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트의 눈] 세종시·과학벨트 사수처럼 '충청권 공조' 가동해야

권선택 대전시장과 이춘희 세종시장이 당진을 찾는다면 이번 투쟁이 충남만의 외로운 싸움이 아님을 천하에 알리는 계기가 될 것이다. (자료사진: 세종시 홈페이지)
충청권 정치사에 있어 지난 10여년의 세월은 ‘투쟁의 역사’ 그 자체였다. 2002년 대선을 앞두고 노무현 후보의 신행정수도 건설 공약 및 헌법재판소의 위헌판결, 그리고 이명박 정부의 세종시 수정안 추진 논란에 대한 충청인의 대응은 눈물겹기까지 했다.

누군가는 혈서를 써야했고, 펄펄 끓는 아스팔트 바닥의 열기를 온몸으로 견디거나 추운 겨울 입김으로 손을 녹이며 촛불을 들어야 했으며, 곡기를 끊은 채 목숨 건 단식투쟁을 벌어야 했다.

세종시에서 과학벨트까지 ‘투쟁의 역사’ 보낸 충청권

이처럼 충청인의 피와 눈물로 지켜낸 세종시는 반대론자들의 억지 주장을 비웃기라도 하듯 대한민국 균형발전을 선도하는 명실상부한 행정중심복합도시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2007년 이명박 후보의 대선 공약으로 시작된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과학벨트) 역시 정부가 충청인의 입에 떠 먹여주듯 한 건 절대 아니었다.

세종시 수정안 관철에 실패한 이명박 정부는 느닷없이 과학벨트에 대한 전국 공모에 나섰으나 “대통령 잘못 뽑았다”는 충청권의 반발에 부딪치며 거점지구가 대전으로 결정된 바 있다.

정권을 상대로 한 두 번의 투쟁에서 대전, 충남, 세종, 충북은 너 나 할 것 없이 ‘충청권 공조’라는 대의명분 아래 하나 됨으로써 이 같은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간과해선 안 될 대목은 맏형 격인 충남의 희생이다. 세종시의 관할구역과 법적 지위가 논란이 됐을 당시 충남은 국가 백년대계에 힘을 보태기 위해 자기 살을 떼 주는 어려운 결단을 했다.

대전·세종, 맏형 격인 충남의 희생 잊지 말아야

충남도 산하 기초자치단체가 아닌 특별자치시로서의 법적 지위를 받아들인 것은 행정의 입장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게다가 인접한 공주시는 세종시 출범의 여파로 인구가 빠져나가는 등 지금도 적잖은 피해를 입고 있다.

과학벨트 역시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대전은 거점지구, 충남 천안은 기능지구로 정해졌지만, 정작 기능지구에는 표지판 하나 없어 상실감이 큰 실정이다.

그럼에도 거점지구의 것을 충남이 나눠 가지려 하지 않는 것은 맏형으로서의 의젓함이자 충청권 공조의 틀을 이어가기 위한 책임감으로 볼 수 있다.

이런 가운데 벌어진 행정자치부 산하 중앙분쟁조정위원회(중분위)의 당진·평택항 매립지 분할 귀속 결정 사태는 아쉽게도 충남만의 일로 인식되고 있는 분위기다. 충남 전체도 아닌 당진시와 아산시 정도의 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충남도계 및 당진땅 수호 범시민대책위원회’(당진 대책위)는 “충청권 전체가 들고 일어서지 않으면 이 싸움에서 결코 이길 수 없다”고 우려하고 있다. (자료사진: 당진시 홈페이지)
‘충남도계 및 당진땅 수호 범시민대책위원회’(당진 대책위)는 “충청권 전체가 들고 일어나지 않으면 이 싸움에서 결코 이길 수 없다”고 우려하고 있다. 동시에 ‘당진 땅’이 아닌 ‘충청의 땅’으로 인식시켜 투쟁의 강도를 높일 방안을 고심 중이다.

여야를 망라한 지역 정치권이 연석회의를 갖고 정부의 잘못된 결정을 규탄한 바 있지만, 행정력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구호에 그치기 십상이다.

권선택 대전시장-이춘희 세종시장, 당진 방문해야

대전과 세종이 충남에 갚아야 할 그 무엇이 있다고 여기는 사람은 기자 개인만이 아닐 것이다.

대전시민도 세종시민도, 이번 사태를 ‘강 건너 불 보듯’ 한다면 지역의 이익을 위협하는 정권 차원의 또 다른 시도가 있을 경우 충청권 공조를 복원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게 될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권선택 대전시장과 이춘희 세종시장의 당진 방문을 요청한다. 김인식 대전시의회 의장과 임상전 세종시의회 의장에게도 마찬가지다. 이를 통해 이번 투쟁이 충남도민만의 외로운 싸움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면 그 의미가 매우 클 것이다.

얼핏 보면 ‘땅 싸움’ 정도로 인식될 수 있겠지만, 지방자치제의 근간을 흔드는 결정이라는 점에서 대전시와 세종시가 이 투쟁에 합세할 명분은 충분하다.

마침 ‘행정수도 사수 연기군 대책위’를 이끌었던 핵심 인사들이 당진 대책위 지지 방문을 긍정적으로 검토 중이라는 얘기가 들린다. 가뭄에 단비처럼 반가운 소식이다. 꼭 성사됐으면 한다.

이번 당진·평택항 매립지 분할 귀속 사태가 충청권 공조를 테스트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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