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용 칼럼] 말과 행동 너무 다른 안희정 소통

다음은 안희정 지사가 3월 8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안희정 (아침 단상)

수많은 비판, 충고, 훈계, 지적들을 접하면서 스스로에게 늘 하는 말입니다

1. 미움과 분노의 감정에 머무르지 말자
미움과 불신, 분노로 가득차있다면 그 감정을 중립지대로 끌어내려 놓아야 한다. 편견과 선입견은 미움과 불신으로부터 오기 때문이다. 편견과 선입견으로는 문제의 본질에 들어갈 수 없다.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가서는 좋은 투수도, 좋은 복서도 될 수 없는 것과 같다.
세월과 지식은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보는 것에 오히려 방해가 되곤 한다. 미움과 분노를 절제된 논리로 꾸미는 일에 경륜과 지식이 사용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언행이 미움과 분노와 불신으로 휩싸여 있는지 아닌지는 어두운 밤에 횃불처럼 분명할 뿐이다.
미움과 분노로 출발한 비판, 지적, 훈계, 충고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

2. 안티테제-반대에 머무르지 말자
상대에게 상처를 주면 그만이고 그것이 나의 목표라고 노골적으로 말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원수를 갚기 위해 평생 절치부심한 사람은 그 원수를 죽음으로 복수해도 결국 그 원수가 자신 안에 들어와 버림을 어찌 할 것인가.
지난 이십세기의 반제국주의 민족해방투쟁이 제국주의 침략자와 닮아갔고 반독재 민주화투쟁이 결국 독재자와 닮아갔음을 기억하자.
반대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다. 반대는 결국 지겟다리 걷어차면 지게가 넘어지는 것처럼 함께 망하는 길이다.

3. 모든 것을 선한 의지로 받아들이자
첫번째 그래야 사물이 더 잘보인다.
두번째 그래야 좋은 대화를 할 수 있다.
세번째 그래야 좋은 대안을 만들 수 있다.
네번째 그래야 자신이 행복해질 수 있다.
다섯번째 그래야 세상이 바뀐다.


김학용 주필
안희정 “미움과 분노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

비판 가운데는 비판보다 비방이 목적인 경우도 많다. 이런 비판은 오히려 역효과를 낸다. “미움과 분노로 출발한 비판, 지적, 훈계, 충고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안 지사의 말은 옳다. 이 말은 자신에게 한 말이면서, 동시에 자신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도 한 말로 보인다. 언론이 나를 미워하여 비판하더라도 자신은 미움의 감정에 사로잡히지 않겠다는 말이다.

그는 나아가 “모든 것을 선한 의지로 받아들이자”고 다짐한다. 그래야 좋은 대화를 할 수 있고 세상이 바뀐다고도 했다. 좋은 말이고 대인(大人)다운 자세다. 범인들이 배울 점이다. 이글을 읽는 페이스북 독자들은 “역시 안희정!”이라고 칭찬을 연발할 것이다. 언론이 감정적으로 공격하는 데도 이렇게 의연하게 대처하는구나 하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 충남도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보면 안 지사의 행동은 그의 말과는 거리가 멀다. 충남도공무원노조는 도지사와 대화하는 자리를 절실히 원하고 있으나 안 지사가 만나주지 않아 속을 태우고 있다. <디트뉴스>는 얼마 전 이런 내용을 전한 바 있다. 누구보다 소통과 대화를 강조하는 안 지사에겐 너무 어울리지 않는 태도임을 지적하는 ‘비판’이었다.

말과 행동이 다른 ‘안희정의 소통’

많은 도공무원들이 이 기사를 읽었다는 얘기도 들렸다. 안 지사도 최소한 기사의 대강은 전해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안 지사는 아직까지 노조에 일체 반응이 없다고 한다. 보통의 도지사 같으면 노조를 달래는 조치를 취하든 해명을 하든 했겠지만 안 지사는 꿈쩍도 안하고 있다. 안 지사는 자신의 말처럼 (자신의 비판에 대해서도) ‘미움의 감정을 끌어내려 중립지대에 옮겨놓을 수 있는’ 사람 같다.

하지만 ‘모든 것을 선한 의지로 받아들이자’는 안 지사의 다짐은 말뿐이다. 노조가 겪는 어려움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안 지사는 어떤 비판에도 의연하게 대처하는 훌륭한 대통령감이다. 그러나 노조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의 불통을 여러 사람들에게 숨기는 포장술이다.

사례 한 두 건만 가지고 ‘불통 도지사’로 낙인찍어선 안 되지만, 특정 사례는 전체를 말해주는 데 충분할 수도 있다. 노조와의 관계는 도지사의 소통능력을 알아볼 수 있는 결정적인 소재다. 시도지사의 경우 소통을 가장 잘해야 할 기관이 지방의회(도의회)와 공무원노조다. 이 두 곳은 도지사로선 가장 껄끄러운 대상이기도 하다.

안 지사, 소통 가장 필요한 두 곳과는 심각한 불통

그런데 안 지사에겐 이 두 곳이 다 막혀 있다. 지난 임기 내내 안 지사는 도의회와의 불통 때문에 애를 먹었다. 처음엔, 여소야대 구조에서 다수당 도의원들의 억지가 너무 심해서 빚어지는 일로만 보였다. 도의원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안 지사가 도의회를 대하는 태도도 큰 문제였다. 갈등 사안이 생겼을 때 심대평 이완구 등 전임 지사들은 도의회를 달랬으나 안 지사는 그냥 방치해두고 마는 식이었다. 이 때문에 도지사 자신이 제출한 조례가 임기 말까지 낮잠을 자는 경우도 있었다.

