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임영호의 시닝~라싸 청장철도 여행기

3박 4일 일정의 제주도 자전거 일주를 마치고 집에 온 시각은 10월 13일 새벽 1시였다. 오전 8시 중국행 비행기를 타려면 최소한 새벽 4시에는 출발해야 한다. 서둘러 짐을 챙기고 준비를 마쳤다. 얼마 전 유라시아 친선 특급열차 출장 경험 덕분인지 짐은 비교적 간단하게 꾸릴 수 있었다. 서울과 북경의 날씨는 큰 차이가 없다고 한다. 서울보다 1도나 2도 정도 높을까. 조금 더울 수도 있겠다 싶어 옷을 가볍게 준비했다.

이번 중국여행은 북경에서 청해성 중심도시인 시닝으로 가서 청장(靑藏)철도를 타고 티벳자치구 주도인 라싸에 가는 것이다. 북경의 보안 절차는 까다롭고 딱딱했다. 모든 항공기는 물론이고 기차 탈 때, 역구내에 들어갈 때도 신분증을 제시해야했다.

몸수색은 물론이고 짐 검사도 철저했다. 기차를 타면서 비행기를 탑승할 때처럼 보안절차를 거치는 나라는 중국밖에 없을 것이다. 아마 14억에 달하는 국민과 우리나라의 96배에 달하는 엄청난 영토를 관리하기 위한 방법이 아닐까 싶다. 최우선이 통제와 관리이고 그 다음에 서비스가 가능하리라.

2500년 전 한나라 군사 요충지 시닝

북경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시닝으로 가는 비행기 수속을 밟았다. 지방으로 가는 비행기는 북경 수도공항의 제2청사에서 출발한다. 남방항공 10시 45분 비행기다. 시닝에는 정확히 오후 1시 30분에 도착했다. 중국의 국내항공은 경쟁력이 있다. 영토가 넓다보니 자국 내에서도 몇 시간씩이나 걸리는 비행기 편이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시닝은 중국의 서부지역에 위치해 있다. 이곳은 주위가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형 도시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니 한동안 사막이 계속되었다. 살기가 녹녹치 않을 것 같다. 중국 해안에 있는 도시들 하고는 달랐다. 시닝의 차오자바오 공항에서 내리자마자 쌀쌀한 공기가 온 몸으로 느껴졌다. 영상 6도정도 된다고 한다. 새벽에는 영하 1도에서 2도정도 되지만, 한 낮에는 16도나 된다고 한다. 기온차가 엄청나다.

시닝 역까지는 버스로 갔다. 나무는 손으로 셀 정도로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 적은 나무위로 단풍이 물든 걸 보니 가을이 왔나보다. 노랗게 물든 것이 ‘우리보다 가을이 먼저왔구나’ 싶다. 산은 대부분 민둥산이었다. 해발 2,200m인 고원지대라더니 나무가 살지 않는가 보다.

나는 운전석 바로 위, 2층에 탔다. 승객을 많이 태우기 위해서인지 운전석 머리 위쪽으로 어중간한 높이의 2층 좌석이 만들어져 있었다. 버스에 타고 있는 승객의 대부분은 새까맣게 탄 얼굴에 작업복차림이었고, 옷을 잘 차려 입고 그나마 얼굴에 기름기가 있는 사람은 우리 일행뿐이었다.

시닝은 중국에서는 비교적 인구가 적은 220만 정도의 도시다. 그러나 황하의 상류에 있는 도시 중에서는 가장 큰 도시다. 이곳은 한족이 반이고 나머지는 마호메트교도인 회족과 티벳트족인 장족, 몽골족이 살고 있다. 가장 오래된 역사를 가진 도시 중 한 곳이다. 2,500년 전 한나라 때는 농업발전 덕분으로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 중요한 지역이었다. 특히 이곳은 중원에서 서역으로 가는 비단길의 길목에 있는 교통의 요충지였다. 지금도 고속도로나 철도로 상하이, 칭따오, 북경을 연결하기 위해서는 이곳을 거쳐야 하는 중국 서부지역의 교통 중심지이다.

