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용 칼럼]‘묵비권 행사’와 ‘늘어지는 수사’

김학용 주필
검찰 수사의 칼끝이 권선택 시장으로 향하고 있다. 검찰은 권 시장의 당선을 무효화할 수 있는 권 캠프의 회계책임자 김 모 씨를 구속하려 하고 있다. 판사는 구속 영장을 기각했으나 검찰은 영장을 재청구한다는 방침이다.

영장의 발부 여부가 김 씨의 죄값을 말해준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가 300만원 이상의 벌금형을 받으면 권 시장의 당선은 무효가 된다. 분명한 것은 검찰 수사가 권 시장의 당선을 무효화할 수도 있는 수준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권선택 시장으로 향하는 검찰의 칼끝

현재까지 확인된 사실은 권선택 선거캠프에서 나온 것으로 의심되는 4600만 원이 77명에게 뿌려져 불법선거운동에 쓰였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 홍보업체 관계자 2명과 캠프 관계자 1명이 구속돼 있고, 이 돈을 건넨 것으로 보이는 총무국장과 선거팀장은 도주한 상태다.

이 돈을 집행하는 데 회계책임자인 김 씨가 관여했거나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 확인되면 – 법원이 그렇다고 판단하면- 권 시장은 낙마할 가능성이 높다. 김 씨는 물론이고 권 시장 자신이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다면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권 시장이나 김 씨가 불법선거운동 사실을 몰랐다고 해도 선거비용이 한도를 초과한 것으로 드러나면 권 시장의 당선은 무효다. 검찰은 김 씨의 불법선거운동 개입 사실이나 선거비용 초과, 어느 하나만 확인하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따라서 수사의 초점도 두 군데에 맞춰져 있다.

시장의 위기는 대전시 행정의 위기

수사의 결과를 단정짓기는 어렵지만 권 시장은 ‘위기’에 처해 있다고 봐야 한다. 문제는 그가 인구 150만 명의 살림을 책임지는 자리에 있다는 점이다. 가장이 송사에 휘말리면 집안이 흔들리고, 회사 대표가 수사를 받으면 그 회사가 제대로 굴러가기 어렵다. 시장이 이런 상태에 있다면 시정이 제대로 돌아갈 수 없다.

공직사회는 큰 일이 벌어져도 웬만해선 겉으로는 표시가 나지 않는다. 그러나 앞날이 불투명한 수장(首長)의 말을 귀담아 들을 사람은 별로 없다. 대통령이 목청을 높여도 잘 움직이지 않는 게 공무원들이다. 현직 시장의 운명을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시 조직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리 없다.

대전시는 한해 4조원 가까운 예산을 집행하는 기관이다. 할 일도 수두룩하다. 도시철도 2호선 문제, 과학벨트의 정상적 추진, 원도심 활성화 사업 등 대전시의 미래와 시민들의 민생과 관련된 문제들도 많다. 시장의 신분이 불안한 상태에선 이런 일들을 제대로 진행하기 힘들다. 경우에 따라선 엄청난 예산낭비를 가져오는 원인이 될 수도 있다.

결말이 무엇이든 ‘시장의 신분 불안 상태’가 오래 가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대통령은 현행범이 아닌 이상 재직 기간에는 형사상 소추를 당하지 않도록 돼 있다. 시도지사를 대통령과 비교할 수는 없으나 임무의 막중함을 고려하면 시도지사는 수사 기간을 최소화하는 게 필요하다.

권 시장, 해명이든 저항이든 해야

권 시장과 검찰 측에 주문하고 싶다. 권 시장은 수사에 적극 협조해야 한다. 권 시장은 검찰 수사에 대해 ‘지켜보겠다’는 식의 태도를 취하고 있다. 6일 기자회견에서도 기자가 수사에 대한 입장을 묻자 “수사 상황을 잘 지켜보겠다”고만 했다. 자신을 도왔던 사람들이 줄줄이 검찰에 불려가면서 주변이 쑥대밭이 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젠 권 시장의 최측근 인사까지 칼날이 들어오고 있다. 떳떳하다면 그냥 지켜볼 게 아니라 항의하고 해명해야 된다. 시민이 뽑아준 시민의 대표가 부당한 수사에 저항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캠프의 총무국장과 팀장의 도피도 이해하기 힘들다. 명색이 광역시장 선거캠프 총무국장인데 수사도중 도주한 것 자체가 웃기는 일이다. 불법선거운동을 시인하는 꼴이며 권 시장에게 책임이 돌아갈 수밖에 없다. 권 시장은 수사에 협조해야 한다. 남의 수사 얘기하듯 ‘지켜보겠다’고 하는 건 무책임하다.

검찰은 이 사건을 오래 끌고 가겠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도피중인 총무국장과 팀장 검거가 늦어지면서 수사가 오래 가는 것 아닌가 하는 시각들이 없지 않다. 장기 수사는 검찰의 선택지는 아니다. 선거법 위반 수사는 빨리 끝내라는 게 법원의 취지다. 1심, 2심, 3심을 합해 6개월 안에 끝내라는 것이 대법원 지침이다. 법적으로도 6개월 이내에 기소를 마쳐야 한다. 따라서 이번 수사는 12월3일까지가 기소시점이다.

검찰은 수사 기간 오래 끌 생각 말아야

검찰이 회계책임자에 대한 구속영장까지 청구한 이상 김 씨를 기소할 가능성이 크고, 이에 대한 법원의 판단은 나오기 마련이다. 선거비용 초과 부분에 대한 수사도 결과가 나올 것이다. 회계책임자에 대한 유죄 입증이나 선거자금 초과 지출, 두 가지 가운데 하나는 ‘유의미한’ 결과를 내는 게 검찰의 목표일 것이다.

검찰이 ‘성과’ 거두지 못하는 상태에서 도피중인 총무국장이 검거되지 않으면 기소중지 기간만큼 수사 기간이 늘어나면서 권 시장에 대한 수사가 사실상 2~3년 간 이어질 수도 있다는 게 법조계의 판단이다. 검찰이 그런 경우까지 감안해서 총무국장 검거에 소극적인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있으나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 식의 수사는 하지 말아야 한다.

이거 해보다 잘 안 되니까 저거 건드리는 식으로 수사를 확장해서도 안 된다. 권 시장의 불법선거운동 혐의가 드러난 만큼 최선을 다해 회계책임자와 권 시장에 대해서도 철저한 수사가 필요하다. 그러나 아니면 말고 식이어선 안 된다. 신속하게 증거위주의 수사를 해야 한다. 회계책임자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된 점은 이런 점에서 수사의 허점을 드러내는 것일 수 있다. 변호인이 검찰의 수사기록을 제때 받지 못한 상태에서 재판에 임하면서 시간만 낭비하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수사를 받는 쪽의 책임도 있지만 검찰 수사의 한계를 드러내는 것이다.

지금 대전시의 가장 큰 현안은 권 시장으로 향하고 있는 검찰 수사다. 최대한 방어해야 할 필요가 있는 ‘개인 권선택’의 입장이 있고, 검찰도 현실적인 ‘목표’가 있다는 점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권 시장이 ‘묵비권’으로 일관하고, 검찰이 ‘늘어지는 수사’로 흐른다면 대전시민으로선 가장 나쁜 경우다. 권 시장은 시장답게 수사에 임해야 한다. 어디든 장(長)은 책임을 지는 자리다. 나쁜 일일수록 더욱 그렇다. 그래야 사는 길도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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