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범 기고]이해찬과 이완구의 언론관

한승범 | 맥신코리아 대표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지난 달 26일 CBS라디오 <박재홍의 뉴스쇼>에서 “국민통합을 하려면 야당하고 안면이 있는 그런 사람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반대쪽 50% 국민을 포용할 수 있는 그런 인물이 있어야 한다”며 “그런 관점에서 보면 당연히 호남 인사를 (국무총리로) 발탁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 대표는 이어 “이완구 총리 내정자는 말하자면 또 다시 예스맨이지 않냐?”고 말한 뒤 “저는 국민통합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아주 의문스럽다”고 발언했다. 이 발언으로 문제가 불거지자 문 대표는 다음날인 27일 “이완구 후보자가 충청 출신이라는 점을 문제 삼고 흠을 잡은 것이 아니다”며 “만약 제 발언으로 충청분들에게 서운함을 드렸다면 송구스럽다”고 사과했다.

순항하리라 예상됐던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는 지난달 27일 4명의 일간지 기자와의 점심식사 중 행한 발언으로 커다란 곤혹을 치루고 있다. 이 후보자가 일부 언론사 간부와 친분을 과시하며 인사에도 개입할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이 담긴 녹취록이 지난 6일 KBS를 통해 공개됐기 때문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이완구 후보자의 언론통제 및 개입의혹을 연일 제기하며 이 후보자의 낙마를 주장하고 있다. 한국일보 기자가 제작한 녹취록은 김경협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실 관계자를 통해 KBS에 전달됐다.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참여정부에서 제36대 대한민국 국무총리직(2004.06~2006.03)을 수행한 새정치민주연합 이해찬 의원의 언론관은 어떠했는가?

2004년 10월 18일 이해찬 국무총리는 베를린 주재 한국 특파원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역사의 반역자”라며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은 용납할 수 있어도 조선일보의 행태는 용납하지 않는다”고 두 신문을 직설적으로 비판했다. 이 총리는 “참여정부는 이러한 행위를 절대로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노무현 대통령이나 나나 정권을 농락하려 하는 조선과 동아에 끝까지 맞설 것”이라고 말했다. 심지어 “조선·동아는 더 이상 까불지 말라”는 표현까지 썼다.

이해찬 국무총리는 열흘 뒤인 2004년 10월 28일 국회 본회의에서 유럽 순방 중 조선·동아일보를 “역사의 반역자”라고 비난한 발언에 대해 “평소 느낀 것을 말한 것으로 책임질 사안이 없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의 ‘언론통제 및 개입의혹’과 이해찬 전 국무총리의 ‘조선·동아일보 역사의 반역자’ 발언을 단순 비교해보자. 국민들은 새정치민주연합이 이완구 후보자에게 돌을 던질 자격이 있는가?

주지하다시피 충청도는 국민의 정부(제15대 김대중 대통령)와 참여정부(제16대 노무현 대통령)가 탄생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특히 1997년 DJP연합으로 충청권의 맹주인 김종필 신민주공화당 총재의 지지를 받은 김대중 후보가 대전, 충남, 충북에서 압도적인 차이로 이회창 후보에 이겼다. 충청표가 김대중 정부 탄생의 일등공신이 된 것은 불문가지다.

2002년 대선에서도 충청권은 노무현 후보의 손을 들어줬고, 진보정권 10년 집권에 일조를 했다. 또한 2012년 18대 대선에서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는 충청권에서 40%가 넘는 득표율을 보였다. 특히 대전지역에서는 문 후보가 49.7%의 높은 득표율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와는 불과 0.3%의 차이밖에 없었다. 하지만 18대 대선 투표지에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호남총리’를 말한 것이다.

호남 정치인과 시민단체들은 호남선 KTX의 서대전역 경유를 강력 반대하여 끝내 관철시켰다. KTX의 속도가 떨어진다고 단 한 대의 KTX 열차도 서대전역을 경유하지 못하게 하라는 호남의 주장을 들으며 충청인의 자존감이 크게 훼손되었다. 대전이 무슨 ‘역병이 도는’ 지역이라도 되는가?

또한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는 충남도지사 출신으로 충청인의 사랑과 존경을 받고 있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럼에도 지난 대선에서 충청권에서 적지 않은 득표를 했던 문재인 대표의 ‘호남총리’에 또 다시 충청인의 자존심에 커다란 상처를 받았다. 얼마 전 김종필 전 총리는 “국민이 호랑이다. 국민은 간단하게 뜨거워지고 간단하게 차가워진다”란 촌철살인을 날렸다. 새정치민주연합이 새겨들어야할 대목이다.

충청인들도 이번 일련의 사태를 겪고 대오각성을 해야 할 것이다. 충청도가 선거 때만 찾는 철새 서식지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충청도부터 대동단결해서 ‘충청인 정치인’을 사랑하고 아껴야 한다. 스스로 지키지 못하는 존엄은 그 누구도 지켜주지 않기 때문이다. ‘충청도 핫바지론’이 이제 지겹지도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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