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호 기고]

어느 공식회의 쉬는 시간에 몇 사람이 모여 이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서울을 대표하는 물은 ‘아리수’, 부산을 대표하는 물은 ‘순수’, 창원을 대표하는 물은 ‘청아수’인데 대전을 대표하는 물은 무엇이냐는 물음이 나왔다. 그런데 생각할 겨를도 없이 제일 먼저 튀어 나온 게 어이없게도 ‘삼다수’였다. 그러고 나서 조금 있다가 한쪽에서 희미한 목소리로 ‘이츠 수(It's 水)'  아닌가’였다. 매우 자신 없는 답변이었다.

도시철도 1호선 지하철역 구호물품함에 비상급수로 ‘삼다수’ 비치

황인호 대전시의회 부의장
왜 삼다수냐고 물었더니 공식석상이나 심지어는 도시철도 1호선 지하철역마다 설치되어 있는 구호물품함에 비상급수로 어김없이 삼다수가 비치되어 있더라는 것이다. 필자가 지하철역마다 이를 확인하고 아연해 하던 중, 며칠 전에 있었던 수자원공사 노조위원장 취임식에서 이 얘기를 했더니, 전국에서 모인 단위별 노조위원장들조차 실소를 금치 못했다.

수자원공사야말로 삼다수 같은 샘물생수와 경쟁하는 수돗물 공급원이기도 하지만, 그들은 대전시민이 대청호에서 만들어진 수돗물 ‘이츠 수’를 대전을 대표하는 물로까지는 여기지 않음을 엿본 것이다. 

물 팔아먹는 것을 봉이 김선달이나 하는 짓이라고 힐난하던 시대와 달리, 지금은 ‘물의 전쟁’이 ‘쩐의 전쟁’을 본격적으로 대신하고 있다. 한국이 물 기근국가로 분류되면서 만이 아니라, 70%를 차지하는 인체에 좋은 물이 들어와야 건강해진다는 믿음이 확산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런 믿음이 전 세계에 만연되다 보니, 우리나라는 물론, 지구는 좋은 지하수를 파먹으려는 욕망으로 온통 구멍투성이가 되어간다. 특히 국내의 한라산, 지리산, 백두산 같은 명산은 북적대는 사람들로 부족해서, 이제는 생수업체들까지 노리는데 어김없는 먹잇감이다.

작년 7월 환경부가 발표한 ‘먹는샘물 제조업체 허가현황’에 따르면, 우리나라에만 65개 생수업체가 65곳의 수원지를 근거로 만든 생수브랜드가 100개가 넘는다. 이렇게 브랜드가 많은 이유는 8곳의 수원지만 빼놓고는, 57곳에서 생산되는 샘물이 2개 이상의 이름으로 출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포천, 양주, 청원, 공주, 김해, 순창에서 나온 물을 롯데는 ‘아이시스’라는 이름으로 묶어서 내놓기도 한다. 이런 식으로 2006년에 2700여억 원이던 생수시장은 8년 만에 6000억 원에 달할 정도의 급성장을 보이고 있다. 

2006년 2700여억 원이던 생수시장 8년 만에 6000억 원 ‘급성장’

대전의 수돗물
여기에 해외브랜드라면 사족을 못 쓰는 사람들의 구미에 맞춰, 63개 업체가 생수를 수입판매하고 있다. 바야흐로 판매율 면에서도 생수가 음료수를 앞지르기 시작하는가 하면, 수입생수인 독일의 노르데나우나 프랑스의 에비앙은 리터당 가격이 각각 2만원과 2,360원으로 원유값을 훨씬 따돌리고 있다. 어찌 보면, 인간이 먹는 것이니 기계가 먹는 것보다 비싸야 하지 않겠냐고 자위해 볼 수 있지만, 이젠 예전의 단순한 물이 아니라 건강식품으로 보아야 할 정도의 가격이다.

최근에 우리 주변에서 땅꺼짐 현상이 자주 목격되어 가뜩이나 간담이 서늘한 것은 지하수와 무관치 않다고 본다. 지하철이나 대규모 공동주택과 백화점 등을 지으면서 엄청난 지하수가 유출되는 것을 보면, 물기가 쪽 빠진 미이라를 연상케 한다. 여기에 생수까지 빨아대니 온누리가 온전할까!

수돗물은 제조와 공급이 안전하게 잘 갖춰지면 생태계 보전과 함께, 물의 평등이라 할 정도로 저렴하여, 생수를 대신할 최적의 대안이다. 하지만 우리사회에 만연된 수돗물에 대한 오해를 간과해서는 안된다. 우선 시중에 정착된 용어로, 판매되는 물을 ‘생수’라고 하는데 비추어 보면, 수돗물은 마치 ‘죽은물’처럼 인식될 수 있다.

미국 뉴욕의 수도관들도 대부분 100년이 넘었단다. 그래서 관이 녹슬고, 염소성분 또한 우리보다 많단다. 그런데도 뉴욕시민들의 80% 이상이 수돗물을 마신다고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뉴욕으로 이민간 한국인들만이 정수기를 많이 쓴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 또한 일단 어디를 가나 한국인들의 관에 대한 부정적인 의식이라고 치자!

'이츠 수' 이름 바꾸고 수돗물에 대한 인식도 바꿔야

서울이 수돗물 개선과 시민들의 인식전환에 앞장서고 있다. 이미 세계보건기구가 권장하는 163개 수질검사항목을 통과하면서, 세계물박람회에서 ‘2010 아시아 물 산업혁신상’을 수상한 바 있고, 미국 환경보호청과 유엔에서도 품질과 물맛을 인정받는데 그치지 않는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광화문에서 시복식을 할 때도 어김없이 아리수는 당당하게 선을 뵀다.

그리고 다시금 5300억 원에 달하는 예산을 투입하여, 정수된 수돗물을 다시 오존과 숯으로 여과하는 고도의 정수처리시설공사까지 끝내고 있다. 마침내 국내 최대의 삼다수와의 경쟁이 아니라, 프랑스의 에비앙에 도전장을 내밀며, 세계시장에 수돗물도 판매할 수 있다는 신화를 서울의 ‘아리수’는 예고하고 있다. 최근 서울광장 앞에는 이러한 아리수를 표현한 조형물도 세워졌다.

대전의 물은 어디에 있나? 대청호가 수원지임은 다들 알고 있지만, 이츠 수는 영 아닌 것 같다. 이름 자체도 맘에 들지 않는다. 관계당국도 호감이 가지 않는건 마찬가진가 보다. 이츠 수 대신에 제주의 삼다수를 선호하는 걸 보면! 참으로 자존심을 물 말아 먹었는가? 더 늦기 전에 이름도 바꾸고, 수돗물에 대한 인식도 바꾸고, 시설개선도 획기적으로 꾀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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