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창희 국회의장 물먹인 국토부

  김학용 주필  
 김학용 주필

국토부는 그제 ‘도시재생 선도지역’ 13곳을 발표했다. 구(舊) 충남도청 부근처럼 쇠락한 도심을 되살리기 위한 정부사업이다. 선정 지역엔 60억~250억 원이 지원된다. 13곳 중에 대전은 빠져 있다. 수도권을 제외한 시도 중에선 대전과 울산만 물을 먹었다. 충남과 전남은 2곳씩 뽑혔고 부산 대구 광주도 1곳씩 들어갔다.

광주시는 ‘구 전남도청 주변 활성화 사업’으로 100억을 지원받게 되었으나 대전시가 낸 ‘구 충남도청 주변 활성화 사업’은 떨어졌다. 국토부는 각 시도가 신청한 86곳 가운데 13곳을 선정했다. 대전은 중구(구 도청 부근) 동구 대덕구 등 4곳을 넣었으나 모두 탈락했다.

舊전남도청(광주)은 되고 舊충남도청(대전)은 안된 국토부평가

국토부 평가가 불공정했다는 증거는 없다. 대전시가 제출한 사업계획이 타 시도에 비해 뒤졌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중구 상인들이 받을 수도 있었을 최소  60억 원 이상의 국비 지원금이 날아간 책임은 일차적으론 대전시한테 있다. 그러나 평가가 공정했다는 증거도 없다. 국토부 관계자는 국토위원회에서 전문가로 구성된 평가위원회 심사로 평가한 것으로 평가의 내용은 공개할 수 없다고 했다.

해당 지역구 국회의원인 강창희 국회의장 책임이 크다는 지적도 있다. 정부의 공모사업을 따내는 문제는 공무원보다는 그 지역 국회의원 책임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대전시도 이 문제와 관련 강 의장과 지역 국회의원들에게 관심을 가져달라고 부탁했고 강 의장도 노력하겠다고 답했었다고 한다.

강 의장이 어느 정도 노력을 했는지 모르나 국회의장 임기 말에 국토부한테 크게 한번 물먹은 꼴이 됐다. 전국 시도(市道) 가운데 한 두 곳만 떨어뜨리는 경쟁에서 국회의장 지역구를 탈락시켰으니 국회의장 눈치는 안 본 셈이다. 힘없는 임기말 국회의장이란 게 죄라면 죄다.

염홍철 시장 역점 사업들 줄줄이 퇴짜 탈락...

그러나 나는 강 의장의 책임보다 박근혜 정부와 대전시의 ‘원만치 않은 관계’ 때문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더 크다. 정권 차원의 ‘대전 박대’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작년 2월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염홍철 시장이 추진해온 역점 사업들은 전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도시재생 선도사업 탈락도 그래서 의심을 하는 것이다.

과학벨트, 롯데테마파크 ,유니온스퀘어는 민선 5기 염 시장의 최대 역점 과제였다. 과학벨트는 반쪽이 되어 있고, 롯데테마파크와 유니온스퀘어는 물거품이 되었다. 여기에다 이번에 도시재생 선도사업까지 탈락했으니 줄줄이 물을 먹은 꼴이다. 롯데테마파크와 유니온스퀘어의 경우 찬반 논란이 있던 사업이니 그렇다 쳐도 국가적 사업인 과학벨트와 도시재생사업은 이해하기 힘들다.

미래부장관도 원안이 더 낫다는 과학벨트도 ‘반쪽’으로

과학벨트는 가장 먼저 브레이크가 걸린 사업이다. 정부는 전체 사업비 가운데 불과 20분의 1밖에 안 되는 부지매입비를 대전시가 부담하지 않으면 추진할 수 없다는 이해할 수 없는 핑계를 대며 트집을 잡았다. 하지만 그건 대통령의 뜻이었다. 박 대통령은 취임한 지 얼마 안 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과학벨트는 정부(미래부)와 지자체(대전시)가 갈등을 빚고 있는 만큼 청와대가 함부로 나서지 말라”며 공개적으로 브레이크를 걸었다.

여권과 정부 관계자들은 대통령의 ‘말뜻’을 알아채고 과학벨트에 대해 본격적으로 발목을 걸기 시작했다. “과학벨트를 하려면 대전시가 부지매입비를 내라”는 합창이 도처에서 이어졌다. 지금 보니 과학벨트뿐 아니라 대전시 전체에 대한 브레이크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든다. 결국 염 시장이 항복하면서 엑스포과학공원을 과학벨트 부지로 내놓았고, 과학벨트 수정안은 둔곡·신동지구와 과학공원 양쪽으로 쪼개지면서 사실상 반쪽이 되고 말았다. 

