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용 칼럼] 이해 어려운 도시공사사장 인사

김학용 주필
선거에서 어렵게 당선된 사람들이 갖는 약점이 있다. 승산이 별로 없었다가 당선된 사람은 선거 과정에서 개인적으로 진 ‘부채’에 시달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당선 가능성이 높지 않은 후보는 후원자들에게 무리한 ‘보상’을 약속하기 쉽기 때문이다.

승산 별로 없던 당선자들의 약점

용케 선거에서 이기면 보상 약속은 부채로 전환되고, 당선되는 순간부터 빚에 쫓기는 신세가 된다. 그래서 당선자의 위세 속에는 ‘남모르는 부채’에 대한 고민도 있다. 대전시 정무부시장과 도시공사 사장 인선을 보면 지난 선거에서 어렵게 당선된 권선택 시장도 그런 ‘부채’에 시달리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권 시장이 선택한 정무부시장과 도시공사 사장의 공통점은 모두 ‘의외의 인물’이라는 점이다. 그들이 낙점자로 발표되었을 때마다 지역사회에선 “그 사람이 도대체 누구냐?”는 반응이었다. 의아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많았다. P씨가 도시공사사장 복수후보로 발표되자 공직사회는 “뜻밖의 결정”이라며 의아해 했다. 대전시 발표자료에 따르면 P씨는 대전 공병단 출신으로 군 예편 후 유탑엔지니어링(부사장), 토팩지니어링(상무), (주)백상(회장) 등 중소업체에 근무했으나 알려진 게 거의 없는 인물이다.

미지의 인물이나 의외의 인물이어서 신선한 인사가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을 기용할 경우에도 발탁의 근거는 있어야 한다. 그런 사람을 순전히 인사권자의 판단으로만 쓰면 의문이 나오게 돼 있다. 권 시장의 경우도 ‘부채 문제’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권 시장이 발탁한 의외의 인물들은 권 시장에 대해 ‘채권자’로 보인다.

권 시장 인사 논란, ‘부채 문제’ 때문 아닌가? 

그들이 권 시장을 어떤 방법으로 얼마나 도왔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이 가진 ‘채권’은 정무부시장이나 공기업사장 자리를 제공해야 될 정도의 규모일 것이다. 어쩌면 아예, 시장에 당선되면 그 자리를 주겠다는 약속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약속’을 확인하는 건 어렵다. 그러나 납득하기 힘든 ‘의외의 인사’는 그런 계약 같은 걸 의심하게 만든다. 도시공사 사장 공모에 7명이 지원했다. 관심을 갖고 직간접으로 타진해본 사람들은 그보다 훨씬 많을 것이고, P씨보다 뛰어난 사람이 왜 없었겠는가? 그런데도 유독 P씨가 뽑힌 이유가 뭔가?

권 시장은 회견에서 “내정자는 도시 개발에 대한 식견이 있고 강직한 성품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사장 내정자는 제가 (시장에) 당선돼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들 중 한 명이다. 저와 만나 구체적으로 지방선거 때 어떻게 도울지 얘기했던 사이는 아니다”고 했다.  

그렇다면 권 시장은 뭘 보고 그를 막중한 도시공사 사장 자리에 앉히려 하는가? 사장 공모 신청 서류로만 보고 골랐다는 말인가? P씨가 공병대 출신으로 강직한 성품이란 소문만 듣고 그를 발탁했다는 말인가? 그 말을 누가 믿겠는가?

인사청문회에선 이 부분부터 물어봐야 할 것 같다. 이번 도시공사 인선에서는 권 시장과 사장 내정자의 ‘관계’를 상세하게 알 필요가 있다. 지금 상태로는 도시공사사장 자리가 ‘거래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청문위원들은 두 사람을 위해서라도 – 의혹을 씻기 위해서라도 – 제대로 물어볼 필요가 있다.

