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용 칼럼]10개월 째 겉도는 150만 도시 대전

김학용 주필
권선택 시장에 대한 불법선거 수사는 취임 한 달 만인 작년 7월31일 선관위의검찰 고발로 시작됐다. 시장 측근과 선거운동 관계자들이 줄줄이 구속되고 수십 명이 기소됐다. 권 시장은 흔들림 없는 행정을 강조했지만 간단치 않은 사건임이 드러났다. 1심에서 시장 본인과 회계책임자가 모두 중형의 당선무효형을 선고받으면서 권 시장은 사실상 ‘식물시장’이 되어 있다.

대법 판결 9월에 나오면 행정공백 14개월

수사 개시 시점부터 벌써 10개월째다. 지방자치가 부활된 지 20년이 넘었지만 시도지사 가운데 지위 불안이 이렇게 오래 간 곳은 없다. 이완구 지사가 선거 때 밥값을 낸 죄로 1심에서 당선무효형의 벌금형을 받았으나 지위를 잃을 것으로 보는 사람들은 별로 없었다. ‘식물 도지사’로까지 몰리지는 않았다. 또 선거법 때문은 아니었으나 이광재 강원지사는 취임 6개월 만에 물러났다.

권 시장 재판의 대법 판결도 오는 9월말까지는 나올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그럴 경우 대전시장은 최대 14개월이나 ‘식물 상태’에 있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도주했던 권 시장 선거캠프의 총무국장이 자수해오면서 재판 일정이 더 늦어지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없지 않다.

권 시장 재판이 오는 9월말까지 끝나지 않으면 시장 부재 상태가 내년 4월까지도 이어질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대전시의 행정공백이 2년 가까이 이어지게 된다. 150만 인구에 1년 예산이 4조원이 넘는 지방자치단체가 이렇게 긴 시간을 허비하는 건 말할 수 없는 낭비다.

‘식물시장’ 아래선 중단이 아니라 혼란과 퇴보

식물시장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몇 달 뒤 물러날지도 모르는 시장 말을 잘 듣는 공무원들은 별로 없다. 식물시장 아래선 모든 게 정지된다. 단순히 중단에 그치는 게 아니라 후퇴하고 망가지는 게 더 문제다. 식물시장 상태에선 해야 할 일은 못하고, 해선 안 될 일만 자꾸 꾸미게 된다. 조직을 통제할 리더가 없는 조직은 위든 아래든 무책임과 부패의 늪에 빠지게 돼 있다.

단체장 교체기나 혼란기를 틈탄 이권사업 허가는 거의 그런 것들이다. 대전시가 듣도 보도 못한 ‘해석 변경’이란 방법을 동원해 현대백화점에게 아울렛 사업허가를 해주려는 것도 그런 작업이다. 대전시장이 도장을 찍는 순간 대기업 현대백화점은 앉은 자리서 2000억 원 이상 벌게 된다.

이 문제에 있어서 상급 기관인 미래창조과학부가 제동을 걸 움직임을 보이자 권 시장은 작업을 중단하고 적법성을 검토해보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대전시는 지금도 이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전시의 태도를 보면 어떻게든 현대에 용도변경을 해주려는 모습이다.

권 시장도 빨리 ‘족쇄’ 풀어야 이익

법원은 권 시장의 ‘족쇄’를 풀어주든 ‘시장 직인’을 빼앗든 하루 빨리 결정해줘야 한다. 그게 시민에게도 권 시장에게도 좋다. 권 시장이 재판의 족쇄를 벗는다면 시정이 보다 안정되고 업무 효율성도 높아질 것이다. 재판받는 상황이 아니라면 현대백화점을 위한 용도변경도 지금처럼 무리하게 추진하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어떤 시장이든 안정되게 일을 할 수 있어야 시민들도 더 나은 행정을 기대할 수 있다.

선거법은, 불법선거에 대한 재판은 다른 재판에 우선하여 진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선거가 끝난 뒤 6개월 이내에 공소를 제기해야 하고 그 후 6개월 이내에 판결해야 한다. 2심과 3심은 전심 판결일로부터 각각 3개월 이내에 끝내도록 정해져 있다. 따라서 지금 진행중인 권 시장의 2심 재판은 6월16일까지는 끝내야 하고, 대법 최종심도 9월16일까지는 나와야 된다.

재판 기간이 강행규정이긴 하지만 이를 어겼을 때의 처벌 조항이 없고, 권 시장의 경우처럼 사건 규모가 크면 기한을 지키는 게 어렵다. 권 시장 재판은 기간을 연장시킬 생각은 없다는 게 재판부의 뜻 같다. 일주일에 2번씩 공판을 여는 강행군도 그런 의지로 보인다.

대전시 정상화 시점 법원에 달려

권 시장 측은 자신의 억울함을 최대한 주장하되 재판을 지연시키는 데까지 이르면 안 된다. 피고인으로서 최대한 방어할 권리가 있으나 대전시장이란 자리의 막중함을 인정하면 내 권리만 요구할 수는 없다. 재판을 오래 끄는 건 전략으로 삼지 말아야 한다. 하루 빨리 혐의를 벗고 시장으로서의 온전한 지위를 되찾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게 떳떳한 승부다.

지금 대전시 행정은 사실상 올스톱 상태다. 150만 도시의 행정을 한 달, 혹은 단 하루라도 빨리 정상화해줄 수 있는 곳은 법원이다. 특히 대법원에 달렸다. 고법의 판결이 불가피하게 좀 늦어진다고 해도 대법원 최종심은 오히려 빨리 나올 수도 있다.

대통령은 한 시간도 비우기 어려운 자리다. 시도지사를 대통령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수 조원의 예산 규모에 수천 명의 공직자가 영향을 받는다는 점에서 ‘식물시장 상태’가 가져오는 피해는 금액으로 환산하기 어렵다.

지금 이 순간에도 대전시는 겉돌고 있다. 과학벨트의 앞날이 보이지 않고, 100년 만에 떨어져 나간 호남선 철도에 대한 대책도 없다. 권 시장이 무죄로 돌아오거나 새 시장이 와야만 의미있는 노력이 가능하다. 항소심 재판부와 대법원도 모르는 바 아니겠지만 거듭 전하고 싶다. 대전시는 지금 매일 최장기(最長期) ‘식물시장 기록’을 갱신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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