일제 강점기 연상시키는 기차역 보안절차

시닝역의 규모는 이용객에 비해 엄청 컸다. 서울역의 약4배에 달했다. 우리는 시닝역에서 라싸로 가는 오후 2시 56분 기차표를 구했다. 1인당 495위안, 우리 돈으로 약9만원 정도였다. 시닝역은 지대가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역에서 시내를 바라보니 큰 빌딩과 아파트들이 한창 건설 중 이었다. 서부 대개발의 현장이다.

당초 우리는 일행 모두가 함께 들어갈 수 있는 4인 실을 구하려고 했는데, 표가 매진되어 6인실을 구할 수밖에 없었다. 중국에서는 기차표 구하기가 아주 힘들다고 한다. 탈 사람은 많고 열차는 한정되어 있어 위·변조나 사재기가 흔하기 때문이란다. 이 때문에 티켓마다 본인의 신분번호와 이름을 기록하는 “티켓 실명제”가 실시되고 있었다. 내 승차표에도 여권번호와 이름이 기록되어 있었다.

시닝역 안에서도 경찰견까지 동원하여 안전을 위한 보안검사가 철저히 진행되었다. 기차를 타러가는 문 앞에도 공안경찰이 앉아서 일일이 얼굴과 신분증을 대조하였다. 영화에서 본 일제 강점기 모습이 연상되었다.

점심은 회족이 운영하는 식당으로 가서 양고기를 먹기로 하였다. 택시로 이동했는데 9위안 정도를 냈다. 북경의 반값이다. 양고기와 소고기가 수육 형태로 나왔다. 양젖으로 만든 요구르트가 큰 컵 가득히 나왔다. 알아보니 야크나 황우로 만든다고 한다. 먹을 만했다. 이름은 쏸나이(酸奶)라 한다.

식사하면서 마셨던 차는 조금 짰다. 소금과 우유를 섞어서 만든 것 같았다. 일종의 곁들여 먹는 육수의 일종이란다. 나중에 책을 찾아보니 쑤요우차(酥油茶)라고 한다. 양고기의 느끼함을 덜 수 있었다. 그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영화 '방가방가'에 나오는 차양이 없는 둥근 흰 모자를 쓰고 있었다. 간단하게나마 한국어로 인사하는 종업원이 있어 분위기가 한결 부드러웠다

라싸는 해발 3760m에 위치해 있다. 과거 10여 년 전 백두산을 등반한 경험이 있어 이곳도 비슷하려니 생각했지만, 백두산보다 해발 1000m정도 더 높아서일까 온 몸에 느껴지는 기압차이가 엄청났다. 그런데, 이곳도 낮은 편이란다. 천장철도는 평균해발 4000m 이상이란다. 어떤 느낌일지 사뭇 기대된다.

평균 해발 4000m… 고원병 예방약부터 복용

고원 공포증이 느껴졌다. 점심을 끝내고 고원반응 완화약을 사기로 했다. 식당 근처 약국에 갔다. 약국 주인은 고원홍경천(高原紅景天)을 주었다. 검지 손가락만한 크기의 약병에 든 물약이었다. 열차 타기 전에 한 병, 라싸에 도착해서 한 병을 먹었다.

고산병은 길게는 일주일 정도 간다고 한다. 적당한 량의 물이나 차를 자주 마시고, 야채와 과일 같은 비타민이 풍부한 음식을 섭취하면 조금 낫다고 한다. 특히, 체력 소모를 줄이도록 권고하고 있었다. 더구나 저항력이 떨어진 감기 환자는 쉽게 고산병에 걸린다고 한다. 2005년 코레일의 이철 사장도 이곳에 와서 고산병을 크게 앓았다고 한다.

열차 안에서 읽은 안내책자는 나를 엄청 놀라게 했다. 격한 운동 후에는 산소 소비량이 증가하기 때문에 여기 오기 전 6개월간은 격한 운동은 삼가야 한다는 것이다. 일순 긴장했다. 큰일이구나. 3박 4일간 자전거로 제주도를 누볐는데....

오후 2시 50분쯤 라싸행 열차에 올랐다. 열차가 출발하기 5분 전에 벨이 울렸다. 각 차량마다 승무원이 열차 출입구에 부동자세로 서 있었다. 드디어 출발하는가 보다. 열차는 21시간을 계속해서 조금씩 조금씩 위로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반복하면서 티벳고원에 위치한 티벳자치구의 중심도시 라싸로 향했다.

