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용 칼럼] 현대백화점을 위한 대전시의 ‘신기술’

김학용 주필
탐욕스런 대기업이 ‘위기의 시장’을 노리고 있다. 지금 대전시는 ‘해석 변경’이라는 신기술을 동원해 특정 대기업에 엄청난 특혜를 주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현대백화점이 싼값에 매입한 대덕테크노밸리 내 호텔부지를 훨씬 비싼 아웃렛 부지로 바꿔주는 작업을 하고 있는 중인데 이 땅의 용도에 대한 ‘해석’만 바꿔 용도를 변경하는 게 ‘신기술’의 핵심이다.

이 호텔부지를 아웃렛 부지로 용도 변경하려면 대덕특구법상 상관(上官)인 미래부의 동의가 필요하지만 ‘해석’만 바꾸는 방법으로 하면 미래부 동의 없이 대전시 자체적으로도 가능하다. 까다로운 미래부를 배제하는 방법으로 ‘해석 변경’의 수법이 동원되고 있는 것이다.

대전시가 선보이는 신기술 ‘해석 변경’

‘해석 변경’의 신기술은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어떤 사람이 학교를 짓기로 하고 교육시설용지를 싸게 매입했다. 하지만 학생 모집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자, 학교 대신 상가를 짓겠다며 사업허가를 신청했다. 담당 공무원은 비록 학교부지로 되어 있지만 학교뿐 아니라 판매시설(구내매점)도 들어갈 수 있다는 조항이 있으니 학교 대신 상가를 넣는 것도 가능하겠다고 ‘해석’하여 허가를 내주려 한다.

대전시가 현대백화점을 위해 선보이고 있는 ‘해석 변경’의 개념이다. 시는 호텔이 들어가도록 계획된 ‘관광휴양시설용지’의 용도는 바꾸지 않으면서 ‘판매유통시설인’ 아웃렛을 넣도록 허가해주려 하고 있다. 학교부지에 들어서는 상가나 호텔부지에 들어가는 아웃렛 모두 용도 변경이 아니라 해석 변경이라는 수법이라는 점에서 같다.

현대백화점이 작년 11월 인수한 호텔부지 3만 평은 10여년 전 중소 부동산개발업체인 H산업이 대형호텔을 짓겠다며 분양받은 땅이다. 그러나 호텔사업이 어렵다는 점을 알고 용도를 바꾸려고 노력해왔다. 용도변경은 쉽지 않은 일이다.

까다로운 미래부 피하려고 ‘해석 변경’ 수법 사용

아웃렛을 넣으려면 ‘관광휴양시설용지’를 ‘유통시설용지’로 용도를 변경해야 된다. 미래부의 동의를 얻어야 가능한데, 미래부가 호락호락할 리 없다. 염홍철 시장 때 과학공원을 롯데(롯데테마파크)에게 넘겨주려다 실패한 것도 미래부 문턱을 넘지 못했기 때문이다.

현대백화점은 이 땅을 평당 270만원 정도에 매입했는데 아웃렛 부지로 바뀌면 평당 1000만원에 육박하게 된다고 한다. 현대는 앉은 자리에서 2000억 원을 벌게 된다. 자기 돈을 들여서라도 아웃렛 사업허가를 따내고 싶은 대기업에게 지자체가 오히려 막대한 특혜를 주면서까지 사업허가를 내주려고 애쓰는 것 자체가 비정상이다.

그런데도 이런 의문스런 사업허가를 내주기 위해 꾀를 낸 게 ‘해석 변경’이다. 지구단위계획상 ‘관광휴양시설용지’라는 타이틀은 그대로 두고 ‘세부개발계획’만 아웃렛 관련 시설 내용으로 바꾸는 아이디어다. 지구단위계획의 용도를 그대로 두면서도 그 알맹이만 바꿔 아웃렛 사업이 가능하도록 하는 수법이다.

평화헌법에 쓰는 아베의 ‘해석 변경’과 닮은 꼴

대전시는 호텔부지의 지정용도가 숙박시설과 판매시설(소매시장에 한함)로 병기돼 있고, 이 두 가지, 즉 숙박시설 또는 판매시설의 면적이 60% 이상이면 사업이 가능하다는 조항을 들어, 판매시설인 ‘아웃렛 허가’도 가능하다고 ‘해석’하고 있다. 이런 식의 해석이 가능하다면 도시계획이란 것 자체가 무의미해진다. 시장이 맘대로 해석을 바꿔 허가해줄 수 있는데 도시계획이 무슨 의미가 있나?

대전시의 ‘해석 변경’ 기술은 일본 아베 총리의 평화헌법에 대한 ‘해석 변경’과 빼닮았다. 평화헌법을 바꿔야 자위대를 외국에 파견할 수 있는 데도 헌법 개정이 어렵자, 우선 ‘해석 변경’이라는 편법을 쓰고 있다. 아베는 일본을 전쟁국가로 몰아가기 위해서, 대전시는 특정 대기업에 특혜를 주기 위해서 이 기술을 쓰고 있다.

지구단위계획에 명시되어 있는 호텔부지의 ‘개발방향’과 ‘지정목적’을 보면 대전시의 ‘해석 변경’은 불가능하다. 지구단위계획에, 이 호텔부지의 개발방향은 ‘단지 중앙부에 관광 휴양시설인 호텔, 컨벤션센터, 테마파크 등을 배치하여 시민들의 여가 휴양활동을 지원하도록 계획한다’고 돼 있다. 지정목적은 ‘기업활동 지원 및 여가생활 증진을 위한 최적의 개발방향을 개발자와 도출한다’고 명시돼 있다.

