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용 칼럼] 두 충청인 ‘주역’ 아닌데 죽음의 결투

이른바 ‘성완종 게이트’가 어디까지 갈지는 알 수 없지만, 그 1막의 주인공은 성완종 전 경남기업회장 자신과 이완구 총리다. 모두 충청도 사람이다. 충청도 기업인과 충청도 정치인의 죽음을 건 싸움이 되었다. 한 사람은 이미 세상을 떴고, 다른 한 사람도 진실게임에 목숨까지 걸겠다고 했다.

두 충청인 ‘주역’ 아닌데 죽음의 결투

성완종 게이트를 바라보는 시각이 모두 같지는 않을 것이다. 부도덕한 기업의 종말로 보는 사람도 있을 테고, 그런 기업과 공생하던 권력의 치부가 드러나는 데 더 관심이 큰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또 현(現) 정권이 전(前) 정권을 손보려다 낸 사고로도 보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기회에 제대로 정치판을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충청도 사람으로선 이 사건의 두 주인공이 하필 충청도 사람들이라는 데 안타까움이 있다. 두 사람은 결코 ‘주역’은 아니다. 취임하자마자 군기잡기에 나섰던 이 총리는 현 정권의 새 ‘행동대장’일 뿐이다. 그가 독단적으로 사정에 나섰다고 보기는 어렵다. 청와대 지시를 받았거나 입을 맞췄을 것이다.

경남기업과 성 회장이 사정의 칼날을 1번 타자로 맞아야 할 이유도 없었다. 경남기업이 문제가 많은 기업인 것은 분명해 보이지만 검찰의 최우선 타깃이 될 마땅한 이유는 보이지 않는다. 검찰이 손을 댄 이유였던 자원외교 부분에선 비리를 발견하지 못했다. 자원외교는 더 큰 기업들도 다 한 것이고 비리가 있다면 더 크게 했을 것이다.

성 회장이 사정의 타깃이 된 진짜 이유는 그가 MB맨으로 보였기 때문이란 시각이 많다. 박근혜 정권이 MB 쪽과 껄끄러운 건 다 아는 사실이고, 이 총리도 행정도시 철회 과정에서 갈등을 빚으며 MB의 사찰까지 받은 적이 있다. 오해라고 할 수만은 없다.

정치에 너무 빠졌던 기업인의 종말

성 회장은 기자회견을 열어 “나는 MB맨이 아니다”고 외쳤다. 그 말은 맞다. 그는 MB맨도 친박도 아니었다. 어떤 권력과도 친하게 지내야 하는 ‘정경유착 기업인’이었다. 문제는 그가 기업인치고는 너무 노골적으로 ‘정치’도 했다는 점이다.

그는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을 차기 대권후보로 미는 듯한 행동을 하면서 반 총장의 동생을 자기 회사에 모셔다 대우했다. 누가 봐도 정치 활동이다. 총리가 된 뒤 반 총장과 ‘충청 대망론’의 경쟁자가 되어가던 이 총리에겐 물론이고, 시퍼렇게 살아있는 ‘현재 권력’에게도 비위를 거스르는 행동이었다.

그런데도 성 회장은 지금 정권에도 줄을 대고 있다는 자신감 때문이었는지 자신에게 엄청난 화가 미칠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은 것 같다. 경향신문과의 ‘마지막 인터뷰’에서 그는 현 정권의 실세들을 거명하면서 의리와 신의를 거듭 강조했다. 그동안은 그런 의리가 통했던 셈이다. 그래서 기업의 위기도 넘기며 성 회장 자신은 남보다 빨리 사면받고 국회의원까지 했다.

그러나 ‘의리’가 늘 통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정치에서 의리는 헌신짝이 되기 십상이다. 정치 세계에서 의리는 가장 낯선 단어 중에 하나다. 정치에서 믿을 수 있는 건 돈이지 의리가 아니다. 성 회장이 말하는 의리도 결국 돈이었다. 그의 메모에 적힌 유력 정치인들의 이름과 액수는 그가 기대하던 의리였다.

성 회장은 기업인이 너무 정치에 빠지면 오히려 위험할 수 있다는 점에는 소홀했는지 모른다. 아니면 기업은 수단이고 오히려 정치와 권력이 목적이었을 수도 있다. 성 회장은 또 한 번 사면을 받아 다음 지방선거에서 충남지사로 나올 생각이었다는 소문도 들린다.