시닝~라싸간 철도 1956㎞…고산지대 이르자 기관차 전기에서 디젤로

시닝에서 라싸까지의 철도길이는 1956㎞이다. 총공사비는 4조원이 들어갔고, 공사는 2단계로 나누어 진행되었다. 1단계는 1979년 시닝에서 거얼무까지였고, 나머지 구간은 2015년에 완공되었다고 한다. 2단계 구간 중 일부는 땅이 얼어붙는 동토지역이다. 동토지역은 약 500㎞로 이 구간은 특수공법에 의해 건설되었다. 특히, 해발 4000m 이상은 산소가 절대 부족하다. 산소가 부족하면 고산병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중국은 동토지역 건설과 산소문제를 해결하는데 40년이나 걸렸다고 한다. 건설공사는 4년 밖에 걸리지 않았음에 말이다.

열차는 동토지역에 이르자 다른 지역보다 느리게 운행되었다. 비동토지역은 시간당 120㎞정도의 속도였는데, 동토지역은 시간당 100㎞정도의 속도로 운행되었다. 우리나라의 무궁화열차 수준이다. 동력은 전기이나 좀 더 힘을 내야하는 구간부터는 디젤기관차로 바꾸어 운행한다고 한다.

창가로 보이는 풍경이 지난번 유라시아 특급열차 때 보았던 몽고의 초원과 유사하다. 산은 사막지대로 풀 한포기 없고, 들녘에는 가을걷이가 끝났는지 휑뎅그레 하다. 벼는 아니고 보리를 경작하는 것 같다. 시닝 차오자바오 공항에 내걸린 광고판의 보리와인 선전이 떠오른다.

시닝역을 출발하고 얼마 후에 호수가 나타났다. 기차는 호수를 끼고 거의 두 시간 정도를 가까이 왔다가 멀어지기를 반복했다. 바이칼호수보다는 작았지만 청해성이 자랑하는 청해호이다. 이 호수는 무려 1천4백만 평으로 깊은 곳의 수심은 20m에 이른다고 한다. 이렇게 높은 고원지대가 호수라니 놀랍기만 하다. 한마디로 하늘호수다. 고기도 산다고 한다. 물이 짜다는 것을 봐서는 빙하기 때 바다에서 육지로 변한 것이 아닌가 싶다. 멀리 파란하늘과 맞닿은 짙푸른 호수가 장관이다.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호수인지 구분이 안 간다.

몇 시간이 지났을 때, 같이 온 우리 직원이 깜짝 놀란 표정으로 과자를 내 밀었다. 한국에서 가져온 과자가 팽팽하게 부풀어 올랐다. 고산지대는 기압이 낮아 일종의 균형을 잡기위해 안에 있는 공기가 밖으로 미는 압력이 세졌기 때문이다. 내 만년필의 잉크도 물방울 모양으로 새어 나왔다.

밤10시 열차 소등, 숨 가빠 잠들기 어려워… 백두산 높이 2배 탕구라산맥

시닝에서 라싸 사이에는 5개의 역이 있다. 역마다 약6분정도 정차하였다. 처음 도착한 역은 거얼무 역인데, 이곳에서는 약20분 정도 쉬었다 출발했다. 이곳에서부터는 본격적으로 높은 지대로 올라간다. 기관차도 전기기관차에서 디젤기관차로 바꾸었다. 고산지대라 전기설비건설이 어려워서 디젤기관차를 운행하는가 보다. 보통은 한 대의 디젤기관차를 연결하는데, 이곳은 힘이 많이 드는 지형이라 2대의 기관차를 붙여서 운행했다. 특히, 거얼무 역에서는 산소부족으로 호흡이 곤란한 고객들을 위해 산소 호흡기를 준비해 높고 원하는 사람에게 지급하였다.

밤 10시가 되자 열차는 소등되고 모두 잠자리에 들었다. 잠깐 잠이 들었나보다. 누군가 가슴을 짓누른 것 같아 잠이깼다. 숨쉬기가 가빠 누워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나이가 나이인지라 나만 이런가 싶었다. 나중에 들어보니 우리 일행 모두가 숨쉬기가 어려웠단다. 다시 억지로 눈을 감았다. 갑자기 센 바람소리가 들렸다. 열차 안으로 부족한 산소를 공급하는 소리였다.

