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호 기고] 영화 '연평해전' 후기

오랜 가뭄 끝에 내리는 비라서 그런지 가랑비조차 반가웠던  늦은 저녁에 나는 극장을 찾았다. <연평해전>이 개봉됐다고 했을 때 나는 당연히 보러가야 되는 것으로 여겼다. 아주 당연히.

지난, 2002년 구청장으로 재직하고 있었을 때 연평해전 전사자 중 한 사람인 조천형 중사의 가족을 만났다. 우리 동네인 신흥동 언덕배기에 자리한 가난한 산동네를 한참 걸어 올라가 망연자실한 아버지를 보고 말도 못 건네고 나왔던 기억이 생생하다.

국민모두가 2002년 월드컵 경기의 열기 뜨거웠던 때였다. 거리는 온통 붉게 물들고 한국과 터키의 3, 4위전에 모든 시선이 쏠려 있었다. 2002년 6월 29일, 연평도 근처 북방 한계선에서 북한군은 우리 해군 참수리 357호를 갑작스럽게 공격했다. 이로 인해 아무런 죄 없는 우리의 아들이고 남편이자 한 아이의 아빠였던 병사들이 아까운 목숨을 잃었다.

우리는 그때의 전사자와 부상자들을 잊고 살았다. 영화는 묘한 마력이 있다. 영화는 영화 속 현실을 실제의 현실처럼 느끼게 한다. 우리가 몰랐고 잊었던 일들을 알려준다. <연평해전>, 이 영화는 마음으로 보는 영화였다. 가슴 아픈 영화다.

왜 우리는 이 아픔에 무관심했을까? 영화포스터에 “우리는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글이 눈에 띈다. 경고방송한 후 저쪽이 먼저 공격해야 응전하는 ‘교전규칙’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것인가? NLL을 공동어로 수역으로 해야 한다는 정치인은 도대체 정신이 있는 것인가? 당시 대통령은 물론이고 국방장관과 해군참모총장은 전사자 영결식에 참석도 안했다. 2009년 오바마 대통령은 칠흑 같은 어둠이 깔린 새벽 4시, 늦가을의 찬바람 속에서 아프가니스탄 전사자의 유해가 담긴 18개의 관이 수송기에서 다 나올 때까지 부동자세로 주검 앞에서 거수경례로 전사자에 대한 경의를 표하는 것을 나는 보았다. 국가란 이런 것이다.

고 한상국 중사 부인은 2005년 “어떤 병사가 이런 나라를 위해 목숨을 던지겠느냐?”며 쓸쓸히 캐나다로 이민을 떠났다. 나라가 나라답게 행동하지 않으면 국민도 그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던지지 않는다. 그녀는 정권이 교체된 2008년에 돌아왔다.

나는 18대 국회의원시절 부상자 중 아직도 연평해전 후유증인 PSTD(외상 후 스트레스장애)로 시달리고 있던 고경주 씨와 김면주 씨를 면담했다. 그들은 당시 국가유공자 신청을 했으나 세 차례나 퇴짜 맞고 있었다. 끈질기게 정부를 설득한 끝에 제2연평 해전 7주기가 되던 2009년 8월에 전상군경 7급으로 국가유공자 판결을 받았다. 그들은 일성으로 “나라 위해 싸웠다는 자부심을 찾았다”며 기뻐했다. 정치만 잘하면 국민은 모두 애국자가 된다.

감상 중간 중간에 눈물이 나왔다. 뜨거운 눈물이다.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는 눈물이다. 전 국민이 흘린 눈물을 병에 모아 무덤에 묻고 싶다. 망자에 대한 애정과 존경의 표시다.

안데르센 동화 <눈의 여왕>에서 게르다의 눈물이 케이의 심장에 박힌 거울파편을 녹임으로써 케이가 살아난다. 6인 용사를 순직에서 전사자로 격상시킨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영화 <연평해전>을 보고 국민이 흘린 눈물이 위정자의 마음을 바로 잡은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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