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태 칼럼]

“낙망은 청년의 죽음이요, 청년이 죽으면 민족이 죽는다”는 도산 안창호 선생의 말이 떠오른다. 그리고 이 말처럼 우리 시대를 표현할 수 있는 더 정확한 말을 찾을 수 없다. 낙망, 그리고 청년의 죽음 -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미래가 어둡게 보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제는 그 어둠이 깊어 미래를 볼 수 없게 되었다. 현실 문제에 급급한 나머지 미래에 대비하기는커녕 생각할 수조차 없게 된 것이다.

죽어가는 우리의 미래 청년들
전 대전지방변호사회장
그래서 우리의 미래인 청년들이 죽어가는 것이다. 그들의 절규가 들린다. “학자금 대출을 못 갚아 신용불량자가 된 ‘청년실신’” “좁은 취업문에 장기간 미취업자인 ‘장미족’” “31살까지 취직 못하면 취업길이 막혀 ‘삼일절’” 청년들의 사망원인 첫 번째, 자살 - 이에 이르러 우리는 할 말을 잊는다.

어떻게 이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 것일까? 더욱이나 청년실업에 대한 연일 보도내용은 우리를 절망하게 한다. ‘청년실업률 최고치 경신’ ‘청년층 실업률 9.2%, 체감실업률 21.8%’ ‘공식실업자 39만 명, 잠재경제활동인구 포함 107만 명’ 이러한 수치들은 지금 우리의 모습이지만 이를 극복하기 위한 각고의 노력이 없다면 점점 이 수치가 높아가고 결국 우리의 힘으로 넘어설 수 없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게 될 것이다.

정부관계자나 정책입안자들은 우리나라의 경우 실업률이 다른 나라에 비하여 낮고 청년실업률 역시 그다지 높은 편이 아니라며 자신들도 열심히 청년실업 해소를 위하여 노력하고 있으니 기다려달라는 말로 우리를 위로하려 든다. 그러나 이처럼 가벼운 시각 때문에 실업 이라는 병이 더욱 깊어가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실업은 경제의 구조적인 문제에서 연유하였으며 이러한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절대로 청년실업을 해소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하는데도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경제구조적인 면에서의 변화는 또한 그만큼 어렵다는 의미에서 위정자들은 현실성이 없다고 이를 무시하려 드는 경향이 있다. 분명 이들은 이러한 사실을 알면서도 고개를 돌려 먼 산만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하는 정책이란 기왕의 제도를 그대로 놓아둔 채 임시방편적으로 일자리만 늘리려다 보니 일시적인 효과, 이른바 ‘링거주사효과’에 머무르고 있다는 것이다. 청년실업의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일까?

실업률 증가의 원인 4가지

일반적으로 실업률 증가의 원인으로 들고 있는 예로 첫 번째가 바로 과학기술의 발달이 가져온 기술이 사람들의 일자리를 빼앗았다는 것과, 두 번째로 경제구조가 고도화되면서 임금과 지가가 상승하였고 이에 따라 제조업체들이 임금이 저렴한 해외로 이전하는 바람에 많은 일자리가 사라졌다는 것, 세 번째로 현재의 경제사정을 말하는 것으로 경제침체기에 이르러 경기불황이 계속되면서 기업으로서는 새로운 투자를 꺼려 일자리가 늘어나지 않고 오히려 줄이려고 하는데 그 원인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네 번째로 들고 있는 것이 바로 청년실업에 관련된 것으로 우리나라의 경우 고학력으로 인한 인력수급의 불균형과 청년들의 3D산업 기피를 들고 있다. 그러나 앞의 두 가지의 원인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이라고 하더라도 세 번째 원인 경기침체에 관하여는 우리의 진지한 노력으로 바꿀 수 있으며 우리에게 그만한 충분한 역량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노력으로 극복한 다른 나라의 예, 예컨대 최근의 아이슬란드나 1980년대 네덜란드의 경우 경기침체나 실업문제를 합의에 의한 제도개선을 통하여 해결한 예를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청년실업의 원인이라고 하는 네 번째의 것으로 이는 전혀 잘못된 것이며 실업원인에 대한 우리사회의 심각한 왜곡을 보여주는 예라는 생각이 든다.

