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트 시장에 대한 기대

   
 김학용 주필

나는 권선택 대전시장 당선자에 대한 기대가 크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몇 가지 된다. 나처럼 생각하는 시민들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본다.

최고 스펙의 엘리트 관료가 대전시장으로

첫째, 권 당선자는 대전이 배출한 가장 유능한 정통 관료 중 한 사람이다. 대전시에서 기획실장 행정부시장 정무부시장을 지냈고, 안전행정부 등 중앙부처에서도 요직을 거쳤다.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청와대 인사비서관까지 지냈다. 행정고시 수석까지 한 수재다. 그는 경험과 이론 모두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스펙을 가졌다.

그는 시장이 되겠다고 맘을 먹은 지도 꽤 오래 되었다. 그의 대전시장 출마 얘기는 민선 3기 선거 때인 2002년부터 나왔다. 당시 홍선기 시장이 3선 출마로 가닥을 잡으면서 그의 도전은 연기되었고, 이후에도 염홍철 시장에게 두 번 발목이 잡히면서 예선 통과도 못했다. 그는 이번에 10년 이상 된 시장 꿈을 이뤘다. 그만큼 준비도 탄탄히 했을 것이다. 이번 선거에 내놓은 공약도 꽤 촘촘해 보였다. 본인도 ‘세월호’가 당선에 영향을 줬다는 점을 인정했지만, 역량과 준비 과정으로 보면 그의 당선은 전혀 손색이 없는 승리다.

둘째, 권 당선자는 이전 시장들에겐 없던 정치 경력도 있다. 국회의원을 두 번 하면서 경험을 쌓았다. 시도지사 직무를 수행하는 데 있어서 정치 경험은 무엇보다 큰 자산이다. 중앙정부 근무 경력에다 정치 경험까지 있으니 정부와 대화하고 협상하는 데 유리한 건 당연지사다. 이제 시도지사는 그 지역 파워를 상징하기도 한다. 이는 지방분권화에도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첫 민주당 출신 대전시장.. 진보적 가치 반영 기대

셋째, 그가 지방자치 부활 이후 최초의 민주당계(새정치연합) 출신 대전시장이란 점에서 기대감을 갖는 사람들도 많다. 새정치연합은 새누리나 선진당에 비해 진보적 정당이다.  민주당 시장이 들어서는 만큼 무엇보다 개혁성과 투명성에서 대전시 행정이 과거보다는 진전될 것이란 기대가 있다. 보수당 출신 시장들이 하던 지난 20년과는 뭐가 달라도 다를 것이란 기대감이다. 그가 관료 출신이고, 한때 선진당 옷을 입었던 전력에 미루어 그의 개혁성에 의문을 표하는 시각도 없지는 않다. 그래도 그가 첫 민주당 출신 시장이란 점은 주목해 볼 부분이다.

넷째, 그의 ‘원만한 성품’도 기대감을 갖게 하는 요인이다. 그는 고시 출신이면서도 고시 출신답지 않다. 고시 출신에게 풍기는 ‘엘리트 냄새’도 가장 덜 한 사람이다. 조직을 원만하게 잘 이끌 만한 성품이다. 대전시 부시장 시절에는 시장과 공무원 사이에서 가교역할을 원만하게 수행하면서 아래 사람들로부터도 인정을 받았다. 이번 선거에서도 대전시청 공무원들 가운데 그를 지지한 사람들이 많았다는 얘기가 있다.

행정고시에서 장원 급제한, 뛰어난 인재가 중앙과 지방에서 다양한 경력을 쌓은 뒤 굳은 의지로 도전하여 마침내 시장 꿈을 이룬 것이다. 이 정도면 세월호 영향이든 적군의 분열 탓이든 대전시민들은 이번 선거에 ‘보기드문 인재’를 선출한 셈이다.

권 당선인은 ‘품질’로 보더라도 손색이 없다. 실력은 없으면서 이름만 높거나 표(票) 장사에만 소질이 있는 ‘득표 기술자’로 시도지사에 당선되는 뭇사람들과는 다른 인물이다. 그에 대한 세평(世評)이 어떤지는 잘 알 수 없으나 나는 그렇게 본다.

   
권선택 대전시장 당선자.

자치단체장은 도시의 미래와 발전에 큰 영향

지방자치단체장의 중요성은 말할 필요가 없다. ‘2할 지방자치’라는 자조가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래도 한 지역의 변화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사람은 지역의 장(長)인 시도지사다. 대전시장은 150만 대전시의 미래를 최전선에서 열어가는 사람이다. 시장의 생각이 부족하면 도시 발전은 정체되거나 후퇴할 수밖에 없다.

원도심 활성화, 과학벨트의 성공적 추진 등 대전의 미래가 달린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특히 오늘날의 대전을 만든 호남선과 충남도청이 대전을 떠나면서 위기감이 높아지고 있다. 시민과 상인들 사이에는 이러다가 대전이 쇠락해가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까지 하고 있다. 대전은 새로운 100년을 준비해야 할 절실한 시점이지만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막중한 시기에 대전은 최고 스펙의 소유자를 시장으로 맞이한 만큼 기대가 더 크다. 그가 시민들에게 뭘 보여줄지 궁금하다. 선거 때 내세운 공약들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나는 그 못지 않게 이를 실천하는 방식 즉 그의 ‘리더십 스타일’에 대한 궁금증이 더 크다. 어떤 일이든 결국은 그의 리더십 여부에 달렸기 때문이다.