“요즘은 자리 찍어서 약속받고 선거 돕는다”

지방선거에 간여했던 한 인사는 선거 과정에서의 ‘거래 실태’를 전해주었다. 그는 지난 선거 때 예비선거 탈락자 한 명은 지원 조건으로 인사권 몇 자리를 요구했던 것으로 안다고 했다. “과거에는 선거를 도와주면 적당한 자리를 주겠다는 식으로 약속을 했지만 요즘은 자리를 구체적으로 찍어서 약속을 요구한다”고 했다. 때론 증인을 세우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도시공사 사장으로 임명된 사람들은 대개 두 부류였다. 요즘 ‘관피아’로 욕을 먹는 공무원 출신이거나 정부 산하 공기업 출신 등 관련 분야 전문가였다. 각기 문제점도 있으나 나름의 명분은 있었다. 

도시공사사장 내정자는 공무원 출신도 전문가도 아니다. 정당 추천자도 아닌 것 같다. 현재 유성에 거주하고 있다는 그에 대해 유성구가 지역구인 이상민 의원도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고 했다. 권 시장도 “당과는 관계가 없다”고 했다.

대전시는 P씨에 대해 “공병대 출신으로 둔산신도시 개발착수의 기틀을 조성하고 시내에 산재해 있던 군부대를 현재 자운대 지역으로 이전배치 하는데 실무적인 업무를 추진한 경험 등 대전시 도시발전에 많은 기여를 했다”고 했다. 그게 발탁 이유라면 20~30년 전부터 도시계획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대전시 기술직 공무원들은 도시공사에 회장 자리 만들어서 보내야 한다.

이렇다 할 경력도 없는, 지역에서 가장 마당발인 지역구 국회의원조차 모르겠다는 사람을 도시공사 사장으로 임명한 이유가 도대체 뭔가? ‘부채 갚기’가 아니라면 이건 하나 있다. 도시공사는 시장이 기업들과 업무적으로 ‘소통하는’ 창구여서 능력도 능력이지만 믿을 만한 인물을 사장으로 쓰고 싶어 한다는 점이다. 권 시장이 믿고 맡길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P씨라서 선택했다는 가정도 가능은 하다. 그러나 신뢰만으로 발탁될 수 있을까? 

정무부시장 인사와 도시공사사장의 차이점

시장의 ‘부채’ 의혹은 떨쳐버리기 힘들다. 도시공사사장은 정무부시장보다 더 큰 문제다. 정무부시장의 경우는 누가 봐도 권 후보의 선거운동을 해준 데 대한 대가로 보이는 만큼 주변 사람들도 알 수 있는 반공개적인 ‘부채’였다. 그러나 도시공사 사장의 경우는 당사자인 시장부터 ‘관계’를 전면 부인하고 있으니 의문은 더 커지고 있다. 

이에 대한 해명이 충분치 않다면 도시공사사장 인사는 역대 대전시 인사 가운데 가장 의문스러운 인사가 될 수도 있다. 대전시로서도 권 시장으로서도 심각한 문제다. 도시공사는 대전시의 가장 큰 공기업이다. 수백억~ 수천억 원씩 하는 사업들이 제대로 진행된다는 보장이 없다. 투명 경영에 대한 보장도 힘들다.

불투명한 인사, 권 시장 리더십 위기 부를 수도

도시공사사장 인사는 권 시장이 실질적으로 인사권을 발휘하는 가장 큰 인사다. 그러나 단순히 도시공사 사장 한 명을 임명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니다. 권 시장이 대전시 행정을 어떻게 이끌어 갈지를 가늠해볼 수 있는 첫 인사다. 이런 인사가 심각한 의문 속에 강행된다면 시장의 리더십은 처음부터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 권 시장은 이 문제에 대해 상세하게 해명해야 한다.

13일 대전시 주관으로 ‘셀프 청문회’가 열린다. 청문회에는 오히려 인사권자인 권 시장이 나와야 될 상황이다. 도시공사 사장의 경영능력과 도덕성을 검증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지금 시민들 가운데는 도시공사사장 자리가 ‘거래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가진 사람이 많다. 도시공사 사장보다 대전시장의 도덕성이 훨씬 중대한 문제다. 도시공사사장 인사의 초점은 사장이 아니라 시장에게 넘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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