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용 칼럼] 서대전역 경유 관련 윤장현 광주시장님에게

김학용 주필

윤장현 광주광역시장님을 비롯한 호남의 지도자분들께 호남고속철도 문제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대한민국의 많은 사람들은 광주와 호남에 대해 가슴 한 구석에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치적으로 남다른 고통을 겪으면서 소외된 처지가 있었고, 이 때문에 경제적으로도 손해를 본 때가 있었습니다. 어쩌면 지금도 그런 상태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부인하기 어려운 호남의 소외감

호남의 소외감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지금 KTX 서대전역 경유 문제에 대해 보이고 있는 호남 정치권의 반응에 대전시민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습니다. ‘광주가 정말 이런 곳인가? 호남이 정녕 이런 지역인가?’ 하는 생각에까지 이르고 있습니다.

호남선 KTX가 개통되면 우회 노선으로 전락하게 되는 서대전역은 호남의 요구대로라면 역사(驛舍) 기능을 완전히 상실할 수밖에 없습니다. 서대전역을 이용하던 연 300만 명의 피해가 예상됩니다. KTX의 일부는 서대전을 경유해야 한다는 게 이들과 대전시민들의 요청입니다.

호남선 KTX가 개통되면 운행 횟수가 상하행선 합해 현재 하루 62편에서 82편으로 늘어납니다. 이 가운데 18편(22%)을 서대전역으로 돌리는 게 건설교통부의 당초 계획이었던 것 같습니다. 5편 가운데 1편 꼴입니다. 1편은 ‘부분적 저속철’이 불가피하지만 4편 즉 80% 정도는 ‘완전한 고속철’입니다.

그런데도 호남의 일부 정치권에선 서대전역 경유가 호남선 KTX 전체를 ‘저속철’로 만드는 것처럼 말하고 있습니다. 윤장현 광주시장님을 비롯해서 호남권 정치인들이 잇따라 성명을 내면서 고속철이 저속철이 돼선 안 된다고 외치고 있습니다. 지나친 과장이고 호도입니다.

99섬 만족 않고 1섬도 양보 못하겠다는 건가요?

서대전역경유추진위원회는 “호남은 단 한 회(편)도 서대전을 경유해선 안 된다고 주장한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사실이면 귀가 의심스러운 요구입니다. 5편 중 1편도 안 된다는 주장은 참으로 모진 말입니다. 99섬 가진 사람이 나머지 1섬도 양보하지 못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22% 정도를 서대전역으로 돌린다 해도 호남은 22%를 잃는 게 아닙니다. 서대전 경유 노선을 통해 지금처럼 광주에서 대전과 논산을 쉽게 오갈 수 있습니다. KTX 개통에도 불구하고 광주와 대전은 멀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만일 ‘우회노선 할인요금제’ 같은 게 가능하다면 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광주~서대전~서울 노선을 이용하는 고객도 있을 것입니다. 호남이 22% 양보해도 호남이 잃는 것은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서대전역 경유가 배제되면 서대전역 이용승객이 겪는 불편은 아주 큽니다. 이들이 잃게 되는 교통 편익은 22%가 아니라 100%입니다. 교통부의 ‘22% 안(案)’을 기준 삼는다 해도 8대 2의 문제가 아니라 99섬 대 1섬의 문제입니다. 호남에겐 만족도를 99에서 100으로 높이는 것에 불과하지만 서대전역 이용객에겐 100이 모두 사라지는 것과 같은 문제입니다.

나의 ‘완전한 100% 만족’을 위해 연간 300만 명이나 되는 다른 사람의 ‘커다란 불편’은 아랑곳하지 않겠다는 말 아닙니까? 호남 인심이 그리 야박합니까? 저는 호남 정치권 일부에서 나오는 반대 성명이 호남 주민들의 민심을 제대로 반영한 것으로 보지 않습니다. 호남인이 어찌 99섬을 가지고 1섬까지 탐하는 사람들이겠습니까?