그의 공약보다 ‘새로운 리더십’ 기대

시민들은 그가 어떤 행정, 어떤 리더십을 선보일지 주목하고 있다. 가령, 본인이 직접 꿰차고 일을 하게 될지, 아니면 아래 사람들에게 위임해서 하는 타입인지도 지켜볼 것이다. 개혁성의 정도가 어느 정도일지도 궁금하다. 선거 때 했던 인사청문회 약속을 정말 지켜낼지, 법과 현실을 핑계로 흐지부지할지도 지켜볼 것이다. 행정의 투명성을 얼마나 높일지도 궁금하다. 지금 대전시 행정은, 특히 대기업 관련 업무는 ‘어둠 속’에서 이뤄지고 있다.

권 당선자가 이런 것을 과감하게 혁신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국가 개조’는 정부와 국민이 한 목소리로 합창하는 시대적 과제가 되어 있다. 관피아와 정피아 척결은 국가적 과제다. 그러나 지방에선 개혁과 혁신을 여전히 ‘남의 일’로 여기는 분위기다. 대전시에 관한 한, 시장이 될 권 당선자에게 달려 있다.

시장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아무리 ‘최고스펙의 시장’이라고 해도 공무원과 호흡을 맞추고 시민들과 함께 해야 성공할 수 있다. 17일부터 운영에 들어간 권선택 당선자의 시민경청위원회의 목적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시민들과 함께 시정 현안과 공약을 되짚어보면서 당선자가 앞으로 4년 간 할 일의 밑그림을 그려보는 일이다.

권선택 시민경청위원회 제대로 가고 있나

시민경청위원회는 인수위원회에 다름 아니지만 이름에 굳이 ‘시민경청’을 넣었다면 보통 시민들을 보다 많이 넣어야지 시민은 거의 없고 전문가들만 모신 모양이어서 좀 그렇다. 일부 언론들이 지적했듯이 경청위의 ‘비공개’도 납득이 안 된다. 시민경청이면 당선자가 작금의 시정 현안에 대해 시민들과 함께 듣고 살펴본다는 것인데 숨길 게 무엇이 있겠는가?

당선자와 위원들만 알고 시민들은 알아선 안 되는 게 있다면, 당선자가 대전의 미래를 시민과 함께 그릴 수 없다. 당선자와 몇몇이서 그릴 수밖에 없다. 지금 대기업과 관련된 대전시 사업들이 이런 식으로 추진돼 오면서 불신을 사고 있는 것 아닌가? 도시계획 문제나 개인 정보 누출의 문제가 아니면 다 공개해야 한다. 그게 어렵다면 시민경청위라는 이름에서 ‘시민’을 빼는 게 낫다.

취임식도 하기 전에 당선자의 신분으로 총무과장을 내정한 건 웃기는 일이다. 취임도 전에 총무과장을 정해서 일을 시키는 것은 내가 이사 해 갈 집이 정해졌어도 날짜가 되어 그 집 주인이 집을 비운 뒤에야 자기 짐을 들여놓을 수 있는 것이지 아직 이사도 안 간 남의 집 안방에 내 장롱을 들이미는 꼴이다.

당선인 신분으로 총무과장 내정은 이해 안가

현 총무과장이 물러나기 때문에 취임식을 준비할 사람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보이지만 꼭 총무과장이 있어야만 취임식을 준비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내정자는 인사 실무 작업도 하고 있을 것이다. 인사가 중요하긴 해도 당선자 신분으로 진행해야 할 만큼 급한 일은 아니다. 무엇보다 상식에 어긋난다. 본의가 아니라고 해도 인사에 걸신들린 당선자처럼 보이기 십상이다.

청와대 인사비서관까지 지낸 ‘행정의 고수’에겐 별도의 인사 법칙이 있는지 모르나, ‘지방행정학(목민심서)’의 고수였던 다산(茶山)은 이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다산은 새로 부임해가는 수령은 가급적 조용하게 처신할 것을 주문한다. “(새 수령은) 신영(新迎)나온 아전(대전시 공무원들)을 대함에 경솔히 체모를 손상해서는 안 되며 뽐내고 잰체해서도 안 된다.”

총무과장 내정이 누구 아이디어인지는 모르나 시청 공무원들이 수근거리면서 장안에 퍼지고 있다. 권 당선자는 이것으로 인하여 적지 않게 체모를 손상당하고 있다. 5급 공무원도 안 할 일을 행시수석 당선자가 하고 있으니 더욱 말이 많다. 4급 자리인 비서실장을 3급으로 높이는 논의도 진행되다 중단됐다고 한다. 그런 황당한 논의가 왜 있었는지 궁금하다.

시민들, 엘리트 시장 일거수일투족 주시할 것

모두 권 당선자 자신이 시킨 일은 아닐 것이나 ‘엘리트 관료’ 이미지와는 거리가 먼 사건들이 취임 전부터 일어나고 있다. 작은 사건으로 취급하기에는 새 시장의 이미지에 손상이 적지 않을 것이다. 정말, 만에 하나 이런 일들이 “행정은 내가 최고”라는 자만에서 나오는 것이라면 위험하기 짝이 없는 행동이다.

권 당선자는 시민들의 ‘엘리트 시장’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 바란다. 시민들은 새 시장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하고 있다. 공부 잘하는 학생이 꼭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우등생이 역시 다르다는 점을 새 시장은 보여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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