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용 칼럼] 그대가 롯데 차남이었다면 어떤 선택?

김학용 주필
만일 그대가 롯데의 차남이었다면 어떤 선택을 했겠는가? 형을 밟고 늙은 아버지를 강제로 끌어내리고서라도 경영권을 꿰찰 것인가? 아니면 다른 방법을 모색해보겠나? 오늘날 이런 질문은 현실성이 없는 한심한 물음일지 모른다.

아버지까지 버리고 차지한 ‘패륜의 승리‘

롯데는 10대재벌인 만큼 경영권은 단순히 가족 문제로 볼 게 아니고 경제적 역할이 큰 기업의 입장에서 봐야 하고, 따라서 형이든 동생이든 유능한 사람이 경영권을 승계해야 한다는 게 일반의 인식이다. 형이 차지하면 모양새가 좋겠지만 동생의 능력이 낫다면 형이 양보해야 된다는 생각에는 한 치의 의문도 없어 보인다.

동생 쪽은 경영권 확보를 위해 아버지를 치매로 몰며 회장 자리에서 끌어내렸다. 이것도 ‘기업의 입장’으로 보면 정당한 행위다. 회사를 위해선 그 회사를 만들고 일으킨 창업주조차 얼마든지 희생될 수 있다. 차남은 ‘롯데를 지키기 위해’ 아버지까지 버렸다.

소문이 사실이면, 삼성에도 과거에 비슷한 일이 있었다. 큰아들은 아버지를 고소했으나 경영권 확보에 실패했고 아버지는 작은 아들에게 경영권을 넘겼다. 작은 아들은 나중까지도 형을 ‘이 양반’으로 불렀다. 고소를 했다는 아들은 타국을 전전하다 불귀의 객이 되어서야 돌아왔다.

‘가족과 경영 분리’ 명분 반박은 어려워

“가족과 경영은 별개”라는 롯데 차남의 말은 반박하기 어렵다. 삼성을 보더라도 그렇다. 삼성에 대해 누가 이렇게 묻는다면 반론이 쉽지 않을 것이다. “동생이 기업을 승계하였기 때문에 세계적인 삼성이 된 것 아닌가? 형이 삼성을 이끌었다면 지금처럼 성장했겠나?”

삼성그룹 매출액은 우리나라 GDP의 4분의 1수준이고 국내외 임직원만 50만 명이 넘는다. 형제의 의리로 후계자를 결정했다면 이만큼 성공하긴 힘들었을지 모른다. 경영권 문제에서 가족 윤리가 기준이 될 수 없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그렇다면 기업 후계자를 정할 때 형제끼리 치고 받고 싸워서 이기는 쪽이 경영권을 가져가는 걸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하나? 아버지까지 강제로 내치는 것까지 인정해야 하는가? 롯데 사건은 그 정도의 ‘패륜’도 인정되는 시대임을 말해준다.

‘패륜적 경영권 승계’도 인정되는 시대

차남은 앞으로 약속대로 경영을 투명화해서 경제 발전에 기여할 수도 있지만 아버지를 버린 자식이 된 건 사실이다. 대기업은 물론이고 작은 사업체를 놓고도 부모 자식이 원수가 되는 일이 잦은 세상이다. 얼마 전, MBC는 딸에게 속아 수백억 원대의 재산을 강탈당한 늙은 아버지가 딸을 상대로 소송을 벌이는 비극적인 사연을 소개했다.

사기꾼은 있기 마련이지만 자기가 낳은 자식에게 사기를 당한다면 세상에 이런 원수가 없다. 딸의 아버지는 지금 지옥에서 살고 있는 기분일 것이다. 롯데 차남의 아버지도 딸에게 당한 그 아버지와 처지가 다를 바 없다.

롯데가 이렇게 된 가장 큰 책임은 아버지한테 있다. 경영권을 자식들한테 넘기겠다고 마음을 먹었으면 자신이 좀더 건강할 때 자식들의 능력과 적성을 봐서 넘겼어야 한다. 끝까지 도장을 쥐고 있다가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난리’까지 초래하고 아들한테 쫓겨난 것은 아버지 자신의 책임이다.

동생이 형을 물리치고 경영권을 거머쥔 명분이 ‘능력’에 있다면 꼭 동생이 그것을 차지할 이유는 없다. 그런 이유라면 동생보다 더 능력있는 제3의 전문경영인에 넘기는 방법이 오히려 타당하다. 우리나라에선 현실적으로 힘든 일이고 단점도 없지 않으나 외국 기업들의 사례를 보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재벌 가족 분쟁의 경제적 효과와 인성교육 역효과

한 기업 전문가는 ‘우리나라 기업문화의 문제’라고 말한다. “우리는 미미한 주식 지분만으로도 회사 전부를 자기 소유로 인식한다. 그렇기 때문에 전문경영인에게 맡기는 것은 상상조차 하지 못하지만 외국 기업의 경우 경영권 승계는 가족이 1순위, 전문가 2순위로 유능한 사람이 맡는다.”

우리나라에선 이런 식의 경영권 승계가 불가능하고 따라서 롯데의 차남 승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해도 사회 윤리의 측면에서 심각한 문제를 낳고 있다. 롯데 차남이 경영권 확보를 위해 형은 물론 아버지까지 내치는 모습을 보면서 청소년들은 “돈 문제라면 아버지까지 짓밟아도 되는구나!” 하고 생각할 것이다.

차남의 승계가 우리나라 경제에 기여하는 효과와 그 과정에서 보여준 ‘패륜적 승리’의 비교육적 효과를 비교하면 후자가 훨씬 클 것이다. 차남이 롯데를 잘 경영해서 상당 정도의 경제효과를 가져온다고 해도 ‘인성교육’ 측면의 역효과는 그보다 훨씬 크다고 본다.

10대 재벌 가운데 경영권 불화를 겪지 않는 곳이 오히려 적다. 최고 재벌 삼성 현대도 경영권을 놓고 보통의 가정에서조차 보기 힘든 모습을 보여주었다. 재벌들의 이런 모습을 지켜보면서 청소년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돈을 위해선 형제끼리도 원수처럼 싸워야 하고 아버지도 쫓아낼 수 있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지 않겠는가?

인성교육 사라진 시대 재벌 막강한 ‘정면교사’ 노릇

학교에서조차 인성교육이 사라진 시대, 재벌은 ‘인성교육’의 반면교사다. 그러나 많은 청소년들에겐 반면교사가 아니라 그대로 따라 배우는 ‘정면교사’가 되고 있다는 게 문제다. 청소년들은 재벌가의 행태를 보면서 아들이 아버지에게, 동생이 형에게 어떻게 해도 되는지를 배우고 있다.

롯데 사건에 대해 사람들은 동생의 승리를 자연스런 결과, 혹은 어쩔 수 없는 결말로 받아들이고 있다. “경영과 가족은 별개”라는 차남의 구호는 경영권 확보를 위한 합당한 명분이라고 해도 롯데 사건이 가족과 인륜의 가치를 크게 훼손하고 있는 점은 분명하다.

내로라하는 재벌이 경영권을 놓고 골육상쟁을 벌일 때마다 청소년들은 인성교육의 피해자가 된다. 학교에서 가족의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하더라도, 언론을 통해 쏟아지는 재벌가 차남의 ‘패륜적 승리’와 이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뉴스에 청소년들의 인성은 더욱 병들 수밖에 없다. 이 문제를 누가 어떻게 책임져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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