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박태우]

 

박태우 | 고려대 교수, 대만국립정치대학 방문학자
우리나라가 인구가 5000만이 되다보니 사건사고가 연일 끊이지 않고 언론의 지면을 장식하고 있다. 과거와는 달리 조그마한 생활형 사건까지 언론의 보도 대상이 되어 마치 우리가 사고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문제는 많은 언론들이 우리나라의 기본적인 가치 체계 그리고 안보문제를 다루는 빈도와 비중은 상대적으로 떨어진다는 것이다. 하기야 필자도 최근에 공중파에 자주 출연하면서 시청률이 왜 언론사의 경영측면에서 중요한 지를 이해하게 되었다.

최소한 대한민국이 미국이나 일본, 유럽의 선진국이 아니지 않는가? 휴전으로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내일을 장담 못하는 시국이다. 0.1% 전쟁가능성 때문에 많은 국방비를 쓰면서 유비무환을 해야만 하는 게 우리의 자화상이다.

사회전체의 분위가가 물질만능주의와 개인주의, 그리고 형식주의, 흥행주의로 흐르면서 무겁고 깊이가 있는 의제를 선정하고 다루는 언론의 기능이 많이 얇아지고 있는 현실에서, 고적적인 딱딱한 주제로 국민들을 상대로 강의를 하는듯한 조의 프로들은 시청률이 매우 낮을 것이란 추측도 자연스럽게 하게 된다. 이러한 언론의 행태가 오래 지속되면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운 사회일지 모르지만 영혼이 말라서 배부른 돼지처럼 한 공동체의 격조가 떨어질 수도 있다는 걱정이 앞선다.

문제는 우리사회의 분위기가 계속 이런 식으로 가다보면 정작 값어치가 있는 정신세계에 대한 진단을 회피하면서 우리국민들의 영혼이 천박해지지 않을까 걱정이다. 그래서 종교가 필요하고 많은 문화예술정책의 궁극적인 목표가 있는 것이지만 분단국가의 시민으로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21세기의 범람하는 개인자유주의와 물질주의의 폐해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절실하게 든다. 이타주의가 마르고 이기주의가 범람하는 세태가 걱정이다.

이와 같은 사회분위기속에서 애국심을 이야기하고 국방에 대한 더 많은 관심을 이야기하면, 필자와 같은 사람을 ‘구닥다리’라고 폄하할지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한국의 안보를 걱정해 온 필자의 눈에는 지금 잘못되어가고 있는 우리사회의 분위기가 자주 느껴진다. 사실은 개인의 행복문제에 주된 관심을 보이는 지금의 세태에서 가장 기본적으로 개인의 행복추구권을 위태롭게 할 수 있는 징조이기도 한 것이다.

지난 1월 12일 대통령의 신년기자회견, 13일 야당대표의 신년기자회견, 14일 여당대표의 기자회견을 보면서 가장 먼저 필자를 당혹스럽게 한 것은 아직 사법적인 증거가 부족한 수준의 문고리3인방 관련 내용만이 회견내내 수 십 차례씩 언급되었다는 사실이다. 지금 우리의 안보를 옥조이고 있는 북한의 약 20기의 핵무기 보유추정을 비롯하여 북한의 핵무기가 점점 더 소형화되는 문제, 특전요원 군인의 수가 8만에서 20만으로 증가된 현실, 탄도미사일의 성능이 매우 향상된 점 등 대한민국 국민들의 행복추구권을 하루아침에 바꾸어 놓을 수 있는 문제들에 대해서 관심을 적절히 보이지 않는 정치지도자들의 행태에 분노마저 생겼다.

이 문제는 국방부가 나서서 국방백서를 내고 ‘대북 비(非)대칭전력의 불균형성’을 이야기 해서 될 일이 아니다. 이 나라의 최고통치권자부터 시작하여 이 나라의 책임이 있는 지도자들이 남북대화와는 별개로 지독한 안보현실주의로 무장하고 경계하고 조심할 우리의 생존이 달린 문제인 것이다. 경제는 안보가 굳건할 때 살아나고 보장되는 2차의 문제라는 것이다.

어찌 보면 지금 우리사회를 휩쓸고 있는 온 언론의 청와대를 향한 인적쇄신 열풍보다도 이 문제를 더 주요하게 다루는 언론과 정부의 태도가 더 요구되는 것이다. 대통령도 신년회견에서 경제는 42번 국민은 29 등 언급하면서 정작 안보는 언급횟수 7위안에도 들지 못했다는 현실인식이 큰 문제인 것이다.

필자가 이 문제를 한 공중파에 출연하여 답답한 맘으로 호소한 후, 그 다음부터 이 이야기를 하는 애국인사들을 볼 수가 있었다. 그들도 나와 같이 매우 답답한 심정으로 연두 기자회견정국의 결격사항을 걱정했으리란 생각을 해 보는 것이다. 대한민국이 이러면 안 되는 것이다. 영혼이 마르면 안 되는 것이다. 하기야 초중고생의 30%, 투표권을 가진 성인의 15%가 6.25를 북침으로 인지하고 있는 세상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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