이 열차는 탕구라 산맥을 지나간다. 이 구간에서 제일 높은 고도는 5,072m이다. 백두산과 비교해보라. 높이가 두 배 가까이 된다. 산맥을 지나다보면 봉우리가 보이고 봉우리마다 모자처럼 쓰고 있는 만년설을 볼 수 있었다. 탕구라산은 티베트어로 ‘고원의 산’이라는 뜻이란다.

탕구라 역은 세계에서 제일 높은 역이다. 해발 5,068m에 위치해 있다. 역에서 보는 탕구라산의 설경은 무척 신비스럽다고 한다. 강우량이 풍부해서 생겨난 초원에 블랙 야크와 양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는 모습이 상상된다. 아쉽게도 이곳을 지날 때는 한밤중이었다. 사방이 보이지 않았다. 다시 올 때는 낮에 이곳을 지나는 열차를 타야겠다.

새벽녘 도착한 나취역, 숨 끊어질 듯 큰 고통 엄습

날이 스물스물 새어 사물이 보이기 시작할 때쯤 나취역에 도착했다. 열차가 역을 한참이나 빗겨서 정차했다. 역의 전면을 카메라에 담을 욕심으로 나도 모르게 역을 향해 뛰었다. 5m도 안 가 숨이 끊어질 듯 큰 고통이 나를 압박했다. 함께 간 직원들도 같은 증세였다. 특히 김기한 비서는 우리가 탑승했던 12호차에서 나취역사까지 약 100m나 되는 거리를 뛰다 걷다를 반복해가며 역사로 갔다. 그러나 역사 근처까지 가서는 한 발짝도 옮길 수 없어 끝내 역사의 측면만 간신히 찍고 돌아왔다. 까딱 잘못했으면 일행 한명 죽일 뻔 했다.

우리 일행이 묵은 열차의 6인실에는 낯선 승객이 한 사람 끼어 있었다. 그는 청해성 출신 한족 청년으로 우리에게 아주 친절했다. 물론 우리도 그에게 형제와 같은 호의를 베풀었다. 나이는 20대 후반으로 종점인 라싸역 앞에 있는 부동산 회사에 근무한다고 한다. 임금이 청해성보다 많아 불편하지만 그곳을 선택했다고 한다.

바로 옆에는 티벳족인 장족 가족들이 탔다. 유치원을 다닐만한 나이의 두 딸과 20대 중후반 부부, 60대 중반의 할머니, 할아버지였다. 그들은 전통복장을 하고 있었고, 일주일 이상 세수를 하지 않은 듯 한 얼굴이었다. 식사대용으로 말린 양고기를 가져와서 칼로 조금씩 베어 먹고는 뼈다귀를 통로에 그냥 버려버렸다. 우리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처음에 우리가 그 장족 가족들에게 말을 걸었을 때는 경계하는 듯 했으나, 아이들이 우리 방에 자주 놀러와 우리 직원들이 이것저것 챙겨주니 아이들이 우리를 좋아했고 그제서야 그들 부모들도 마음을 열었다. 그들도 역시 청해성 사람으로 목축을 한다고 한다. 나중에는 소 100마리를 기르고 있다고 우리에게 털어놓았다. 왜 라싸에 가냐고 물어보았는데 답을 듣는 것을 실패했다. 한족 청년이 그 가족과 대화를 했으나, 중국어 방언을 쓰는지라 도통 알아듣지 못하겠다고 했다. 아마 농한기라 티벳 불교사원으로 기도하러 가는 건 아닌가 싶다.

열차를 타는 동안 두 끼의 식사를 했다. 식당 칸도 있고, 열차 내에서 파는 도시락도 있었는데 아무래도 먹을 자신이 없었다. 가져온 컵라면과 햇반, 통조림 등으로 대신했다. 머리도 띵하고 가슴도 울렁거려 식욕이 없었다. 김기한 비서는 내가 열차 안에서 파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해 하자 이동 카트를 끌고 다니는 승무원 뒤를 끈질기게 쫓아가서 사진을 찍어왔다. 사진 속을 보니 닭발을 삶은 것이었다. 신기했다. 열차 내에서 닭발이라니?