만만한 충청도 기업 타깃 삼은 건 아닌가?

권력 줄타기를 일삼던 한 기업인이 이번 사정 정국에 걸려들었다. 그 점에선 성 회장이 향토 기업인이라고 해도 옹호해줄 명분이 없다. 그러나 왜 하필 그가 이 정부의 사정 대상 1호가 되었는지, 특히 충청도 출신 총리가 지휘하는 사정 정국의 제물이 되었는가에 대해선 의문이다.

혹자들은 경남기업이 만만한 ‘충청도 기업’이라는 점도 원인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갖고 있다. 건드려도 찍소리 못하는 충청도 기업이라는 점이 이유일 수 있다는 것이다. 확인할 길은 없으나, IMF 사태 때 다른 지역은 멀쩡한데 충청은행만 날아가고 최근 호남선KTX 노선 결정에서 서대전역이 배제되는 것을 보면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성완종 게이트’는 진짜 배경이 무엇이든 충청도 사람을 내세워 충청도 사람을 치는 꼴이 됐다. 동향의 충청도 정치인과 기업인이 죽음의 결투를 벌이고 있다. 기업인이 자결로 대응하면서 정치인도 낙마 위기에 처해 있다.

3000만원 수수는 결백 입증 어려워

그 정치인, 이 총리는 사건의 중심에 서 있다. 자신이 신호탄을 올린 기획 사정(司正)에 자신까지 걸려들었다. 성 회장으로부터 3000만원을 받았느냐를 놓고 진실게임을 벌이고 있다. 망자와의 싸움이 됐다. 이 총리가 그 돈을 받았는지 여부는 중요한 문제지만, 그의 거취가 그것으로 결정될 상황은 이미 아니다.

이 총리는 지금 물러나야 한다. 돈을 받은 일이 없다면 억울한 일이겠지만 그래도 물러나는 게 맞다. ‘3000만원의 진실’이 무엇이든, 상황은 이 총리가 사퇴하지 않으면 안 되는 쪽으로 가고 있다. 자신의 거취 문제를 놓고 대통령과 여당 대표가 회동할 정도면 사태를 되돌리기 어렵다.

성완종 회장이 이 총리한테 3000만원을 줬다는 진술과 관련, 사실 확인이 가능한 것은 돈이 전달되었을 경우뿐이다. 돈을 받지 않았을 경우는 확인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성 회장이 3000만원과 관련해 언급한 것은 “내가 거기(당시 이완구 후보 사무실) 한나절 정도 머물면서 한 3000만원 주고...”라고 언급한 게 전부다.

비타500 박스로 전달됐다거나 봉투에 담아 갔다는 제3자 증언이 모두 허위로 밝혀지더라도 그것이 이 총리의 무죄를 입증해주지는 못한다. 3000만원 수수가 사실이 아니라면 ‘진실’을 밝힐 방법이 없다. 그날 하루 종일 동영상 감시카메라를 선거 사무소 일대에 돌렸다고 해도 진실을 가리기는 어렵다. 이 총리로선 억울한 일이겠지만 도리가 없다.

일반 공무원과 총리가 다른 점

일반 공무원이라면 범죄 사실이 확인되지 않는 한 무죄이고 지위를 유지하는 데 지장이 없다. 그러나 총리는 다르다. 결백이 입증되지 않으면 자리를 보전하기 힘들다. 총리가 일반 공직자와 크게 다른 부분이다. 총리는 신뢰를 잃으면 제 역할을 할 수 없다.

식물총리가 정치 개혁을 제대로 뒷받침하기는 어렵다. 각종 현안을 풀어가는 데도 걸림돌이 된다. 애써서 총리까지 간 이유가 무엇인가? 제대로 나라 한 번 이끌어보자고 한 것 아니었나? 그렇다면 스스로가 걸림돌이 되는 상황에서 자리에 연연해선 안 된다. 본인이 억울해도 국가를 위해 흔쾌히 물러날 줄 아는 게 큰 정치다.

이런 상황에선, 이 총리가 일찍 물러나는 게 3000만원 수수를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 점은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정치인은 나갈 때보다 물러나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 거취에 대한 선택권이 조금이라도 자신에게 있을 때 결단해야 한다. 늦어지면 다른 사람들이 결정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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