궁녀 2명의 목을 베었다. 오왕이 궁녀를 살리려고 목 베는 것을 그만둘 수 없느냐고 부탁해도 손자는 ‘장군이 진중에 있는 한, 임금의 명령이라도 따를 수 없는 경우가 있다’며 목을 베었다.

손자의 일벌백계에는 중요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 손자는 일벌백계 전에 자신의 명령 내용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전달했고, 그래도 명령이 시행되지 않자 그 책임을 대장에게 물었다. 그리고 오왕 자신이 일벌백계의 명령을 내린 게 아니다. 이 점에서 손자와 박 대통령의 ‘일벌백계’는 크게 다르다. 대통령은 손자처럼 기준과 원칙을 먼저 정해야 한다. 일벌백계식의 수사가 필요하다 해도 검찰이 주체가 돼야 한다. 대통령 자신이 나서 수사하듯 하고 공무원 목을 치듯 해선 안 된다. 

박 대통령은 취임하면서 ‘안전한 사회’를 천명하고 부처 이름도 ‘행정안전부’에서 ‘안전행정부’로 바꾼 만큼 안전의 중요성은 확실하게 설명한 셈이다. 그런데도 최고 책임자인 국무총리가 대통령의 뜻을 소홀히 여겨 나라가 이 지경이 됐다면 책임을 묻는 게 마땅하다. 인천시장에 출마한 전 안전행정부 장관도 소임을 못한 게 드러난 만큼 후보직 사퇴를 요구해야 된다.

기본과 원칙으로 가야.. 갈 길 먼 박근혜 정부

대통령은 사고현장까지 달려갔지만 단 한 명도 구하지 못했다. 대통령이 잠수부가 아닌 이상 바다에 뛰어 들 수 없다. 구조하는 방법도 사고를 효과적으로 수습하는 요령도 대통령은 모른다. 현장에서 한 일이라고는 “말 안 듣는 공무원을 내게 알려 달라”는 말밖에 없다. 박수까지 받고 왔지만 물속에 잠겨 숨져간 희생자들에겐 아무 도움도 줄 수 없었다. 기본과 원칙(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으면 대통령이 현장까지 가더라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점은 확인된 셈이다. 

일벌백계와 대통령의 현장 방문은 공통점이 있다. 둘 다 실효성보다는 분노한 민심 대처용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정치는 민의(民意)를 따르는 것이지만 원칙없이 민심(民心)만 쫓아선 진정으로 국민을 위할 수 없다. 국민의 안전도 지킬 수 없다.

기본과 원칙으로 가는 수밖에 없다. 일벌백계는 그와 상충되는 방법이다. 대통령마다 일벌백계를 외쳐왔다. 그러나 국민의 안전을 지킬 수 있는 ‘기본과 원칙’은 아직 누구도 세우지 못했다. 세월호 사건에서 허둥대는 모습을 보면 박근혜 정부가 국민의 안전을 강조하면서도 원칙조차 세워져 있지 않음이 드러났다. 박근혜 정부는 갈 길이 멀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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