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트의 눈] 언변보다 일 잘한 도백 소리 듣기를

안희정 지사님께!

지사님, 저는 국회와 청와대를 출입 중인 <디트뉴스24> 류재민 기자입니다. 어제 국회에서 뵀죠. 24시간이 뭐에요, 오후 4시 30분쯤 만났고 지금이 새벽 2시니 10시간도 채 안됐네요.

야심한 가을 밤 지사님께 처음으로 편지를 띄웁니다. 오히려 새벽이 고즈넉하고 정신이 맑아 글을 쓰기에 좋습니다. 제가 존경하는 안희정 지사님, 항상 고맙고 응원합니다.

충청권을 대변하는 기자를 떠나, 저 역시 200만 충남도민의 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도백의 자리에서, 도민의 안위와 도 발전을 위해 불철주야 여념 없는 지사님에 비해 한없이 부족한 위치에서 더 돕지 못함에 죄송스런 마음도 듭니다.

어제였지요. 지사님께서 충남도의 다섯 개 현안을 갖고 국회 예결위 여야 간사를 만나러 오신 것이. 갑작스런 방문 소식에 저 뿐만 아니라 국회를 출입하는 충청권 기자들 모두 의아했습니다. 의아함은 그저 늦은 시간대여서가 아닙니다. 타이밍이 늦은 것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이지요.

실무진을 통해 알려지지 않은 배경은 들었습니다. 그래도 왜 좀 더 일찍 올라와 충남도의 현안을 어필하지 못했을까 하는 아쉬움은 여전합니다. 여야 간사 일정이 워낙 빠듯한 건 알지만, 진작부터 움직였으면 수행한 공무원들도 한결 수월했을 거라는 생각입니다.

그렇습니다. 수행직원들, 어제 무척 바쁘고 정신없었을 겁니다. 부랴부랴 예결위 여야 간사에게 내보일 자료를 챙기고, 지사님 도착 시간에 맞춰 의원회관에서 대기했어야 하니까요. 하급자들에게는 지사님 같은 직속 상관의 국회(서울) 방문은 그 자체가 긴장되고, 부담이니까요.

그런데요 지사님, 과연 어제 국회 방문이 정말 충남도와 도민을 위한 국비 확보 차원이었는지 여쭙고 싶습니다.

실로 예산을 확보하기 위한 진정성 있는 '로비(lobby)'였다면 굳이 다수의 수행직원들을 대동하고 국회를 찾아야 했을까요? 도 차원의 보도자료를 제공하고, 카메라까지 세워놓고 "저 다녀갔어요"하는 인증 샷을 꼭 찍었어야 했을까요?

이미 예결위 예산심의는 20여일 전에 시작됐습니다. 그리고 어제는 예결위 '알짜'로 불리는 예산안소위 구성도 끝났습니다.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이미 한발 늦은 바에야 충청권 몫 여야 의원들을 사전 수배해 오늘이든 내일이든 찾아뵙고 지역의 국비 예산을 청하는 것이 보다 효율적이지 않았을지요.

더구나 이번 예산안소위에는 직전의 새누리당 홍문표 의원(홍성·예산)과 새정치민주연합 박완주 의원(천안을)처럼 충남 의원들이 한명도 포진하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더더욱 이번에 들어간 충북의 새누리당 이종배 의원(충주)과 새정치연합 박범계 의원(대전 서을)을 만났어야 합니다.

축하 인사를 구실로라도 충청권에서 진입하지 못한 예산안소위에 충남의 현안을 어필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그저 사진이나 한 장 박은 다음 자료를 뿌려 "도지사가 국회까지 올라가 이런 사람들을 만나고 왔음에도 (국비확보가)안 되데요"하는 면피용 증거로 삼으려 했던 것 아닌지 의심마저 듭니다. 자고로 로비라 함은 드러내 놓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남몰래 하는 것이지요.

익히 들어 아시겠지만, 지역에서는 지사님을 차기 대권 주자로 부릅니다. 이렇다 할 맹주가 없는 충청권에서 지사님만한 역량과 정치력을 가진 인물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지사님께선 행보 하나하나에 신중해야 합니다. 무엇이 진정 충남도와 도민을 위한 길인지를 먼저 판단하셔야 합니다.

진정한 예산 로비는 공개적으로 자료를 뿌리고 사진을 찍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식으로 예산을 따왔다면 타 지역은 충남보다 더하면 더 했지 못하진 않았을 겁니다. 충남도를 위한 일보다 지사님 개인의 정치적 행보에 치중한다는 주변의 지적과 견제를 간과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4년 전, 나사렛대 특강 때 유성기업 사태와 관련해 지사님께선 "저는 충남에 좋은 기업들이 투자해 좋은 일자리와 도민들이 행복한 중산층으로 성장하기 원한다"고 하셨습니다.

당시 이 기사를 쓴 제게 처음으로 전화해서 "고맙다"고까지 하셨지요. 그 전화를 받은 저는 아직도 그 순간을 잊지 않고 기억합니다. 지사님의 도민을 위한 '진정성'이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재선 도지사가 되신 지금, 그리고 향후 대권 주자 반열에 오른 작금의 지사님 행보는 과연 제가 그때 알았던 그분이 맞나 싶을 정도입니다.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수령직은 반드시 교체가 있기 마련이다. 교체되어도 놀라지 않고 벼슬을 잃어도 연연해하지 않으면 백성들이 존경할 것이다."

후일 대통령이 되든, 평범한 민초로 돌아오든 시대의 역사 속에서 "언변보다 일 잘한 충남도지사"란 소리를 듣기를 간구합니다. 도백으로서의 진중함과 가볍지 않은 처신이 필요한 때입니다. 늘 건승하시고, 충남도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2015년 11월 12일 새벽 <디트뉴스24> 류재민 기자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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