나만 좋자고 나머지 1섬까지 요구하는 사람들이겠습니까? 호남 정치권은 왜 호남인을 그렇게 만들려 합니까? 호남 정치권 일부에서 이어지는 서대전역 경유 반대운동은 호남인들을 욕되게 하는 행동입니다. 호남 정치권은 지역 민심을 제대로 파악해야 합니다. 서대전역 경유를 반대하는 충북의 일부 정치인들도 그 점에선 다르지 않습니다.

서대전 경유 반대는 대전-광주 관계 끊자는 말

고속철도는 이제 필수적인 광역 교통수단입니다. 서대전역 경유 반대는 광주와 대전의 관계를 끊자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두 지역 사이에 그럴 이유가 없습니다. 대전에는 호남을 연고지로 둔 사람들이 30%에 가깝다고 합니다. 이들에겐 앞으로도 호남과 대전을 쉽게 오갈 수 있는 KTX가 필요합니다.

서대전역 경유 반대는 이들의 불편함을 아랑곳하지 않겠다는 말입니다. 고향 사람들까지 저버릴 이유가 있습니까? 호남인들이 그런 요구를 할 까닭이 없습니다. 호남과 충청, 두 지역이 담을 쌓고 지내듯 할 이유가 없습니다. 대전과 광주는 만일 철도가 없다면 새로 놓고서라도 왕래해야 할 이웃입니다. 이미 철도가 나 있고 운행 중인데 이를 아예  없애자는 주장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서대전역 경유 비율을 어느 정도로 하는 게 바람직한가에 대해선 따져볼 일입니다. 호남~서울 승객에겐 ‘고속철의 편리성’을 너무 떨어뜨려선 안 되고, 서대전역이나 계룡 논산 승객에게만 불편을 요구하는 방식도 안됩니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한 답은 이미 나와 있다고 봅니다.

공짜 KTX가 아니라면 기본적으론 ‘승객 수요’에 맞춰 운행하는 게 정상입니다. 적절한 비율은 광주시 전북 대전시 충남도 국토교통부 등 관련 기관이 함께 모여 계산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권선택 대전시장님이 제안한 시도지사 연석회의에서 출발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호남 소외 고립 자초하는 ‘서대전역 배제’

말씀 드렸듯이 서대전역 이용자는 연간 300만 명입니다. 호남선 역 가운데 2번째로 많은 숫자입니다. 이런 역을 통과하지 말라는 것은 억지입니다. 호남선이 텅 빈 상태로 운행해서 생기는 적자는 누가 메울 겁니까? 서대전역에서 얻을 수 있는 비용만큼은 호남 책임입니다. 이용 만족도는 100%로 누리면서 비용은 나몰라라 하시렵니까?

호남 정치권의 주장을 이해하는 측면이 없지는 않습니다. 윤장현 시장님이 그제 KBS 라디오와 인터뷰한 내용을 봤습니다. 서대전역 경유에 왜 반대하느냐는 사회자 질문에 윤 시장님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호남고속철은 경부고속철에 비해서 굉장히 늦게 착공됐습니다. 그래서 호남인들의 소외라고 할까, 상징적인 비 내리는 호남선이라는 눈물이 있습니다.”

맞습니다. 이 문제엔 호남인의 소외와 박탈감 같은 게 깔려 있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서대전역 경유 배제는 더욱 안 될 일입니다. 서대전역 경유 반대는 이웃 지역과 거리를 두는 일로, 호남의 소외와 고립을 더욱 자초하는 일입니다. 

무엇보다 호남을 1섬까지 탐하는 99섬의 소유자처럼 만들 수는 없습니다. 호남 정치인으로서 고향을 욕되게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저는 서대전역 경유 반대가 호남의 민심이라고 보지 않습니다. 호남이 그렇게 염치없는 고장입니까? 절대 그럴 리 없습니다. 윤장현 시장님을 비롯한 호남 정치권 인사들은 이 점을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대전에서 <디트뉴스 24> 김학용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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