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용 칼럼]‘국가 돌팔이 의사’ 땐 재앙 불러

김학용 주필
평소 건강한 사람에겐 의사가 대수롭지 않다. 자신의 건강이 위험에 처한 뒤에야 의사의 중요성을 실감한다. 가족 가운데 한 명이 큰 병을 얻어 생명이 위독한 지경에 이르러도 의사에게 간절하게 매달리지 않을 수 없다. 의사의 말 한 마디에 희비가 갈리고 천당과 지옥을 오간다.

모든 의사가 병을 잘 고치는 것은 아니다. 양의(良醫)가 있고 그렇지 못한 의사들도 있다. 어떤 의사를 만나느냐에 따라 치료의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 때론 환자의 생명이 좌우되기도 한다. 그래서 제법 큰 병이다 싶으면 대형병원으로 달려가고 소문난 의사를 찾는다.

대형 병원 가운데 가장 이름난 곳이 삼성서울병원이다. 내로라는 의사들도 가장 많은 병원이다. 그러나 지금은 병을 고치는 게 아니라 병을 얻는 병원이 되었다. 메르스 전파지로 밝혀지면서 입원했던 환자들이 탈출하였고, 외래환자들도 발길을 끊고 있다.

최고 병원, 최고 의사들이 환자를 오히려 내쫓는 꼴이 되었다. 탈출한 환자들은 갈 곳도 마땅치 않다. 전염을 걱정하여 선뜻 받아주는 병원이 없다. 삼성병원에서 항암치료를 받는 외래환자들도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애를 태우는 중이다. 메르스로 타격을 받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삼성병원도 못 고치는 병, 고칠 수 있는 ‘의사’지만

우리는 이번에 국민의 생명줄을 쥐고 있는 ‘가장 큰 의사’는 따로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누구인가? 대통령이다. 삼성병원원장이 찾아가 고개를 숙이는 대통령이다. 지금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의 생명을 좌우하는 자리에 있는 병원의 원장이고 의사나 다름없다.

메르스 문제에선 방역(防疫)을 책임진 대통령이 의사다. 대통령이 한번 판단을 잘못하면 더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자신의 판단으로 수 십, 수백 명의 생명이 좌우된다면 이보다 더 중요한 의사가 어디 있겠나? 지금 이 순간은 대통령이 의사다. 국민의 생명을 지키느냐 잃느냐 하는 문제는 ‘의사 박근혜’한테 달렸다.

오늘 한겨레가 보도한 기사 <박 대통령이 메르스에 쩔쩔 맬 수밖에 없는 ‘진짜 이유’>는 박근혜 대통령이 혼자 모든 정보를 틀어쥐고 혼자 판단하고 지시한다는 게 골자다. 이전의 비서실 3인방 사건 등을 보면 이는 사실로 보인다. 박 대통령이 ‘문고리 권력 3인방’을 끝까지 놓지 못하는 이유도 그들이 바로 대통령의 눈과 귀와 머리의 역할까지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이런 상황에선 메르스 문제의 콘트롤타워는 대통령 자신일 수밖에 없다. 물론 대통령은 메르스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다. 옆에 제대로 도와줄 사람이 없다면 우왕좌왕하다 결정의 타이밍을 놓치기 십상이다.

메르스 감염 병원의 실명을 빨리 공개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논란은 있을 수 있었다. 그러나 보다 빨리, 제대로 판단해야 한다. 관련 정보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전문가가 판단할 몫이다. 대통령은 그 판단을 믿어주고 힘을 실어주면 된다.

믿을 만한 사람 없다면 대통령은 ‘국가 돌팔이 의사’

만일 국무총리든 장관이든 믿어줄 만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이 없다면 대통령은 ‘국가의 돌팔이 의사’일 뿐이다. 아무리 큰 병원이라도 의사의 실수로 여러 명이 한꺼번에 희생되는 경우는 없다. 오직 ‘대통령 의사’만이 그런 실수를 저지른다. 자칫하면 국가적 재앙이 된다.

이런 막중한 책임 때문에 대통령은 사람을 잘 써야 한다. 2003년 노무현 정부 시절, 세계적으로 유행하던 ‘사스’의 공포를 큰 탈 없이 넘어갈 수 있던 건 고건 총리 덕분이란 평가가 있다. 누가 책임을 맡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세월호 선장이 지혜롭고 책임있는 사람이었다면 희생자가 훨씬 줄었을 것이다.

국민들은 이번에 국내 최고라는 삼성병원에 웬만한 지방병원들도 가지고 있는 음압병실이 없다는 사실도 알았다. “수익성이 좋지 않기 때문에 민간 병원들은 잘 설치하지 않고 있다”는 게 의료계 분석이라고 조선일보는 전했다. 삼성병원이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일면이다.

메르스 때문에 대통령과 삼성병원이 함께 도마에 올랐지만 차이점은 있다. 삼성의 고객은 환자가 전부라면 대통령에겐 환자를 포함한 모든 국민이 고객이다. 삼성은 돈이 되는 환자들만 받아들이지만 대통령은 그럴 수 없다. 그리고 대통령은 어떤 경우에도 국민의 생명을 책임져야 할 최후의 ‘의사’다.

선거 때만 되면 정치인들은 저마다 ‘명의(名醫)’를 자처한다. 국민의 생명을 안전하게 할 수 있다고 큰 소리 친다. 박 대통령은 ‘국민 안전’을 누구보다 강조했다. 그런 대통령 아래서 국민 생명이 위협받는 일이 오히려 잦다. 국민들은 불안하다.

‘지방 의사들’도 실력 없고 부패한 경우 많아

메르스 사태는 오로지 ‘대통령 의사’만이 조치가 가능한 병이 있다는 사실을 깨우쳐주고 있다. 사실 그런 병은 메르스뿐이 아니다. ‘세월호’처럼 국민의 생명을 앗아가고 국민의 행복을 위협하는 모든 병폐와 부조리는 ‘대통령 의사’가 다뤄야 할 나라의 병이고 사회의 병이다.

지역에는 ‘지역의 병폐들’이 있다. 시도지사가 ‘지방 의사’ 노릇을 해야 하는데 실력은 없고 돈만 밝히는 가짜들이 태반이니 지역 사회 건강에 해나 끼치지 않으면 다행이다. 대통령이든 시도지사든 선거 때 조금이라도 나은 ‘의사’를 고르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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