가정에 비유하면 도지사에게 지방의회와 노조는 처자식에 해당될 수 있다. 집안에서조차 대화가 안 되는 가장이 누구와 소통할 수 있겠는가? 그런 가장이 밖에서 하는 말과 행동은 아무리 멋지고 그럴싸해도 진짜가 아니다. 

비판과 충고는 과거 선비들의 직언이고 직간이다. 직언을 하다 쫓겨난 사람들이 적지 않았고, 목숨을 잃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선비들의 직간이 어찌 임금을 미워하고 분노하게 하고자 함이었겠는가? 직간과 충고 자체가 임금을 거스르기 쉽기 때문이다.

직언과 비판을 좋아할 사람은 없다. 임금이나 도백(道伯 도지사)처럼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은 더 그렇다. 아랫사람들의 직언이 남발되도록 하면 자신의 위신이 깎이지만 생각이 있는 군주라면 직언을 무조건 외면할 수도 없다. 무조건 틀어막으면 언로가 막혀 결국 나라는 물론 군주 자신까지 위험해진다는 것을 안다.

안지사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

감정적 비판 안되지만 ‘감정의 출발점’은 구분돼야

여기에 비판에 대한 군주의 고민이 있다. 어떤 군주는 체면이 깎이지 않으면서 직언의 효과를 내는 방법을 찾기도 하였다. 북위 때 고윤이란 신하는 많은 사람이 있는 장소에선 황제에게 의견을 올리지 않았다. 마키아벨리는 현명한 인물 몇 명을 고른 뒤 솔직히 진실을 털어놔도 기분나빠하지 않겠다는 보장을 해주고 군주가 묻는 일에 대해서만 말하게 하고 자발적인 발언은 못하게 해야 한다는 아이디어를 냈다.

설마 안 지사가 이런 식의 비판만 수용하겠다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안 지사가 문제삼는 것은 감정적 비판이나 충고로 포장된 비난이다. 당연하고 지당한 말이다. 누구라도 감정적으로 비판해선 안 된다. 그런 비판까지 수용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감정의 출발점이 어딘지는 따져야 한다. 가령, 충남도로부터 광고를 받지 못한 언론사나 도지사에게 일자리 부탁을 거절당한 쪽에서 하는 비판인지, 정말 도지사의 말과 행동을 이해할 수 없어서 하는 비판인지는 구분돼야 한다. 후자라면 공분(公憤)에서 비롯된 정당한 비판이고, 반드시 필요한 비판이다. 과거 제대로 된 선비들의 직언과 상소문은 이런 공분에서 나왔다. 나라가 엉망인데도 군주가 정사를 돌보지 않고 엉뚱한 짓을 한다면 어찌 미워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어찌 침묵할 수 있었겠는가?

황해경제구역이나 안면도국제관광단지사업 같은 대형 사업이 잇따라 좌초되면서 도민들의 한숨이 깊어지고 정부 평가에서 충남도가 꼴찌 단골 신세가 되어가는 데도 도지사가 자꾸 외부강의나 다니면서 본인의 이미지 홍보에만 신경을 쓴다면 미움을 받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 말로는 대화를 외치면서 한번 만나달라는 공무원노조의 부탁조차 줄곧 외면하는 도지사를 어떻게 신뢰할 수 있는가?

미움과 분노는 소통 장애 요소지만 ‘멸시’는 민주주의 위험 요소

사람들은 도지사의 외부 강의가 진정 도정을 위한 것인지, 도지사 본인의 이미지 홍보를 위한 것인지 어둠속의 횃불처럼 훤히 알고 있다. 도지사가 노조를 안 만나주는 것이 시간이 없어서인지 마음이 없어서인지 노조는 훤히 알고 있다. 

충남도노조에 대한 안 지사의 태도는 유약한 노조에 대한 무시고 멸시다. 지사가 만나주지 않아 속을 끓이면서도 “공무원으로서 차마 피케팅(시위)은 못 하겠다”는 ‘착한 노조’다. 도지사가 무엇 때문에 이런 노조를 그런 식으로 대하는지 모르겠다. 

안 지사가 대권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지금 노조에 대해 보이고 있는 태도는 정말 심각하고 중대한 문제다. 미움과 불신은 소통의 장애 요소지만, 멸시는 민주주의 위험 요소다. 무엇보다 멸시는 소통의 문제를 떠나 인간 기본의 문제다. 갈수록 안 지사의 소통능력에 대해 의문이 든다.

안 지사는 진정으로 소통노력을 해야 한다. 사람들은, 안 지사가 페이스북에 띄우는 멋진 글과 좋은 말은 소통이 아니라 홍보라는 걸 알고 있다. 대학 강의실이 아니라 도정의 현장을 누벼야 실력을 쌓을 수 있고 더 큰 일도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안 지사는 자꾸 거꾸로만 가고 있다.

미움과 불신에서 출발하는 비판과 충고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도지사의 말은 맞다. 어떤 비판을 수용하든 말든 안 지사 본인의 마음이다. 그러나 소통을 거부하며 자주 미움과 불신의 대상이 되고 상대를 멸시하는 정치인에겐 미래가 없다는 점도 알아야 한다. 


*작은 글 한 편으로 사람을 재단할 수 없지만 때론 단어 하나가 작자의 생각을 결정적으로 말해준다. 안 지사의 (아침단상)은 ‘소통’에 대한 안 지사의 기본 시각을 보여준다. 걱정스런 바가 커서 한 편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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