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트의 눈] 들끓는 민심, 화풀이 대상은?

세종시 민심이 술렁이고 있다. 시민 상당수는 중앙정부의 ‘세종시 홀대’를 의심하고 있는 중이다. 

제2경부고속도로 추진을 위해 시민들이 온라인 서명운동에 나섰다. 여기엔 약 2000명이 동참했다. 중앙정부의 ‘굼뜬’ 사업추진 속도에 ‘서명운동’이란 방식으로 불만을 표출하고 있는 셈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미래창조과학부 과천 잔류설’까지 불거져 화를 한층 키웠다. ‘과연 이 정부가 세종시를 정상적으로 건설하려는 의지가 있느냐’는 의구심이 번져갔다.

때마침 열린 세종시청사 개청식엔 대통령이나 총리, 심지어 행정자치부 장관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이춘희 세종시장이 ‘야당’ 시장이기에 홀대받는 것일까 상상해 볼 수도 있지만, 이내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지난 2013년 이웃 충남도가 주최한 내포신도시 청사 개청식엔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방문했다. ‘친노 중의 친노’ 안희정 지사가 차린 잔치에 박 대통령이 참석해 자리를 빛낸 것이다. 여야를 떠나 광역단체의 청사 개청식은 대통령이 참석할 만한 ‘상징성’이 존재한다는 의미다.

2005년 농민단체 시위 때문에 전남 무안에서 열린 전남도청 개청식에 참석하지 못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두고두고 이를 해명하느라 진땀을 뺐다. ‘안 간 것’이 아니라 ‘못 간 것’이라고 했지만, 전남 민심이 상당히 요동친 게 사실이다.

그렇다면 세종시민은 자존심에 상처를 입지 않았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일부는 ‘중앙정부 홀대론’을 넘어 ‘지방정부 무능론’까지 제기하고 나섰다. ‘세종시’라는 지방정부를 책임지고 있는 ‘새정치민주연합’에게 불똥이 튄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다.

총리출신이자 6선 의원인 이해찬 국회의원, 이춘희 세종시장, 시의회 과반 이상을 차지한 시의원들. 세종시 지역정치의 헤게모니를 틀어 쥔 이들 정치인들은 도대체 무엇을 하기에 ‘세종시 위상이 이토록 추락했느냐’는 질문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다만, 아직까지 민심이 한 방향으로 기울어진 모습은 아니다. 시민들은 ‘중앙정부 홀대론’과 ‘지방정부 무능론’ 중 무엇이 더 크게 작용하고 있는지 아직 결론을 내지 않았다. 앞으로 어떤 정치세력이 나름의 논리를 가지고 민심에 호소하느냐에 따라 여론이 한쪽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내년 총선을 향해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중앙정부 홀대론’과 ‘지방정부 무능론’은 조금 더 큰 대척점을 만들어내며 맞부딪힐 공산이 크다.

혹자는 이야기한다. 세종시 선거구도는 신도시지역 인구유입 속도가 결정한다고. 100% 틀린 말은 아니다. 몇 차례 큰 선거를 치르면서, 읍면지역의 고착된 보수표심과 젊은 층 유입이 두드러진 신도시지역의 진보표심이 서로의 영역에서 결집돼 왔음을 기억하고 있다. 다음 선거도 같은 방식으로 흘러갈 개연성이 높다.

그러나 우리의 선거문화는 ‘미래에 대한 선택’이 아닌 ‘과거에 대한 심판’ 성격이 짙다는 게 문제다. ‘중앙정부 홀대론’은 현 집권세력인 새누리당에, ‘지방정부 무능론’은 세종시 지역정치를 장악한 새정치민주연합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다.

내년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유능하고 참신한 후보를 내고 ‘지방정부 무능론’으로 선거구도를 몰아간다면, 6선의 이해찬 의원도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울 수 있다.

물론 새누리당이 개과천선할지는 미지수다. 지난 시장 선거 국면 <디트뉴스> 및 디트뉴스 자매 매체인 <세종포스트>의 ‘세월호 술판사건’ 특종보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술판사건의 주역을 시장 후보로 끝까지 밀어 자멸을 자초한 전력이 있다.

이에 맞서는 이해찬 의원의 경우 운신의 폭이 그리 넓어 보이진 않는다. 지역민원을 소소하게 챙기고 숙원사업을 해결하는데 거물급 정치인보다 참신하고 젊은 초선의원이 낫겠다는 지역민심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이 의원이 ‘중앙정부 홀대론’을 강조한다해도 “당신은 뭐했냐”는 식의 냉랭한 반응이 돌아올 개연성이 높은 이유다.

중앙정부의 홀대인가, 지방정부의 무능인가. 세종시민들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민심은 들끓기 시작했는데, 화를 분출시킬 대상만 아직 정해지지 않은 형국이다. 누가 됐든, 거친 소나기를 피해가긴 어렵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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