약 21시간만에 티벳인들의 땅 라싸 도착…연 관광객 500만명

새벽이 다가오자 초원에서 풀을 뜯고 있는 블랙 야크와 양, 말, 소가 보였다. 이곳은 해가 8시가 되어서야 떳다. 라싸에 가까워질수록 나무들이 보였고, 크고 작은 강과 시냇물도 눈에 들어왔다. 초원에 목동들이 사는 집은 몽고식 게르가 아닌 일반적인 단독주택이었다. 중국정부가 무상으로 지어주었다고 한다. 멀리서도 집집마다 펄럭이는 중국 5성기가 보였다. 중국 정부가 소수민족을 원활하게 지배하기 위한 배려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열차는 예정 시간대로 오전 11시38분에 라싸역에 도착했다. 시닝역에서 2시 56분 출발하여 무려 21시간이나 걸렸다. 라싸역 청사는 생각보다 컸다. 중국 사람들은 만리장성이나 자금성, 천안문 광장처럼 무엇이든지 커야 직성이 풀리는 것 같다. 서울역사보다 약 3배 정도 큰 건물이었다. 그 건물은 티벳의 상징적 색깔인 주황색과 흰색, 노란색이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주황색은 힘을 뜻하고, 흰색은 평화, 노란색은 종교를 상징한다고 한다. 티벳궁이나 불교사원도 이 세 가지 색깔이 중심이었다.

광화문 광장과 같은 이 역의 광장은 누구도 들어가지 못했다. 무장경찰과 군인들이 통제하고 있었다. 티벳인들은 자기들의 땅에 지어진 이 역의 광장에 한 발짝도 들어서지 못하는 딱한 처지에 있었다. 1950년 나라를 빼앗긴 후 지금까지 이런 서글픈 신세 속에 산다고 한다. 이곳에서 방을 구하기는 정말 어렵다고 한다. 천장 열차가 개통하고부터 관광객이 밀려들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연 관광객이 500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그리고 관광객 증가율이 매년 20%나 된다고 한다. 고산지대인 이 티벳에만 말이다. 실로 놀라운 일이다.

이곳에서 개인여행은 할 수 없다. 여행사를 끼지 않으면 관광을 못하는 시스템이다. 잠바라는 이름의 가이드는 티벳인이다. 영어로 설명했다. 고등학교를 나와서 3년 간 이 지역 영어학원에서 공부했다고 한다. 여기서 일하는 조선족 가이드는 2명밖에 없어 우리까지 차지가 오지 않았다.

해발 3658m 티벳어로 '성지'… 불교도들의 순례지

라싸는 3,658m의 고지에 위치해 있는데, 라싸는 티벳어로 “성지”란 뜻이다. 티벳 자치구의 수도이면서 불교인들이 수도하는 순례지이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우리나라의 가을하늘보다 더 푸른 코발트빛 하늘과 뭉게구름이었다. 저렇게 푸른 하늘을 본적이 있는가. 하늘과 가장 가까이 사는 이들에게 주어진 특권이리라.

그들의 얼굴은 아주 까맣게 그을려 있었다. 이곳은 자외선이 강하고 연평균 일조량이 아주 많은 곳이다. 더군다나 주름살이 얼굴 가득해서 우리보다 적어도 10년은 더 늙어보였다. 게다가 나라를 잃은 처지라고 생각해서인지 왠지 슬퍼 보이기까지 했다.

우리가 그곳에서 머문 시간은 약 반나절 정도였다. 나는 왕궁인 포탈라 궁과 불교사원인 조캉사원을 보고 싶었다. 그러나 포탈라궁의 관광은 불가능했다. 그 곳은 아침에만 오픈한다고 한다.

티벳의 역사는 1,30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기 641년 “송첸캄포”라는 토번왕이 처음으로 부족들을 통합하여 나라를 세웠다.

