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임영호 한국철도공사 상임감사 | 전 동구 국회의원

가끔 살다가 지치면 “내가 무엇 때문에 살지”라고 나도 모르게 스스로 묻는다. ‘인간이란 무엇일까’, ‘인간다운 삶 또는 행복한 삶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정글 같은 약육강식의 경쟁의 세계에서 아등바등 사는 현대인들은 남보다 지지 않으려고 ‘빠르게 더 빠르게’ 하면서 무조건 앞만 보고 질주한다.

그런데 마음 한구석에 밀려오는 허전함이 있다. 왜 그럴까. 물질적으로는 풍요해졌지만 내면적인 삶의 질은 오히려 저만큼 물러나 있는 기분이다. 언제부터인지 ‘힐링’, ‘느림의 미학’이라는 말을 우리 삶 가까이에서 접하게 된다.

흔히 문사철(文史哲)로 일컬어지는 인문학의 정의는 이렇다. 인문이란 조금 더 사람답게, 가치 있게 살기 위한 행위이고, 이를 뒷받침하는 학문이 바로 인문학이다. 인문학은 삶에서 ‘속도에서 질의 문제’로 ‘검색에서 사색’으로 가는 신호등이다.

대학에서는 인문학이 찬밥 신세이지만 교문을 벗어난 인문학 강연에는 오히려 사람이 몰리고 있다. 그만큼 절박한 고민이 있다는 것이다.

150년 전 헨리 데이비드 소로(1845~1874)는 그의 저서 <월든>에서 세상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 것이 자기답게 사는 것인지를 잊어버리고 몸을 이리저리 굴리다가 죽음을 맞이하여 ‘이렇게 사는 것이 아니었는데..’라고 후회한다고 말했다.

지식 정보화 사회에서 새로운 창조는 무한한 상상력으로 만들어진다. 여기서 인정받는 자질은 창의력과 통찰력이다.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상상력과 영감, 한쪽으로 편중되지 않는 균형감각, 시대를 꿰뚫는 통찰력이 필요한 시대이다. 오죽하면 가수 싸이도 강남스타일에서 ‘근육보다 사상이 울퉁불퉁한 사나이’를 외치지 않았는가.

생텍쥐페리가 쓴 <어린왕자>에 이런 말이 나온다.

“만일 당신이 배를 만들고 싶다면 사람들을 불러 모아 목재를 가져오게 하고 일을 지시하고 일감을 나눠주는 일을 하지마라. 대신 그들에게 저 넓고 끝없는 바다에 대한 동경심을 키워줘라.”

미국 노스웨스턴대학에서는 상상력을 키우기 위해 코난 도일(1859~1930)의 탐정 소설 <셜록홈즈> 시리즈를 강의시간에 읽게 했다. 진단을 내릴 때 거치는 임상적인 추론과정과 범인을 찾아내기 위해 증거들을 토대로 추리하는 수사과정이 유사하다는데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다. 의대에서 의학만 가르치면 의학적 담론에는 익숙할지 모르지만, 환자를 만나서 질병을 경험하는 것에서는 개인적인 인식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학생들에게 다르게 생각해 볼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은 사람을 상대하는 직업군에게 아주 중요하다. 사람이 하는 활동인 예술· 종교·철학을 공부하다 보면 그 사람에 대한 또 다른 인생에 대한 상상력이 생긴다. 현대인에게 전문적인 지식만으로는 부족하고 인문학적인 지식이 필요하다.

요즘 왕조시대의 유물로 낡은 유산으로 인식됐던 유학(儒學)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동양과 서양 모두에서 새로운 문명의 대안으로서 유학에 관심을 두고 있다. 유학이 뜻하는 바를 현실에서 실천하고자 할 때 유교(儒敎)가 된다. 유교는 사후세계와 영적인 세계를 지향하는 다른 종교와 달리 현실 생활을 규율하고 사람다운 인격을 기르고 인간관계의 질서를 규율하는 행동규범이다. 따라서 현대사회에서 필요한 인문정신, 인성교육, 가정교육에 대한 무한한 콘텐츠를 갖고 있다. 이제 유학은 자본주의 병폐를 치유할 새로운 시대정신으로 떠오르고 있다.

‘한 나라의 과거를 알고 싶으면 박물관에, 현재를 알고 싶으면 시장에, 미래를 알고 싶으면 학교나 도서관에 가보라’는 말이 있다. 대한민국과 같이 자원이라고는 사람 밖에 없는 나라에서는 교육과 지식이 국가경쟁력의 주요 동력인 우리에게 인문학이야말로 최강의 강소국으로 발전할 수 있는 수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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