바로 얼마 전 대표적인 3D업종인 환경미화원을 공채하는데 몰려온 많은 사람들의 면면에서 알 수 있지 않았는가? 고학력자가 환경미화원을 택한 이유가 우리사회의 힘들고 어두운 곳을 밝혀 보겠다는 고결한 생각으로 선택한 것으로 보이는가? 청년실업의 원인을 고학력이라든지 3D업종의 기피로 보는 것은 분명 잘못된 것이다.

일할 사람 못 구한다는 중소기업체들

물론 실제 현실에 있어서는 중소기업체 사장들은 자신들의 공장에서 일할 사람이 없다고 아우성친다. 그래서 사장님들은 우리 청년들이 눈높이를 조금만 낮추면 얼마든지 일자리가 있다고 강변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이 정당할까? 외국인과 같이 값싼 임금을 받으며 노동을 하면서 살라고? 외국인 노동자는 몇 년 고생하여 모은 돈으로 자기 나라에 돌아가면 수준 높은 생활이 보장되는 임금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기초생활을 겨우 면하는 정도의 빈곤한 생활을 면치 못하는 임금인데 청년들에게 이처럼 값싼 임금에 만족해라? 이것은 누가 보아도 무책임한 주장인 것이다.

누가 어떠한 권리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젊은이들에게 평생 빈곤 속에서 살도록 요구할 수 있단 말인가? 어떤 경제학자들은 이렇게 표현한다. “청년실업문제는 단순히 일자리가 없다기보다는 정규직과 같은 양질의 일자리가 생산되지 못하고 있는 구조 때문이며 더 나은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취업준비자로 남는 청년들이 많아 실업률이 또한 높아진 것이다.” 이렇게 강 건너 불 보듯 청년실업을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파악하는 경제학자 양반들이나 정책입안자들에게 청년실업의 문제의 해결방법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여기에서 우리는 사회의 잘못된 시각 그리고 그 시각으로 인한 청년들의 절망을 본다. 우리사회는 말한다. 기업이 있어야 임금을 받을 수 있고 기업이 있어야 경제생활이 윤택해지고 그래서 기업이 있어야 우리 모두가 행복해지게 된다고. 그래서 우리사회나 정부는 기업이 어려우면 모두 해결해 주어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심지어 대통령까지도. 우선 기업이 살아나야 한다.

그렇기 위해서는 기업하기 편한 나라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각 지방자치단체들은 고속도로변 대형광고판에 우리 시와 도는 기업하기 편한 곳임을 앞 다투어 강조한다. 기업들이 임금이 너무 높아 장사 못하겠다고 떼를 쓰면 아무 때나 어느 곳에서나 비정규직을 채용할 수 있도록 인정해 주고 그것도 모자라 값싼 노임의 외국인을 제한 없이 들여와 채용하도록 한다.

환율이 낮아 해외에서 장사하기 어렵다고 불평하면 환율을 높여주고 세금이 많아서 장사 못하겠다고 죽는 소리를 하면 세금도 낮추어주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을 어떤 분은 이렇게 비유했다. “이는 마치 자녀를 온실 속의 화초처럼 키우면서 아이를 망치는 부모와 같다”고.

고용 없는 성장

이러한 기업의 과보호는 결국 경쟁력 없는 기업으로 키울 뿐 우리의 미래경제를 망치는 것이다. 우리나라 실업원인은 바로 이러한 기업의 과보호에 있다고 주장한다면 잘못된 것일까? 그러나 분명한 것은 1998년 IMF이후 2014년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의 경제는 ‘고용 없는 성장’ ‘임금 없는 성장’으로 표현되고 있는데 바로 이것이 잘못된 주장이 아님을 보여주는 표현인 것이다.

