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용 칼럼] 12일 열리는 ‘1만원 콘서트’

KBS TV 프로에 ‘러브인 아시아’가 있었다. 올해 초 폐지됐다. 한국으로 시집온 이민여성과 그 가족의 삶을 보여주는 프로였다. 베트남 미얀마 필리핀 등 주로 동남아 여성들이 주인공으로 많이 나왔다.

역경 속에서도 꿋꿋하게 살아가는 다문화가정의 삶을 보여줬다. 착한 한국인 사위가 아내와 함께 만리타국의 처가를 찾아가는 장면도 꼭 나왔다. 우리나라의 60~70년대 농촌과 비슷한 풍경, 사위보다 더 착해 보이는 장인 장모와 그 가족들이 이민족 사위와 어울리는 모습은 늘 감동을 주었다.
 
자신의 딸이 한국이란 나라에서 낳아 데려온 이국적인 외손자를 바라보는 눈빛은 더 애틋해 보였다. 외손자는 가족들 사이에선 아무런 문제가 없다. 부부에겐 소중한 아들이고 이국의 장인 장모에게도 귀여운 외손자일 뿐이다.

다문화 대안학교 ‘R-스쿨’ 학생들이 중앙과학관에서 과학 공부를 하는 모습

‘만리타국 외할아버지’의 한국 외손들이 겪는 문제들

그러나 외손자는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는 다문화가정이 처한 문제와 씨름할 수도 있다. 그는 자신이 여느 친구들과는 다른 환경에 있고 친구들이 바라보는 시선도 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정체성의 혼란을 겪거나 이 때문에 심하게 방황할 수 있다. 다문화가정 초등학생 자녀의 40%가 학교를 떠난다는 통계도 있다.

외손자의 고민과 방황은 개인문제로 끝나지 않을 수 있다. 그런 아이들이 많아지면 가족만의 문제가 아니다. 정체성 고민을 해결하지 못하고 방황을 계속하게 된다면 우리 전체의 문제가 될 것은 불문가지다. 미국이나 유럽에서 빈발하는 증오범죄도 뿌리는 이런 문제와 닿아 있다.

2015년 현재 우리나라 다문화가정 학생은 8만3000여 명으로 전체 학생의 1.4%지만 증가 추세가 가파르다. 2013년엔 0.86%, 2014년엔 1.07%였다. 대전시(2013년)에는 결혼이민자가 4900명이고, 자녀는 4300여 명이다. 자녀 가운데 초중학생은 1100명 정도다.

정부 예산은 오히려 줄고 있다. 윤관석 의원(새정치연합)이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다문화가정 자녀교육 관련 예산은 전년보다 37% 줄었다. 시도교육청이나 지방자치단체도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대전의 경우 몇 개 학교에서 다문화가정 담당교사 1명씩을 배치한 것이 전부라고 한다.

정부 외면 속 작은 다문화 대안학교 ‘R-스쿨’의 분투

정부보다 오히려 시민단체가 이 문제를 더 걱정하고 있다. 대전에는 다문화 대안학교인 ‘R-스쿨’이 있다. 2013년에 문을 열었다. 시민단체라기보다 다문화가정 자녀 문제를 고민하는 사람들의 작은 모임에 가깝다. 전국적으로 지방자치단체나 민간에서 운영하는 다문화 대안학교는 60여 곳에 이르지만 대전 충청에선 ‘R-스쿨’이 유일하다. R은 Rainbow(다문화) Red(열정) Revolution(혁신)의 의미라고 한다.

R-스쿨에는 공무원, 유치원 원장, 대학교수, 예술단체 관계자, 노인복지관장, 중소기업 대표, 지방신문기자, 인터넷언론기자 등 17명이 참여하고 있다. 명단을 보니 필자는 처음 보는 이름들이 대부분이다. 박춘자씨(에듀비전 한국교육사회적노동조합 대표)가 이사장을 맡고 김영호씨(충남도청 공무원)가 총무일을 한다. 회원들이 내는 연 30만원의 회비로 운영된다.

규모로 보면 학교라 부르기도 어렵다. 물론 비인가(非認可) 학교다. 교육청이나 지방자치단체에서 지원받을 자격도 없다. 그래도 이런 학교에 25명이 다닌다. 모두 자발적으로 나오는 학생들이다. 교실은 대전 동구 정동 국제친교센터 소망교회를 빌려 쓴다. 이 교회 장광진 목사는 R-스쿨 교장이다. 수업은 토요일 오전 10시에 시작해서 오후 4시까지 계속된다. 점심과 등하교 차량은 학교에서 제공한다.

2014년 대전지방경찰청 강당에서 열렸던 기금 마련 콘서트
아이들은 과학이나 음악시간을 좋아한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만 가르칠 순 없다. 아이들이 왕따 당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심리치료와 예방도 중요하다. 교육의 가장 큰 목적은 다문화가정 아이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는 것이다. 총무 김영호씨는 “심리검사를 해보면 자존감이 떨어지거나 공격성이 과도하게 나타나는 등 불안요소가 많은 편”이라고 했다.

교사 인력은 재능기부를 받고 있지만 예산은 턱없이 부족하다. 그래서 1년에 한번 기금 마련 콘서트를 연다. 작년엔 대전지방경찰청이 강당을 제공했다. 올해는 12일(토) 오후5시 동구 원동 위캔센터(구 동구청)에서 열린다. 오카리나 색소폰 연주 마술쇼 등이 진행된다. ‘그대 품에 잠들었으면’의 가수 박정수 씨도 온다. 작년에도 왔었다.

함께 책임져야 할 ‘다문화가정 자녀 교육’

박 씨 등 모든 출연자는 재능기부로 오지만 콘서트 티켓은 1만원이다. ‘R-스쿨’ 회원들은 지금 티켓을 소화하느라 애를 쓰고 있다. 지금은 벌초 기간이다. 시간이 안 돼 콘서트에 갈 수 없는 사람도 있겠다. 하지만 이런 티켓은 사서 묵혀도 좋을 것 같다.

‘러브인 아시아’에서 보았던 만리타국 외할아버지의 한국 외손들은 지금 대전에서도 하루가 다르게 커가고 있다. 그들의 애틋하던 상봉장면은 이제 ‘다문화가정 교육’이란 과제로 바뀌어 있다. 외손자가 탔던 동남아행 비행기 티켓은 방송사에서 제공했겠지만 그를 위한 ‘교육 티켓’은 우리 모두가 부담해야 할 몫이다. 시도교육청과 지방자치단체도 함께 고민할 문제다.

*R-스쿨 : 010-5424-0582
*후원계좌 : 농협 302–0751–8767–51(황인경)

다문화 대안학교 돕기 콘서트에 재능기부로 출연하는 박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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