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트의 눈] '안희정 편지', 그 후의 이야기

충청을 대표하는 인물 반기문 유엔사무총장과 안희정 충남도지사.

반응은 꽤나 뜨거웠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후폭풍은 짐작 이상이었다. 일주일 전 안희정(50) 충남지사에게 보낸 편지, 그 후의 이야기다.

주변으로부터 격려와 응원의 메시지를 많이 받았다. "잘 봤다, 안 지사에게 그런 직언을 할 사람이 필요하다"는 인사가 주였다. 물론 칭찬만 들은 건 아니다. "도대체 디트는 왜 그래? 충남도나 안희정 지사한테 무슨 불만이라도 있는 거야?"라는 소리도 직간접적으로 들었다. 문제는, 이 말 대부분이 도청 내부에서 나왔다는 데 있다. 지역의 언론인으로서 정중하고 예의를 갖춰 도백에게 겸손하게 올린 편지를, 그들은 마치 주군에 대한 저항과 반감으로 받아들이는 듯했다.

불쾌를 넘어 한심했다. 주군의 눈과 귀를 막고 감언이설(甘言利說)만 늘어놓는 십상시(十常侍: 여기선 도지사 측근)가 조직 전반을 흔들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마저 들었다. 충심으로 쓴 편지(기사) 한통에 이렇게 요란을 떨어야할 만큼 주군에 대한 믿음이 없나. 200만 충남도민이 선택한 도지사가 이런 형편없는 조직을 거느리고 있다니. 또 그런 자가 이 나라의 차기 대권 후보라니. 기가 찰 노릇이다.

요 며칠 내 기사에서 안 지사와 함께 가장 '핫'한 인물은 반기문(71) 유엔총장이다. 조만간 유엔 사무총장 자격으로 북한을 다녀올 것 같다. 한반도와 국제정세, 특히 북핵 문제와 관련해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과의 만남 가능성도 높다. 최근 출간된 <99% 반기문 대통령>(박종열 저, 사닥다리)을 읽고 난 뒤 내게 반기문은 '긍정의 아이콘'으로 다가왔다. '관리의 대상'으로 다가온 안 지사와는 사뭇 다른 접근이다. 난 이제껏 안 지사는 100번도 넘게 만나긴 했어도, 반기문의 실물은 멀리서라도 한 번 본 적 없다.

두 사람의 공통분모를 찾는다면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다는 것. 반기문은 충북 음성의 정미소 일꾼의 아들, 안희정은 충남 논산의 철물점집 둘째 아들이다. 두 사람 사이에 20년이란 시간차는 있지만, 그 시절 그 땐 나라 전체가 다 어렵고 가난했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두 사람에게서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충청 대망론'이다. 차기 여야의 잠룡들로 회자되고 있기 때문. 그러면 '지금' 누가 우위에 있는가. 아니, 다시 묻겠다. '충청 역할론'을 '충청 대망론'으로 이끌 적임자는 둘 중 누구인가.

나는 '안희정 보다 반기문'이다. 단순한 감정적 선택은 아니다-또 한 번의 후폭풍을 막기 위해-두 가지 근거를 통해 견해를 밝히겠다.

지난 16일자 <아주경제> 창간 8주년 여론조사 결과.

우선, 가장 쉬운 평가인 여론조사다. 양대 정당의 대선 후보 결정은 여론조사에 의해 좌우되는 경향이 높다. 우세를 보이는 후보 쪽으로 투표자가 가담하는 '밴드왜건 효과(bandwagon effect)'가 일어나기 때문.

반기문은 지금 각종 여론조사 차트에서 부동의 1위를 달리고 있다. 안희정은 중하위권을 오르내린다. 가장 최근(16일) <아주경제>가 발표한 창간 8주년 여론조사에서 반기문은 차기 대통령 적임자 1위(21.1%), 안희정은 6위(2.5%)를 기록했다.

