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기천의 확대경]

몇 년 전, 충남의 어느 군 의회에서 의장단 선거를 하는데, 공교롭게도 양당(兩黨) 소속의 의원 수가 같았다. 의장선거를 앞두고, 선거결과 최다득표자가 동수(同數)가 되면 연장자를 당선자로 선출하여야 한다는 규정을 파악한 A당에서는 자당 후보를 당선시키고자 소속의원 중 최 연장자를 의장후보로 내정하여 당선시켰다.

의장 선출도 제 때 못하는 지방의회들

가기천 수필가·전 서산시부시장
이에 의장자리를 차지하지 못한 B당은 같은 상황에서 부의장 선거를 하면 부의장마저 A당에 내주어야 할 것으로 예상되자, 자당 소속 의원가운데 이미 의장을 역임한 의원을 부의장으로 밀어 당선되도록 하였다. 의원가운데 두 번째 연장자인 그 의원을 내세우지 않으면, 세 번째 연장자가 소속되어 있는 A당에서 부의장까지 차지하게 되기 때문이었다.

모 광역의회에서는 의장선거에서 2차 투표에서도 당선자가 나오지 않아 결선투표를 하였는데, 두 의원 가운데 한 표를 더 얻은 후보자의 이름 자 중에서 ‘ㅗ를 쓰면서 획을 흘려 내려써 ㅜ로도 보이게 하고 ㅇ받침을 쓴 글자’가 맞느냐 틀리느냐하는 문제가 불거졌다. 유효로 보면 그 후보자가 당선이 되고, 그 한 표를 무효로 판정하면 득표수가 같게 되어 연장자인 차점자가 의장이 되었다.

의원들 가운데 일부는 재선거를 실시하자는 의견이 있었으나, 이미 결선투표를 했는데 규정상 재(再)결선투표를 실시하는 것은 논란이 있을 수 있으므로, ‘유‧무효표 판정단’을 구성하고, 그 판정단의 결정에 따르도록 합의하였고, 긴 논의 끝에 유효표로 인정하기로 하여 결국 한 표를 더 얻은 의원이 의장으로 당선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어느 기초의회에서는 한 석이 많은 다수당 내에서 전‧후반기 의장을 누가 먼저 맡을 것인가를 두고 논의를 하였으나 원만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자, 한 의원이 상대 당에 동조함으로써 의석수가 한 석이 적었던 당에서 의장이 나온 사례도 있다.

의장직 경쟁에 매달리는 이유

 그렇다면, 왜 의장자리를 차지하려고 하는 것일까? 지방자치법상 지방의회 의장은 ‘의회를 대표하고 의사(議事)를 정리하며, 회의장 내의 질서를 유지하고 의회의 사무를 감독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이런 제도적인 기능과 권한과 더불어 의전 상 자치단체의 장(長)에 준하는 대우를 받으면서 부속실이 딸려있는 집무실이 있고, 승용차와 기사를 제공받으며 공식적인 행사에는 수행원이 따른다.

또한 적지 않은 액수의 업무추진비를 쓸 수 있다. 이와 같이 명예와 함께 활동에 편리함이 따르니 어느 정도의 여건을 갖춘 의원이라면 의장자리를 꿈꾸게 된다.

 대전시 서구의회가 임기를 시작한지 두 달이 넘도록 원 구성조차 하지 못하는 파행을 겪고 있다. 의장(議長)자리를 놓고 양 당 간의 줄다리기 양상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들린다. 시민들이 의회 앞에서 시위를 하고 서명운동을 하며 유‧무언의 압박을 하고 있지만 좀처럼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언론에서도 연일 비판을 하고, TV에서는 토론주제로 삼는데도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모양이다. 오죽하면 지방의회 무용론이 일어나고 구의회를 폐지해야 한다는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디트뉴스24에선 지방자치제도 개선을 위해 차제에 의회를 한시적으로 폐지하여 구의회가 없으면 주민에게 어떤 불편이 생기는지, 구청에선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등을 확인해보는 기회로 삼아보고자 ‘무의회(無議會) 실험’을 해보자는 의견까지 제시하였다.

서구의회 의장 제비뽑기로 하면 어떨까?

한편에서는 이런 와중에서도 두 달 치의 의정활동비는 수령했다고 비난한다. 이에 대하여, 의정활동비를 반납하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자 한 의원이 623만원을 복지단체에 기부하였으나, 이 조차 구(區)에 반납을 해야지 단체에 기부하였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선거에 나와서는 ‘주민을 섬기고 지역발전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치겠다’고 하던 약속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의문이 가지만, 최소한 그 당시의 심정과 각오로 돌아간다면 문제는 쉽게 풀릴 것이라는 바람은 소박한 발상일까?

주민의 대표로 집행부를 견제한다는 제도의 틀에 들어와 그 역할은 고사하고 자신들의 일부터 하지 못한다면,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런 처지에서 앞으로 조례안을 심의하고, 예산안을 심사하며, 행정사무감사‧조사를 한다며 공무원들에게 자료를 요구하고 때로는 호통을 치는 행위를 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하기야 국회도 몇 달 동안 법안을 한 건도 처리하지 못하고, 겉돌고 있으니 무엇을 보고 배울까하는 생각도 든다.

지방자치를 풀뿌리민주주의라고 해서 민주주의의 교육장이고, 지방의 일은 지방에서 스스로 해결한다는 기본적인 원리아래 국가가 흔들려도 지방이 안정을 가져 올 수 있다는 이론을 따른다면, 지방이나마 주민들에게 안정을 주고 희망을 줄 수 있게 했으면 좋으련만 모두 다 그러니 답답하고 한심스러울 뿐이다.

의장단이나 위원장 선출은 의원 개인의 문제이기도 하고 ‘기초단체 장과 의원의 공천 여부’를 두고 논란을 벌였던 정당의 문제이기도 하다. 마치 ‘치킨게임’ 양상으로 진행되는 이번 서구의회의 사태를 보면서, 차라리 이럴 경우에는 어느 당 소속 의원가운데서 의장을 맡을 것인가를 ‘제비뽑기방식’으로 정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까지 갖게 한다. 갈 길은 멀고, 할 일은 많은데 그럴 겨를이 어디 있을까? 오죽해야 그런 상상까지 하게 되는지 마음이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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