그는 당태종의 딸 문성공주를 왕비로 맞아들였다. 왕은 먼 타국으로 시집 온 왕비를 위해 9층 999개 방으로 된 왕궁을 지었는데, 그 궁이 포탈라궁이다. 지금은 전쟁과 화재로 본채만 남아있다. 구도심 중앙에 자리 잡은 이 궁은 작은 야산 꼭대기에 위치하고 있어 계단으로 올라가게 되어 있었는데, 직접 안에 들어가지 않고 거리에서만 봐도 전체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송쳰캄포는 유능한 정치가였던 모양이다. 당시 이웃의 강한 국가들과 평화와 상생의 표시로 혼인정책을 썼다. 그런 차원에서 인도의 브리쿠티 공주도 왕비로 삼았다. 그는 그녀의 반지가 빠진 호수에 사원을 짓겠다고 그녀에게 약속했고 그 약속대로 호수를 메꿔 불교사원을 만들었다. 이 사원이 바로 조캉사원이다.

이 사원에는 큰 바다와 같은 스승이라는 뜻의 달라이라마가 머무는 방과 법문하는 자리가 마련되어 있었다. 현 달라이라마는 14대로 지금은 망명중이다. 달라이라마는 사후 환생하여 직을 계속 수행하는 체제로, 죽기 전에 자신의 탄생과 관련된 단서를 남긴다고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같은 시기에 태어난 아이들을 대상으로 시험을 치러 달라이라마의 화신으로 인정하여 키워간다고 한다.

이곳 라싸에 오면 적어도 하루는 휴식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조언하고 싶다. 고산증이 있어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우리 일행은 머리가 아프고 숨이 가빠 커피숍에 앉아 잠시 쉬기 위해 조캉사원을 감싸고 있는 빠지아오지에라는 거리에 갔다. 빠지아오지에는 가장 오래된 순례길로, 성스러운 길로 여겨진다. 지금은 그 길가에 상점이 입주하여 관광상품을 파는 쇼핑거리가 되었다. 이리저리 커피숍을 물어서 찾았으나, 이곳에는 그 흔한 스타벅스 하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방처럼 생긴 찻집으로 가서 홍차에 우유를 섞어 설탕으로 만든 차로 대신했다. 한잔에 1위안이었다.

오늘 저녁에는 티벳의 전통음식은 못할 것 같다. 그저 입 맛 가는대로 먹지 않으면 안 되는 상태이다. 살기 위해서다. 몸이 비정상이니 만사가 귀찮다.

고속철도 당분간 중국 독주될 것… 철도 운영 능력 강한 한국과 상생 방안 찾아야

나는 이번 여행에서 두 가지를 느꼈다. 하나는 고속철도는 당분간 중국의 독주가 될 것이라고 장담한다. 청장열차 하나로 설명이 가능하다. 어떠한 환경에서도 최단기에 최저 비용으로 건설할 수 있는 국가는 중국이다. 다만 철도 운영 면에서는 아직 우리나라보다 훨씬 못한 것 같다. 그들은 서비스보다는 통제위주의 운영이다. 마지막 날 돌아본 북경남역도 그렇다. 중국과 우리의 장점을 살려 상생하는 방법을 찾아보는 것도 좋으리라.

두 번째는 티벳의 독립문제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독립은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다. 가장 최근에 벌어진 티벳의 격렬한 독립운동은 1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티벳 자치구의 당서기는 현 시진핑 주석 전임자인 후진타오 주석이었다. 그는 당시 독립운동을 철저히 진압하여 원로들의 신임을 얻어 승승장구했다. 후진타오는 청장열차가 개통되자 가장 기뻐했다고 한다. 왜 그랬을까? 이 개통으로 자본력 있는 한족들이 이곳에서 떼돈을 벌려고 너도 나도 여기에 와서 자리 잡으면 티벳족과 한족의 비율이 역전될 수 있다. 그러면 티벳 내에서 티벳족이 진짜로 소수민족으로 전락 될 수 있다. 이미 티벳인구 100만명 중 한족과 티벳족의 비율은 50대 50이라고 한다.

관광을 일찍 끝내고 시내 한 바퀴를 차로 돌아보았다. 신시가지는 한참 건설 중이었다. 새로운 상가도 요 근래 많이 생겼다고 한다. 가이드 말에 의하면 상가의 주인들은 전부 한족이라고 한다. 머지않아 연변자치주의 조선족 같은 신세가 될 것 같다. 중국의 일대일로 정책은 여기서도 힘을 발휘하는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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