좀 더 거슬러 올라가 <데일리한국·주간한국 2015년 신년 여론조사>는 반기문이 1위(39.7%), 안희정은 7위(3.2%)였다. '성완종 리스트' 사건 이후 여론조사(같은 언론사 자료)에서도 반기문은 36.4%로 1위에 올랐다. 연령대도 20대와 60대에서 고른 지지를 받았다. 물론 여론조사는 언제든 뒤집어질 여지가 분명 있다.

내가 '안희정보다 반기문'인 다음 이유는 리더십의 차이에 있다. 안희정이 외유내강(外柔內剛) 형이라면, 반기문은 외유내강강(外柔內剛剛)형이다. 부드러우면서도 강하며, 강함 속에 강함이 더 있다. 반기문의 리더십은 '도광양회(韜光養晦: 빛을 감춰 밖으로 새지 않도록 하면서 은밀하게 힘을 기른다)' 스타일이다. 반기문을 한 번도 본 적 없다면서 그의 속을 어떻게 아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럼 이건 어떤가. 반기문 본인은 누차 언론을 통해 "국내 정치에 관심없다"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대선에 출마하지 않겠다"는 말도 안한다. 그런데도 앞서 언급했듯이 그에게 향하는 국민적 지지(여론조사)는 식을 줄 모른다. 얼굴한번 본적 없는 나도 지금 반기문 옆에 서 있지 않은가. 그는 임기가 끝나는 내년 12월까지 이 기조를 유지하며 유엔사무총장으로서 직분에 충실할 것이다. 그런 뒤 시대와 국민의 부름이 있다면 그는 출마할 것이다. 지금은 발톱을 숨기고 있을 뿐이다.

안희정은 어떤가. 반기문은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정치적 행보에 제약을 많이 받는다. 더군다나 국내 정치 행보는 더 어렵다. 마찬가지로 안희정 역시 공직자 신분으로 정치적 활동이나 행보에 있어 운신의 폭이 넓지 못하다. 그런데도 그는 도정에 대한 관심보다 국회며 대학, 지자체를 꾸준히 돌아다니며 이미지 정치에 몰두한다. 오죽하면 언론과 도의회로부터 "과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가.

'친노 프레임'을 깨는 것만큼이나 도지사로서 도민에게 더 낮은 자세로 다가가는 것이 중요하다. '정치보다 일 잘하는 도지사' 소리를 들으면 민심이나 당심은 절로 따라온다. 언제까지 실체를 두고 의문부호만 낳는 '3농(農)'과 집권을 해야만 가능해 보이는 '지방분권'만 외칠 텐가. 새로운 대안을 만들어낼 궁리를 충남도정에서부터 찾길 바란다. 역대 대통령은 충청의 표심이 선택했다.

고(故)노무현 전 대통령은 생전 안 지사의 가장 큰 장점으로 사람관계를 들었다. 여러 사람들 사이에서 다양한 갈등을 다독거리고 추슬러 사람들을 이끄는 점을 높이 샀다.

2010년 6월 3일자 내가 쓴 '충남도지사 당선자 안희정, 그는 누구인가' 기사 일부다. 안 당선자는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 이후 충남의 새로운 대표가 되겠다. 충남의 새로운 미래를 만들겠다, 2인자 정치를 청산하고 대한민국을 이끄는 지도자로 커보겠다"며 지지를 호소했다. 지역주의를 정면 돌파해 김대중 노무현 두 대통령의 국민통합, 국가균형발전의 꿈을 잇겠다는 포부다.

나는 국민의 갈등을 치유하고, 국민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인물이 차기 대한민국 대통령이 되길 바란다. 반기문, 안희정으로 대표되는 '토종 충청인'이 그 바람을 들어준다면 금상첨화다. '새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 충청인의 열망이 두 사람으로부터 비롯되길 바란다.

공상을 해본다. 서로 다른 세계에 떠 있는 두 개의 달일지라도, 합쳐져 하나의 태양으로 떠오를 순 없을까. 참, 안희정 지사는 아직 내 편지에 답장하지 않았다. 부디 그 답장은 앞으로의 '행동'으로 보여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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