이 뜻은 많은 기업들은 경제성장과정에서 많은 혜택을 받았지만 근로자들은 종전의 임금수준에 머물러 전혀 생활이 나아지지 않았고 오히려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후퇴하였으며 심지어 이제는 경기침체로 인한 실업문제까지 떠안게 되었다는 의미인 것이다. 그러나 더욱 큰 문제는 사회에서의 인식이 청년실업에 대하여 외부적인 막연한 원인, 사람들이 해결하기 어려운, 어쩔 수 없는 이유 때문이라고 몰고 가고 있다는 점이다.

과학발달, 경기침체, 고임금 등등. 그러나 사실은 문제의 원인은 바로 우리 자신에게 있으며 그래서 그 해결방법도 우리 자신에게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 우리나라의 경제침체는 어디에서 왔는가?

원래 경기침체는 역사적으로 볼 때에 사회적 부에 대한 편중과 양극화, 즉 분배의 실패에서 왔다는 사실이다. 1929년의 대공황도, 2008년의 금융위기도 역시 이러한 부의 분배의 실패에서 왔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에 계속적인 경제성장을 이루면서도 일반사람들이 실업이나 경제적인 어려움을 느끼고 있는 것은 바로 기업에 대한 과보호에 따른 양극화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이다.

더 나아가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화두가 된 불평등의 문제 역시 신자유주의 경제, 즉 부유층과 기업에 대한 과보호에서 왔다고 하는 것이다. 따라서 기업에 대한 근본적인 시각전환이야말로 실업의 첫 번째 해결방법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기업을 혁신하는 것은 어렵다. 이미 그들은 모든 기득권을 가지고 있고 경제력을 바탕으로 말하는 입을 장악하고 있는 만큼 이를 봉할 수도 있을 뿐 아니라 사람들의 생각을 바꿀 수 있는 힘도 있는 것이다.

대기업과 재벌의 잘못 말할 때 왔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실은 알려져야 하고 알려질 것이라고 확신한다. 우리는 아직도 기업의 잘못, 특히 대기업과 재벌의 잘못을 그다지 크게 부각하지 못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들이 처분권자였고 이른바 우리사회의 “갑”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말해야 하고 그들에게 그들의 생각을 바꿀 때가 왔다는 것을 알려주어야 한다.

이제 기업도 눈을 뜨고 이 세상이 왜 어려운지, 그들의 책임이 무엇인지 자각할 때가 온 것이다. 지금까지의 급속한 성장 속에서 누가 희생하였으며 누가 혜택을 보았는지 분명히 알아야 한다. 이를 통하여 기업의 존재가치는 바로 기업을 위해 노력하는 근로자에게 있고 이들 근로자의 생활향상이 바로 기업 자신의 이익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우리 경제에 있어서 마찬가지로 새로운 도약을 위해서는 기업과 근로자와 함께 - 이때에 정부의 중재적인 역할이 물론 필요하다. - 머리를 맞대고 무엇이 우리경제에 있어서 문제이며 이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양보할 것이 무엇이며 정부가 도와줄 것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찾으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기업, 근로자, 정부의 3자의 합의가 이루어져 이를 수용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다. 그리고 정부는 이처럼 합의된 내용을 강력하게 실행하고 모든 사람이 이를 따르려고 노력할 때에 우리나라의 힘들고 어려운 경제문제는 풀 수 있을 것이며 바로 청년실업 역시 그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네덜란드가 1980년대의 경제가 고임금, 고실업, 고복지의 악순환으로 빠졌을 때에 기업, 근로자, 정부의 3자 간에 2년이라는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진지한 토론과 협상을 통하여 바세나르협약을 만들고 이를 실행함으로서 새로운 도약의 경제를 마련했다.

기업과 근로자는 서로가 서로에게 적으로 여기지 말아야 하며 함께 경제문제를 해결해야 할 동반자적 관계로 인식하고 이에 따라 당면한 경제문제, 고용, 임금, 복지 더 나아가 실업문제까지 함께 문제를 풀어나가려고 노력할 때에 우리는 분명히 어려운 경제에 있어서 해결의 실마리를 풀 수 있고 청년실업의 문제도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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