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트의 눈] 성남중학교 교명변경 논란

어른들의 ‘향수(鄕愁)’가 아이들의 ‘민주주의’를 꺾어 버렸다. 세종시에서 그런 일이 벌어졌다. 행정중심복합도시(이하 행복도시) 한 복판, 정부세종청사 인근에 있는 성남중학교 이름 때문이다.

성남중학교는 본래 행복도시 토지수용 과정인 2009년 폐교된 학교다. 그런데 모교의 폐교를 지켜봐야 했던 졸업생들의 상실감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컸던 모양이다.

당시 행복도시건설청과 교육청 등 4개 기관은 협약을 통해 ‘이후 신설되는 중학교 한 곳의 이름을 성남중학교로 정하겠다’는 약속을 하기에 이른다. 졸업생들의 상실감을 어루만지기 위한 조치였다.

5년이 흐른 뒤 그 약속은 지켜졌다. 역사 속으로 사라졌던 ‘성남중학교’ 이름이 신설학교를 통해 다시 부활한 것이다.

그런데 신설학교 구성원들은 ‘성남중학교’라는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신설학교인 만큼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가고 싶은 욕구가 컸다.

신설 공립학교가 옛 연기군 시절 폐교된 학교이름을 이어받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 사학재단이 운영하는 이웃 성남고등학교와 같은 울타리에 있는 것처럼 비쳐지는 것도 싫었다.

이웃 중학교들은 신입생이 넘쳐 과밀학급을 고민하는데, 유독 성남중학교만 학생부족을 걱정하게 된 것도 교명 문제가 한몫 했다는 피해의식도 생겼다. 올해 신입생은 단 19명뿐이었다.

학교구성원들은 교명변경을 서둘렀다. 학교운영위원회를 통해 절차적 정당성도 확보해 나갔다. 그리고 새 이름을 어진중학교로 정했다. ‘어진동’이란 이름을 따른 것이다.

이 과정에서 진통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옛 성남중학교 총동문회가 크게 반발했다. 이들은 세종교육청을 상대로 ‘교명변경이 엄연한 약속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교육청은 현 교육공동체가 정당한 절차를 밟아 추진한 교명변경을 거부할 마땅한 이유를 찾지 못했다. 교명변경계획을 담은 조례 개정안을 발의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교육청 조례안을 접한 세종시의회의 고심도 컸다. 소관 상임위원회인 교육위원회는 이해당사자의 의견을 경청하고 내부적으로 격론도 주고받았지만, 결국 학생과 학부모들의 손을 들어주기로 결정했다. 어찌됐든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한 안건인데다 현재 학교를 구성하고 있는 교육공동체의 의견을 존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조례안은 ‘시의회 본회의 통과’라는 마지막 관문만 기다리게 됐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했던 복병이 나타났다. 임상전 세종시의회 의장이 ‘상정보류’라는 웬만해서 목격하기 힘든 직권을 발동했다. 임 의장은 의원들에게 ‘갈등봉합을 위해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취지의 양해를 구했다고 한다.

이번엔 현 성남중학교 구성원들이 발끈했다. 법률적 권한을 지닌 학교운영의 주체가 정당한 절차를 거쳐 의견을 수렴하고, 교육청이 이를 수용했으며, 시의회 상임위원회가 통과시킨 조례안을 의장 단 한사람이 가로막은 것에 대해 분노를 표시하는 학부모가 한 둘이 아니다.

임 의장의 예상과 달리 이번 조례안 상정보류 결정이 오히려 논란을 증폭시키고 이해당사자간 갈등의 골만 더욱 키울 공산도 크다. 옛 총동문회는 교명변경 조례안을 아예 백지화시키기 위해 압박의 강도를 더욱 높일 것이고, 현 성남중 교육공동체 또한 다양한 방법으로 조례안 통과를 촉구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칠순을 훌쩍 넘긴 지역정치권의 원로가 ‘재선’을 염두에 두고 압력단체의 눈치를 살폈다고 보지는 않는다. 다만 임 의장이 한 가지 사실은 간과한 것 같다.

어른들끼리의 다툼이 아니었다. 학교이름을 바꾸는 과정에 아이들이 직접 참여했다. 일각에서 교사와 학부모들이 뒤에서 아이들을 배후조종했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어불성설이다. 요즘 중학생들이 조종한다고 조종당하는 존재들인가. 아마 교사와 학부모들이 가장 잘 알 것이다.

달리 이야기하면, 이번 교명변경 논란은 아이들에게 민주주의에서 참여의 가치, 절차적 정당성이 왜 중요한가에 대한 의미, 교육청과 시의회의 역할과 기능까지 한꺼번에 가르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그런데 이 ‘좋은 기회’를 놓쳐버렸다. 아이들은 많은 의문을 품게 될 것이다. 어른들에 대한 여러 가지 오해도 쌓아가게 될 것이다. 특히 민주주의에 대해 회의적 시각을 갖게 될 공산이 크다. 가장 걱정스러운 것이 바로 이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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