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트의 눈] 국가 무능으로 번진 '바이러스', 국민 경각심 일깨워

‘메르스’ 공포가 온 나라를 뒤덮었다. 일부 의료인들은 필요 이상의 걱정이 오히려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고 지적한다. 메르스 확진 후 완치된 70대 노인이 “나도 이겨냈는데, 젊은 사람들이 무슨 걱정이냐”고 위무하지만, 불안이 쉽게 사그라지지 않는 게 사실이다.

근본적으로는 국가의 존재가치에 대한 의문이 싹트고 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이 국가의 가장 기본적 책무임에도 여기저기서 파열음이 들린다.

본보가 직접 확인한 바에 따르면, 메르스에 대해 전문지식이 없는 보건당국의 행정직원들이 응답 매뉴얼을 30분 정도 교육받고 ‘핫라인’ 상담현장에 투입됐다. 불안하고 궁금하고 두려워하는 국민들이 조우하게 된 ‘국가의 민낯’이란 바로 이런 모습이다.

세월호 사건 당시 국민들이 목도했던 ‘국가의 무능’은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초기대응 실패, 콘트롤타워 부재, 대통령의 안이한 상황인식, 행정의 임기응변식 대처 등 닮은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다만 세월호 사건이 475명 탑승자를 사지로 몰아넣은 ‘무능’이었다면, 이번 메르스 공포는 온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결부된 ‘무능’이라는 점만 사뭇 다를 뿐이다.

그럼에도 이 ‘착한’ 국민들은 국가를 원망하기 보다는 자기방어기제를 작동시키는데 열심이다. 세종시에서는 더욱 아이러니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시민들 상당수가 국가시스템을 작동시키는 중앙부처 공무원이거나 그 가족임에도 불구하고 불안에 떨기는 마찬가지였다.

메르스 관련 정보는 국가나 자치단체, 심지어 언론보다도 지역 커뮤니티에서 더 빨리 공유됐다. 보건당국이 입을 꽉 다물고 있을 때, 시민들은 메르스 의심환자가 어떤 경로를 통해 역학관계를 가지게 됐고, 현재 어느 지역에 머무르고 있다는 사실까지 파악하고 이를 알렸다.

메르스 확진자가 거쳐 간 병원 이름은 보건당국이 발표하기 훨씬 전부터 커뮤니티와 SNS를 통해 전파됐다. 국가의 엄포에 겁먹은 언론들이 A병원, B병원 등으로 ‘이니셜 보도’를 하고 있을 때 시민들은 이미 병원 이름을 죄다 내리꿰고 있었다.

보다 적극적인 움직임도 있었다. 세종시 한 아파트 관리사무소는 자가격리 대상자가 된 아파트 경비원을 공개하고 관리직원 전체와 밀접접촉하지 말라는 안내를 했다. 한 주부는 자신의 남편이 운영하는 개인병원에 메르스 의심환자가 다녀갔다는 사실을 지역 인터넷커뮤니티에 스스로 공개하기도 했다.

자가격리 통보를 받은 의심환자 한 둘이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를 활보했다는 소식이 들렸지만, 대다수 시민들은 아무런 역학관계 없이도 스스로를 사회와 격리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자신을 보호하고 또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처연할 정도다.

이 정도 노력이라면 ‘메르스’ 공포가 그리 오래가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국가의 무능 때문에 ‘바이러스’가 급속도로 번졌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무능이 국민의 경각심을 끌어올리는데 크게 일조한 까닭이다. 정말 착하고 서글픈 국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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