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호 교육칼럼] 중부대학교 한국어학과 교수

장모님은 치매 초기다. 자주 복통을 호소하곤 하셨다. 병원에 가면 치매로 인한 신경성 복통이라고 한다. 한 동안 진통제로 버텼다. 사람들은 배가 아프다고 하니 여기저기서 처방을 내 놓는다. 감이 좋다고 하는 사람도 있고, 송치(임신한 소의 뱃속에 있는 송아지)가 좋다고 하는 사람도 있고, 좌욕이 최고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장모는 젊어서부터 이런 증상이 있었다고 별거 아니라고만 하신다. 불효한 필자는 그런 줄만 알고 동네사람이 좋다는 것은 다 해 봤는데 속알이는 낫지 않았다.

지난 여름 새벽에 고통을 호소하는 노인을 모시고 병원에 갔다. 밤새 진통제로 버티고 아침에 주치의가 오자 필자는 무조건 내시경하자고 우겼다. 그러나 체력이 약해 내시경은 할 수가 없었다. CT를 찍었더니 쓸개에 이상증세가 감지되었다. 큰 병원으로 옮겨 확인하니 쓸개와 총담관에 10개 정도의 돌이 박혀 있었다. 바로 수술하고 지금 장모는 쓸개없는 노인이 되었다. 그리고 복통을 호소하는 일은 없어졌다. 자칫하면 사람들 말만 듣고 아픈 노인에게 뜨거운 물찜질만 할 뻔했다. 동네사람보다는 전문의가 필요한 이유다.

민주주의에서 큰 모순이 있다면 다수결의 원칙이다. 뭐든지 대중이 원한다면 그대로 되는 것이다. 증세가 분명하지 않을 때는 대중요법을 이것저것 써 봐도 되지만 증세가 확실할 때는 정확한 처방대로 해야 한다. 수술을 하든지 약물을 쓰든지 전문가에게 맡겨야 한다. 이웃들의 말대로 계속 감을 드시고 뜨거운 물로 마사지만 했다면 지금 쯤 또 아파서 소리를 치실 것이다.

틀림없이 강릉은 동해 쪽에 있는데 대중들이 투표해서 배를 타고 서쪽으로 가야한다고 결정이 났다고 서쪽으로 가야하는가? 강릉을 가는 것은 눈에 보이기나 하지만 교육정책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답이 금방 나타나지도 않는다. 30년 후쯤에 결과가 나타나는 것이 교육정책이다.

지금 우리의 교육이 바로 이런 시점에 와 있다. 국사교과서 문제도 그렇고 고교평준화문제도 그렇다. 국정교과서나 검인정교과서문제는 접어두고 평준화문제만 살펴보자.(대학교단에 서 있는 필자는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검인정교과서와 국정교과서의 의미를 아느냐고 질문을 자주 한다. 사실 의미를 모르는 사람이 훨씬 많았다.)

우리의 고교평준화문제는 이미 30년 전에 대도시에서 시도하였고, 그리 좋은 결과를 얻지는 못했다. 대중의 힘, 혹은 정치적인 힘으로 평준화하여 많은 후학들이 학력저하를 경험했다. 세종시에서는 상향평준화라는 말장난으로 중학교 1,2학년 학생들에게 투표하여 평준화해야 한다고 결과물을 내 놓았다. 이러다가 교육감도 중학교 1학년 학생이 하게 생겼다. 미래를 봐야하는 정책을 중학교 1,2학년이 정하는 것이 말이 안 된다.

이익집단인 그들의 학부모에게 질문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근거리 원칙도 없다. 학교가 부족하니 그럴 수밖에 없다. 운동장 위에 건물을 올리는 방법도 있을 텐데, 그저 LH탓만 하고 있다. 땅을 달라고 울어는 봤는지 모르겠다. 원칙 없이 고교평준화를 급하게 시도하려고 편법을 다 동원하고 있다. 그 결과는 30년 후에 나타날 것이니 관심이 없다. 

교육정책은 인기있는 정책이 아니다. 미래를 위한 계획이기 때문이다. 미래의 직업을 마련해 주는 정책이 되어야 한다. 지금은 버스안내양이나 구두닦이 등의 직업은 사라졌다. 요리사가 뜨고 있다. 미래엔 어떤 직업이 사라지고 나타날 것인가 예측하고 창의성을 키워야 한다.

교육은 교육전문가가 정책을 세워야 하고 다른 나라의 선례를 검토하여 합당한 것일 때 활용해야 한다. 일본에서는 고교평준화로 인해 10년을 잃어버렸다고 자인했다. 그리고 평준화를 폐지하고 다시 경쟁시대로 돌아가고 있다. 일본이 10년을 잃어버리고 헤매는 동안 우리나라는 비약적인 발전을 했다. 1970년대 북한보다 못 살았지만 지금은 일본과 거의 비슷한 대열에 접어들고 있다. 이것은 고교평준화세대보다는 경쟁사회에서 성장한 기성세대의 역할이 크다. 평준화로 일본이 제자리걸음하고 있을 때 우리는 비약적으로 발전한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일본은 평준화를 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에서는 평준화로 가고자 한다. 참으로 알 수가 없다. 인기위주의 정책은 자칫 파멸을 초래한다. 조급하게 시행한 제도는 실패하게 되어 있다.  이제 막 시작하는 도시, 그것도 세계 최고의 교육시스템을 자랑하는 세종시에서 평준화를 시도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필자는 30년 넘게 교단에서 지켜보았다. 교육에 관해서는 누구보다도 전문가라고 자부한다. 아이를 사랑하면 질문하는 것부터 가르쳐야 한다. 학교에 가서 그냥 앉았다 오는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 질문하고 돌아올 수 있도록 지도해야 한다. 교육은 똑같은 인간을 만드는 것이 아니고 각자의 재능을 살려 창의적인 인간을 만드는 것이다.  질문하며 경쟁했을 때 창의성은 자라난다. 경쟁사회에서 성취했을 때 만족도는 더 크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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