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트의 눈] 지금은 정치 행보 자제하고 숨어서 힘 길러야

“김 기자! 어느 시골 어르신이 내게 ‘심대평 지사처럼 되면 안 된다’고 하시더라고….”

지금은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맡아 중앙정치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이완구 의원(부여·청양)이 충남도지사 재임 시절인 2009년 초 어느 날, 기자에게 들려준 의미심장한 이야기다. 당시만 해도 긴가민가했는데 요즘 들어 그 뜻을 곱씹어 보게 된다.

여기서 “심대평 지사처럼 되면 안 된다”는 말은 심 전 지사가 뭘 잘못했다는 게 아니라 “큰 정치를 하기 위해서라도 ‘충청의 틀’에 갇혀서는 안 된다”는 뜻이었을 것이다.

이 의원이 이명박 정부의 세종시 수정안에 반발하며 그 해 12월 도지사직을 사퇴한 것 역시 일종의 정치적 굴레인 ‘충청의 틀’에서 벗어나기 위한 측면도 있었을 것으로 본다.

중앙정치에 발 담는 안희정 지사…조바심 낼 필요 없어

바통을 이어받은 안희정 지사 역시 이와 마찬가지일 수도 있지 않나 싶다. 6.4 지방선거 과정에서 도정의 성과를 바탕으로 차기 대권에 도전하겠다고 밝힌 그였던 만큼 ‘충남지사로 머물러 있는 것’ 자체에 대한 두려움이 가장 크지 않을까 하는 게 요즘 갖는 생각이다.

안 지사가 최근 한 달 여 간 보여준 행보를 보면 더욱 그렇다. 당이 최악의 위기 속에 빠졌던 지난 달 16일 세종시에서 가진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시·도지사 연석회의 때만 해도 안 지사는 기자의 질문에 “현 상황에서 당에 대해 얘기하는 게 무슨 도움이 되겠나?”라며 한 발 빼는 자세를 취했다.

그러나 17일과 19일 잇따라 국회로 올라와 당은 물론 박근혜 대통령과 정치권을 향해 할 말을 다 하는 모습을 보였고, 28일 천안에서 열린 충남도당 주최 ’전 당원 토론회’를 주도하는 등 시·도지사답지 않게 중앙정치에 집중하는 모양새를 노출했다.

상황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새정치민주연합 서울시당(위원장 오영식)이 12일 개최한 토론회에 안 지사가 참석한다는 소식이 국회 출입 기자들에게 전해지면서 작으나마 소란이 벌어졌다.

게다가 이날 행사에는 박원순 서울시장과 문재인 의원(부산사상) 등 새정치민주연합의 잠룡들이 참석할 것으로 알려져 언론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안 지사는 측근을 통해 “12일 일정은 전혀 모르는 일이고, 상의된 바도 없었다”며 도정에 집중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해프닝으로 상황은 마무리됐다.

지금은 나설 때 아냐…‘도광양회’(韜光養晦) 자주 떠올리길

만에 하나 안 지사가 이날 행사에 참석했다면 오늘 칼럼의 논조는 “충남도정은 포기하고 차기 전당대회라도 출마할 건가?”로 바뀌었을 것이다.

물론 이해되는 측면은 있다. 당에 대한 애정이 둘째가라면 서러울 안 지사인만큼 현 상황을 답답하게 느낄 수 있고 하고 싶은 말도 많을 것이다. 도지사로서의 안희정과 차기 대권주자로서의 안희정 사이에서 갈등을 느낄 때도 있을 수 있다.

게다가 안 지사 스스로 차기 대권 주자임을 선언한 만큼, 본인이 의도하지 않더라도 그의 모든 행보를 대권과 연결 지어 보려는 시선도 부담스러울 법하다.

그러나 지금은 때가 아니다. 안 지사가 약속했던 ‘도정의 성과’가 윤곽을 드러냈다고 보긴 어렵고, 당 안팎의 평가 역시 안 지사에게 무조건 우호적이지도 않다. 벌써부터 적을 만들 필요도 없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는 법. 바라 건데 안 지사는 ‘도광양회’(韜光養晦: 빛을 감추고 어둠 속에서 힘을 기른다)란 고사 성어를 자주 떠올렸으면 한다. 오늘의 그 자세가 언젠가는 안 지사의 재선을 허락한 충남도민에 대한 보은(報恩)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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