이 사업의 주관 부처인 최문기 미래부장관은 국회에서 “과학벨트는 원안이 더 낫다”고 밝힌 바 있다. ‘반쪽 과학벨트’는 수정안 반대론자의 폄훼가 아니라 사실이 그렇다는 뜻이다. 염 시장이 항복하면 반쪽이라도 제대로 진행될 줄 알았으나 지금도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야당에서 대전시장이 되면 더 어려워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60억~250억원씩 지원하는 국토부의 도시재생사업에서  수도권을 제외한 지방 가운데는 대전과 울산만 탈락했다.  
60억~250억원씩 지원하는 국토부의 도시재생선도사업에서 수도권을 제외한 지방 가운데는 대전과 울산만 탈락했다.


대전경제및사회단체회의, 정부의 전폭 지원 촉구

기자의 기억으로는 박근혜 정부 들어 대전시에 OK 도장을 찍어준 국비지원사업이 없다. 오죽하면 대전경제및사회단체대표자회의가 “과학비즈니스벨트 등 대규모 투자사업이 성공적으로 추진될 수 있도록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과 대전시의 조속한 추진을 바란다”는 성명까지 냈겠는가?

대전시가 작년에 확보한 국비지원이 처음으로 2조원이 넘었다는 점을 들어 ‘정부의 대전 박대’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 대전시 증가율(12%)은 3조원을 넘어선 광주시(23%)나 2조원을 돌파한 인천시(25%)에 비하면 절반에 불과하다. 무엇보다 국비지원 규모를 정치적으로 조정하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국비지원의 단기간 증가폭 가지고는 지역 홀대 여부를 따지기 어렵다.

주로 지역사업에 대한 허가나 정부사업의 지역분배 과정에서 우대나 홀대가 드러난다. 그런 점에서 박근혜 정부는 의심받을 만하다. 대전에 대해선 줄줄이 퇴짜만 놓았다. 염 시장에 대한 ‘핍박’이요 대전시에 대한 ‘박대’라고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대전은요?’로 상징되는 박 대통령과 염 시장의 악연이 떠오를 수밖에 없다. 그 후에도 두 사람 사이는 꼬여만 갔다.

염 시장은 2012년 대선 과정에서 대전시민의 이익을 내세우며 문재인 후보를 공개적으로 만나는 등 ‘권력 줄타기’로 비쳐질 만한 행보를 했다. 당시 박 후보는 제3당(선진당) 소속의 광역단체장이 경쟁 후보와 대전역에서 만나 속삭이는 걸 크게 신경을 쓰면서도 염 시장과는 끝내 손을 잡지 않았다. 새누리당과 선진당이 합당한 뒤에도 대전시청을 한번 방문해달라는 염 시장 측 요청을 박 후보는 거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 상태에서 박 후보가 대통령이 되었고, 염 시장은 입장이 난처해졌다. 지금도 그 상태가 계속되고 있는 것 같다.

‘대전은요’ 악연 풀리지 않았나? 염 시장 조기 불출마 선언에도 영향 준듯

대통령의 시도(市道)방문은 지방의 목소리를 청취할 수 있는 기회지만 시도지사와 소통하는 수단도 된다. 시도지사들에겐 자신이 대통령과 만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지역 최고 실권자로서의 권위를 확인하고, 정부가 자신을 깔보지 않도록 하는 정치적 의미가 있다.

때문에 여야의 모든 시도지사들은 대통령의 지역 방문을 다투어 부탁한다. 충남 강원 전남 경북 경남 인천 부산 대구 등 웬만한 시도지사들은 시도방문이나 지역 행사를 통해서 박 대통령과 만남을 가졌다. 충북 전북도 대통령의 지방방문 스케줄이 잡혔다가 미뤄진 상태다. 대전시만 대통령 방문을 추진하지 않고 있다. 얼마 전 대전시에 물어봤더니 청와대 쪽에 방문 건의조차 ‘못하고’ 있었다. 이 정도면 심각한 비정상이다. 이런 상태에선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원만한 업무 협조가 어렵다. 과학벨트든 도시재생 사업이든 정부가 대전시에 협조할 수 있겠는가?

작년 8월 염 시장의 불출마 선언도 대통령과의 비정상적 관계 때문에 나왔다고 본다. 염 시장은 “예측 가능한 정치 관행을 만들고 안정적 시정 운영을 위해서”라는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를 댔다. 다음날 한 중앙지는 “과거 염 시장과 박근혜 대통령 간 불편했던 관계가 영향을 준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고 보도했다. 그게 임기가 10개월 이상 남아 레임덕 우려되는 데도 특별한 이유도 없이 조기 불출마를 선언한 진짜 이유였을 것이다.

대통령이 풀어야.. 과학벨트부터 정상화해야

대통령과 지방자치단체장의 불편한 관계 때문에 그 지역 현안사업까지 영향을 받는 건 안 될 일이다. 시장 때문에 왜 시민들까지 피해를 봐야 하나? 단체장의 섣부른 ‘정치행보’는 문제지만 그 때문에 대통령이 단체장을 끝까지 핍박하고 지역까지 박대하는 것은 더 큰 문제다. 대통령이 풀어야 한다. 과학벨트부터 제대로 추진해야 의심을 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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