대전시는 ‘해석 변경’이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 고문변호사의 자문을 받았다고 말하고 있지만 고문변호사에 대한 신뢰도는 높지 않은 게 사실이다. 유성복합터미널 사업자 선정 때 계약 만료일을 3일이나 넘긴 엉터리 계약에 대해 자문변호사는 듣도 보도 못한 ‘최고 조항’을 들어 문제없다고 조언했으나 소송에서 패했다.

시공무원들 “디트가 계속 써서 막아달라”

한 도시계획 전문가는 “논란의 소지가 있고, 더구나 특정 기업에 대한 특혜가 예상되는 조치라면 고문변호사가 아니라 국토부 같은 상급기관에 유권해석을 받아 추진하는 게 정상”이라고 말한다. 대전시가 이 문제를 가지고 상급기관에 유권해석을 의뢰했다는 얘기는 없다.

도시계획을 조금이라도 아는 공무원들은 대전시의 이런 작업이 위험천만한 일이라고 걱정한다. 대전시 공무원들 중에는 이 일로 인해 동료 공무원들이 다치지 않을까 걱정하는 반응도 적지 않다. “디트뉴스가 이 사업의 문제점을 알리는 기사를 계속 써서 사업을 막아달라”는 요청까지 해오는 공무원들도 있다고 본사 기자들은 귀띔하고 있다.

한번 호텔부지로 지정되었다고 해서 수익성도 없는 호텔만 강요할 수는 없다. 호텔 사업이 정말 어렵겠다고 판단되면 용도를 바꿔줄 필요가 있다. 그러나 꼼수가 아니라 지구단위계획(용도)을 제대로 변경해야 한다. 시민들에게 용도 변경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아웃렛이 들어서면 막대한 피해가 예상되는 지역 소상공인들에 대한 대책도 내놓아야 한다. 용도 변경에 따른 이익금은 어떻게 처리할지 등도 공개적으로 논의해서 진행해야 한다.

현대 2000억 불로소득 분배 얘기도 없어

지금 대전시는 ‘실질적 용도변경’에 따른 막대한 이익금을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해서도 일체 언급이 없다. 전임 시장 때는 땅 주인이 3만 평 가운데 1만 평을 공익시설로 기부하는 조건으로 용도변경을 타진한 적이 있다고 한다. 지금은 ‘1만평 기부’ 얘기도 없다. 만일 이대로 허가가 난다면 현대백화점이 용도변경 이익금을 다 먹게 돼 있다.

용도변경 등으로 이익금이 발생하는 경우 땅주인 혼자 먹는 법은 없다. 수익금의 일부는 ‘음으로 양으로’ 나누게 돼 있다. 개발이익환수 등의 법으로도 정해져 있다. 현대가 막대한 이익금을 혼자 먹겠다는 생각인지 아니면 이익금 문제를 아직 언급할 때가 아니라고 판단하는 때문인지는 알 수 없다. 후자라면 현대가 권선택 시장을 이 사업의 ‘최종 파트너’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권 시장은 현재 불법선거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중이다. 1심에서 징역 2년의 당선무효형을 선고받은 ‘위기의 시장’이란 점 때문에 현대 측은 다음 시장까지 염두에 두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현대로선 권 시장이 해석 변경이란 기술로 ‘사고를 쳐주면’ 그것으로 아웃렛 사업의 토대를 마련한 뒤, 차기 시장과 거래하는 것이 전략일 수 있다.

지금 현대백화점이 뒤로 빠져 있는 것도 그런 이유일지 모른다. 작년 말 현대가 이 땅의 주인이 되었으나 ‘용도변경’ 작업은 땅을 매각한 H산업이 계속 맡고 있다. 이 업무를 담당하는 대전시 간부도 기자들에게 이 민원의 당사자는 현대백화점이 아니라 H산업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말하자면 H산업이 이 사업을 대행하고 있는 셈이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민원인을 현대로 바꾸면 권 시장으로선 자신이 허가 도장을 찍을 시간이 없을 수 있고, 현대로서도 어차피 이 사업의 최종 파트너는 차기 시장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기 때문인지 모른다. 그래도 지금 이 순간 용도변경 작업의 주인공은 현대백화점과 권 시장이라고 봐야 한다.

권선택 시장 “현대 아웃렛 허가, 난 아니다”.. 무슨 뜻?

그런데 현대는 아직 전면에 나서지 않고 있고, 권 시장도 이 문제에 대해선 공식적인 언급이 없다. 권 시장은 “민원이 들어왔는데 검토도 안할 수는 없지 않느냐?” “그러나 나는 허가 안 한다”는 식으로 취재기자에게 말했다고 한다.

시장이 허가를 안 하겠다는 사업을 공무원들이 열심히 추진하고 있다는 얘긴가? 이 말을 누가 믿겠나? 시는 아웃렛 변경에 필요한 교통영향평가를 받아낸 뒤 주민공람까지 마치며 착착 진행하고 있다. 그런데도 권 시장이 ‘나는 아니오’라고 말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떳떳하지 못한 일을 꾸미다가 누가 물으면 대개 이런 식의 대답이 나온다. 권 시장 스스로도 이 작업이 떳떳하지 못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반응이 아닐까?

권 시장은 스스로도 당당하지 못한 ‘해석 변경 작업’은 즉각 중단해야 한다. 그리고 정상적인 절차를 밟아야 한다. 현대백화점도 이 문제를 대기업답게 풀어야 한다. 대기업이 ‘위기의 시장’을 놓고 수준 이하의 장난을 치면 안된다. 탐욕스런 기업 때문에, 떳떳지 못한 돈 때문에 정치인이 사지로 내몰리는 장면을 요즘도 목격하고 있지 않는가? 현대는 위기의 시장을 사지로 유혹하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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